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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와 우산
    유년의 기억 2006. 3. 29. 11:47

    오늘도 비가 온다..
    이렇게 장대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날에는 빛바랜 추억들이 비좁은
    기억의 창고에서 녹아내린듯 스믈 스믈 문틈으로 기어 나오기도 한다.


    비는 소리를 낸다.
    자신은 소리를 간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상에 떨어지면서 소리를 낸다.
    상수리 나뭇닢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도토리 소리를 내고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날카로운 양철소리를 낸다.


    나는 음치다.
    아버지나 엄마는 노래를 잘 부르고 내 유전인자를 이어받은 딸들도 그런대로
    부르는듯 한데 유독 혼자서 음치라는 이야기는 후천적인 요인이 있는가 보다.
    지금 생각하니 바로 이 비라는 놈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어릴쩍 우리집은 일본사람들이 쓰다가 버리고 간 소위 말하는 적산가옥을
    누군가가 싸게 구해서 살던것을 아버지가 또 구입해서 우리집이 되었다.
    그때가 내가 3살이 되던때로 나를 제외한 4남매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뒷쪽으로는 총길이 20여미터의 탱자나무들이 죽 늘어서서 담을 대신하고
    봄에는 하얀 탱자꽃이 가을에는 노오란 탱자들이 파란 하늘을 단조롭지 않게
    만드는 것이였고 탱자나무 위로는 백양산 주전봉이 처녀 젖무덤만큼 오도마니
    건너다 보이는 한 경치 하는 그런 곳이였다.


    우리집의 지붕은 까만 색이였다.
    골탕이라고 말하는 타르(아스팔트 찌꺼기)를 바르고 모래를 뿌려서 표면이
    꺼칠한 그런 종이로 지붕을 얹었고 일부는 양철스레트(함석을 예전에는 양철
    이라고 했다.)로 덮여져 있었다.
    나중에 집을 넓히고 방을 달아내면서 일부는 석면스레트로 지붕을 이어서
    멀리서 볼라치면 마치 모자이크를 연상하게 한다.
    울긋 불긋한 칼라 모자이크가 아니라 흑색과 회색..그리 뿕게 녹슬은
    양철스레트의 흑백사진같은 모자이크 말이다.


    가을이면 사람들은 우리집 탱자를 유난스레 탐했다.
    탱자나무가 길가에 있어서기도 했지만 열매도 탱글히 실했고 게다가 까만 골탕
    지붕이 배경이 되어주니 유난히 탱자가 노랗게 보여서 오가는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돌을 던지기도 하고 나무 막대기를 던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돌들이나 나무막대기는 탱자나무의 가지사리로 촘촘한 가시에 걸리곤
    했지만 그 중에서 드물지않게 지붕으로 직행을 하는 놈들도 있게 마련이였다.


    이렇게 지붕에 떨어지는 돌들은 지붕의 여기저기에 흠집을 내어놓는데 보수도
    하기전에 여름 장맛비를 만나면 비가 새는 원인이 된다.


    비가오면 우리 집에서 동원될 수 있는 모든 그릇은 다 동원되어야 했다.
    간장종지에서 부터 장독뚜껑까지 밑이 막혀 있는 그릇이라면 모두 동원되었다.
    아버지가 맹장염 수술을 하느라 며칠 병원에 있는 동안 들어온 백도..황도통조림
    통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엄마가 모아온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자주 보수를 하는 탓으로 방에는 좀 덜 새어 들었다.
    그래서 방에는 백도 깡통 몇개..황도 깡통 몇개...분유통 몇개면 족했다.
    부엌쪽에는 빨갛게 녹이 쓴데다 재활용으로 못자국이 덤성있어서 제법 많이 샜다.
    양은 세숫대야에서 고무다라이에다 타이어고무로 재생한 바케스까지 집에 있는
    그릇이라고 생긴것들은 모두 동원이 되었다.


    톡...톡...톡....
    항상 처음의 시작은 느리면서 탁한 소리가 난다.
    빗방울이 깡통의 밑바닥을 바로 부딪는 소리가 나기 때문인데 조금 시간에 흐르면
    통....통....통....연질음이 난다.
    그래도 이쯤되면 소리도 제법 운치가 있다.
    비가 떨어지는 소리도 양은 세숫대야에 떨어지는 소리 다르고 하얀 사기그릇에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다.
    복숭아 통조림 깡통에 떨어지는 소리와 분유 깡통에 떨어지는 소리도 서로 사맛디
    아니한다.


