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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고싶다..털보아재
    유년의 기억 2006. 3. 29. 11:22

     

     

    웬만한 시골이 다 그랬듯이 닷새마다 열리는 장날은 항상 들썩거렸다.
    장날이 되면 멀리 만덕에 사는 촌수 먼 아재 얼굴도 낙동강 건너 대동에서
    메추리 농장을 하던 외삼촌 뻘되는 마음씨 좋은 아재도 만날수 있는 날이다.


    장이 파하는 즈음에는 구포둑 위로 석양이 물드는 때인데 이때 쯤에는
    장에 갔다가 새끼줄에 갈치 두마리 엮어오신 아버지의 얼굴도 막걸리 냄새와
    함께 익어서 빨개지고는 했다.


    나는 이때쯤의 시간을 가장 절실하게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 손에서 엄마손으로 넘어가는 갈치의 잘 구워진 짭짜름한 고기맛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단칸짜리 뒷방에 세들어 살던 털보아재를 기다렸다.


    털보아재는 두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에서 바로 턱까지 주욱~ 연결된 턱수염은 그야말로 영화에 나오는
    산적과 똑 같이 생겨서 지금 생각해도 그 모습이 또렸하다.
    그 털보아재는 구포극장의 간판을 그렸다.
    어른들은 간판쟁이..털보간판쟁이라고 불렀는데 간판쟁이라는 말을 또 제일
    듣기 싫어했다.


    아버지가 "거~ 뒷방 간판쟁이..."라고 하시면 나는 늘 그랬다.
    "아입니더...아저씨가 화가라 카던데예!"
    "머라카노..그기 그기지 임마야.." 하시면서 핀잔을 주셨다.
    그래도 그 털보아재앞에서는 항상 아버지는 "박씨요~"라고 하셨다.


    그 털보아저씨는 일년이면 두사람정로 늘 아줌마가 바뀌었다.
    어떤때는 시장내 "장미다방"에서 커피배달하는 누나를 아줌마로 불러야
    될때도 있었고 어떤때는 털보아재보다 한참은 늙어보이는 아줌마도 있었다.


    털보아재의 또 다른 직업은 장날에만 하는 일이였는데
    장이 서는 끝쪽에 토끼,염소,닭을 파는 장사치들이 모여 있는 곳에다가
    보록쿠를 두줄로 놓고 그 위에 도라무깡을 올려서 물을 끓이고는
    사람들이 닭전에서 닭을 사면 삯을 받고 잡아주는 거였다.


    장날이 되면 나는 낮에는 털보아재가 장사하는데를 놀러가서 빗자루질도
    해주기도 하고 닭털을 벗겨주기도 했다.
    털보아재가 닭을 잡는 것이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닭을 잘 잡았는데 목을 탁 비틀어서 부엌칼로 쓰윽~한 다음에
    주르륵 피가 흐르도록 꺼구로 들고있다가 숨이 완전히 끊어지면 끓는 물속에
    잠깐 넣었다가 꺼내서 털을 뽑는데 털보아재는 특이하게 닭을 잡았다.
    오른손으로 닭의 두발을 모아서 잡고서는 왼손으로 마치 공수도로 벽돌을
    깨듯이 닭의 등짝을 탁~치면 그냥 캑~하고 기절을 하고 만다.
    그러면 바로 도라무깡의 나무뚜껑을 열고 풍덩 집어넣는데 그 다음에 끄집어
    내서 털을 벗기는 것이였다.
    시장안에는 몇 사람이 그런류의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렇게 닭을
    잡을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번은 그 비결을 물었더니 털보아재가 그랬다.
    자기는 무술을 좀 했는데 닭도 급소가 있어서 그 혈을 치면 사람이 급소를
    잘못 맞으면 죽게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는 한참 유행하던 무협만화의 주인공처럼 비록 닭을 상대하는 것이였지만
    그 대단한 능력을 동경했었다.
    그래서 장날만 되면 그 아저씨 옆에서 일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비법을 전수해주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털보아재의 그 대단한 묘기는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시장바닥에서는 소문이
    자자해서 털보아재 닭전은 항상 구경꾼이 더 많았다.


    오후 네다섯시가 되면 거의 장도 파장이 되는데 숙제도 해야하고 아버지나
    엄마의 질타를 걱정해서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 다음에는 또 털보아재를
    기다리게 된다.
    항상 장날에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나면 보상이 따르게 마련이 였다.


