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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끼~
    유년의 기억 2006. 3. 29. 11:28

     

     

    우리 엄마는 이 말에 지금도 치를 떤다.
    나는 어릴때..그러니까 한참 젖먹이일때 유난히 경끼를 많이 했다고 한다.
    몸에 속열이 많았던지 유난히 경끼(驚氣-한문으로 쓰면 놀랄경에 기운기해서
    경기라고 하지만 갱상도 발은은 경끼다..)를 자주 했다고 하는데 갓 시집와
    첫 아이인 새댁이 캄캄한 야밤에 십리길을 걸어서 동네 할머니께 따로
    다녔다고 한다.


    여기서 딴다는 것은 바늘로 따서 피를 내는 것인데 정수리 숨구멍에다
    석유를 조금씩 발라주는 것으로 경끼치료는 끝이다.
    바늘로 따고 정수리에 석유 한방울 바르고 나면 겨우 다시 혈색이 돌고
    다시 십리길을 걸어서 집으로 와야하는 일을 하셨는데 처녀때부터
    유난히 밤길을 무서워하셨다는 우리엄마 고통을 알만하다.


    집에서 잘따는 할머니네까지의 길에는 넝마주이들이 사는 구포둑을 지나야
    하고 거의 한달에 한두건의 자살이 아니면 사고로 사람이 죽어나가던
    구포건널목도 건너야 하고 불도 없는 깜깜한 굴다리밑도 지나야 한다.
    그 길에 비라도 추적 추적 내리면 등에 없은 아이생각도 안날 만큼
    오싹해지고 오금은 저리고...자꾸만 누군가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은데다
    들고양이라도 한곁에서 야~~옹 울어대면 그야말로 간이 콩알만 해 졌단다.


    울 아버지는 부지런 하셨다.
    밀가루 공장에 다니셨는데 아울러 네마지기 농사도 지으셨다.
    밀가루 공장은 주야간을 하는데 야간을 한 날이라도 주간에는 농삿일을
    해야 했으므로 나를 건사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엄마 혼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나이들고 장가가고 아이들 낳고 머리가 귀밑부터 하얘져서야 알만하다.
    세딸중에 두번째가 유난히 경끼를 했다.
    첫째와 막내는 경끼라는 것조차 모르고 자랐는데 둘째는 두돐이 되기까지
    경끼를 자주 했다.


    포항의 두호동이라는 곳에 살때인데 밤에 경끼를 하면 동네에서 잘딴다는
    할머니에게 노상 매달렸다.
    부부가 업고 안고 달려서 그 야밤에 할머니집 문을 두들기고는 했다.
    그때서야 부모의 심정을 알만했다.
    울 엄마가 내가 경끼를 해댈때 얼마나 놀랐는지 말이다.


    "엄마! 고맙심니더이~~~"
    이 말은 늘 입속에서만 맴돌다 사라지는 메아리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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