    벼개를 베고 방바닥에 누워서 들으면 마치 한장르의 음악 연주를 듣는듯 하다.


    비가 점점 깊어진다.
    그러면 지붕에 우다다다다닥~~ 거리는 소리와 방안의 통...통...통~~ 음률에다가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짬뽕이 된다.
    나중에는 소리에 대해서 무뎌져 버리는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소리에 대한 감각이 남들에 비해 무딘것은 아마도 이 영향이리라..


    아버지와 엄마는 부지런 했지만 늘 가난했다.
    당연히 나는 부모들이 가난한 만큼 가난했다.
    메뚜기를 잡아서 도시락 반찬으로 만들어 가거나 책가방에 개구리 서너마리를 산채로
    잡아가서 교실에 풀어 놓을때나 가을에 수확한 탱자를 한 주머니 가지고 갈때를
    빼고는 늘 가난했다.


    집에는 우산이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칼갈아~ 우산고쳐~" 하며 다니는 아저씨로 부터 서너번도 더 수리를 받고
    여기저기 실밥이 보이는 그런 우산이 단 한개밖에 없었다.


    아마 그때도 장마도 한참 지나고 나서 비가 자주 왔다.
    논에 벼가 누렇게 익기 시작할 무렵이였으니 여름 방학을 보내고 개학을 한 지 얼마지
    않아서 일 것이다.
    따로 삼촌과 살던 할머니가 오셨다가 돌아가실 무렵에 비가 왔다.
    우리 할매는 대단히 까탈스런 분이다. 우리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기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새로 묶어시고 동백기름을 바르시고 비녀를
    꼽는 일로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분이셨으니....
    결국 우리집에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들고 가셨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비는 장대비를 따루고 있었다.
    모두들 우산을 쓰고들 오리라. 파란우산...까만 우산...모두들 우산을 쓰고 오리라...
    비옷도 몇은 입고 오리라...
    시장통 누구는 늘 그렇듯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인 하늘색 비옷을 입고 오리라.
    노란색 장화를 신고 오는 아이도 있으리라...


    나는 말없이 마루끝에 앉아서 까만 고무신만 내려다 보았다.
    닳아버려서 물이 질끈 새들어오는 고무신으로 물길을 나서는것은 별것 아니지만
    아직 염천이니 까짓 비야 몸으로 맞으면 될일이지만...
    내 가난을 넘겨보며 웃음을 지을 아이들의 눈빛이야 피하면 그만이지만....
    등에 짊어져야 할 "○○당 국회의원 某某.." 라는 글자가 금박으로 박힌 책보가 문제다.


    다시 책보를 풀었다.
    그리고 책을 비니루로 감쌌다. 그리고 책보따리를 다시 꾸렸다.
    이제 길을 나서야 한다. 기다려 보았자 어차피 멈출 기세도 아니다.


    "쪼매 이서바라..."
    한마디를 던지고 아버지는 부엌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비료포대를 한장 들고 들어 오셨다. 비록 4마지기일 망정 그것도 농사라
    집에 비료포대는 흔했다.
    가위를 가져다 모서리를 잘랐다.
    잘려진 모서리를 위로 해서 몸에다 씌어 주셨다.


    그렇게 나서는 나를 보며 아버지도 엄마도 아마 속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학교앞으로 통하는 큰길을 만나는 골목을 나오면서 나는 그 포대로 만든 비옷을
    벗어서 호박닢 무성한 수풀로 던져 버렸다.
    차라리 비를 맞는게 나았다. 다행이 돌아오는 길에는 맑게 개인 하늘을 뒤로하고
    왔으므로 비료포대의 행방을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아버지는 아셨을 것이다.


    가난은 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가슴의 못이 되었던지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늘 그 생각이 난다.
    아이들 우산이 조금만 이상해도 새로 사주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와이프는 이 정도면 쓰도 되는데 뭘 새것을 사주느냐고 바가지를 긁어도
    나는 새 우산을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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