    "근아!"
    아버지도 엄마도 동네아저씨나 아줌마들도 심지어서는 할매나 외가에서나
    전체이름으로 불린적이 없다.
    장남이어서 그런지 '대근아!'는 항상 줄어서 "근아!"로 불리곤 했다.
    "근이아버지""근이엄마"근이네" 주변의 모든게 늘 나를 중심으로 불리워졌다.
    경상도의 정확한 발음으로는 "거이" 또는 "그나"가 정확할 것이다.


    석양이 빨갛게 묻들다 못해서 툭 터지는 홍시처럼 낙동강 넘어 김해쪽 산을
    꼴까닥~하고 넘어가 버리면 털보아재가 들어온다.
    털보아재는 항상 리어카의 앞부분 손잡이로 대문을 열기 때문에 털보아재가
    집에 들어올때는 대문에서 쇠끼리 부닥는 소리가 들린다.


    "근아!"
    들어오면 항상 털보아재는 이렇게 나를 찾았다.
    밑으로 남동생만 둘이나 있었는데 모두 근字 돌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이나
    동네에서 "근아!"는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되어있었다.
    기다렸던 터라 후다닥~ 뛰어나가면 털로 가득한 얼굴 사이로 미소짓는 입술과
    까만 털과 대비되는 하얀이빨이 두드러져 보인다.


    "아나~"
    여기있다!의 경상도 사투리다.
    어른들이 말하기로는 고향이 경기도 어디라고 했는데 털보아재는 경상도사투리만
    사용을 했다.
    "아나~"하면서 내미는 작은 쪽지 한장..
    바로 내가 거의 일주일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종이 쪽지였다.
    "초대권"
    무슨 비밀스런 스파이들의 비표처럼 사선으로 빨간줄이 두 줄이나 그어진 이 쪽지는
    구포극장의 무료 초대권이였다.
    당시에 극장의 포스트를 남의 집 담벼락에 많이 붙였는데 그 대가로 한달에 한번정도
    이 초대권을 선물로 주고는 했다.


    털보아재는 극장에서 극장간판을 멋지게 그려붙이는 사람이였으므로 몇장씩을
    가져올수 있었는지 푸로가 새로 바뀌면 이렇게 늘 초대권을 손에 넣을수 있었다.


    털보아재는 성인영화건 아동영화건 가리지 않고 초대권을 정기적으로 주셨다.
    한번은 초대권을 가지고 일요일 아침에 영화관으로 갔다.
    초대권을 가지고 저녁이나 사람이 붐빌 때 가면 가재미눈을 뜨는 집표원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하고 애들이 볼수없는 영화는 쫓겨날수도 있기 때문이였다.
    모두 털보아재 때문에 터득한 노하우이기도 하다.


    그 날은 주인공 아저씨와 아줌마가 거의 벗고 나오는 성인영화였던 모양이였다.
    표를 받는 아저씨는 털보아재와 나와의 특별한 관계를 잘 아는 사람이였는데
    다른 날은 아무말도 않더니 그 날은 이랬다.
    "이 푸로는 쪼매한것들 보믄 안되는데...."
    "괘안심더...보구로 해주이소"
    "니 맨쿠로 쪼매한것들이 이런 푸로 많이보믄 키도 안큰다..."
    "괘안심더...."
    "아이구...모르겠다...사람도 없응께로 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된다.
    그때 그런 영화를 안봤더라면 짝궁친구놈처럼 1미터80쯤으로 자랐을지도
    모르는데 괜스리 이상한 영화를 봐서 1미터 65를 못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키보다 더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성교육은 실컷 받았기 때문이다.
    역시 세상은 얻는게 있으면 잃는것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게 마련이고....


    그렇게 이삼년을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던 털보아재는 경찰서에 몇번을
    들락 날락 하더니 어디론가 이사를 떠나고 말았다.
    어른들의 이야기로는 김해 어디에서 집을 나온 유부녀와 눈이 맞아서
    한동안 살다가 간통으로 고소를 당해서 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것은 닭잡는 그 기술을 전수받지 못한 것이다.
    야리야리한 몸매로 나풀거리는 화려한 투피스 차림을 좋아하던 그 아줌마만
    아니였더라면 최소한 몇년은 더 우리집에 있었을테고 내 나이도 몇살을
    더 먹어서 기술을 전수받기에 충분했을텐데.....


    현장에 나갔다가 현장작업자들이 난로삼아 나무를 때는 도라무깡을 보고
    갑자기 털보아재가 생각났다.
    지금도 닭을 잡으시는지....
    살아계신다면 아마 칠십이 다되어 가실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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