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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마중 한 웅큼
    꽃과 곤충 이야기 2006. 9. 13. 09:47

     

     

     

    까마중 한 웅큼

     

     

    마당 끝 발돋움

    키를 높이면 지평선이 되던
    구포둑 너머 장마당 한 곁
    무싯날에도 국극단 천막
    오방색 깃발이 걸렸다.


    낼모래 추석이라
    오가는 발걸음 바쁜
    9월 해 질 녘
    미류나무 그림자 늘어져
    담없는 마당
    수채에 꼬리를 담근다.


    등에 업은 막내 보채면
    뒷울 탱자나무 밑
    풀섶 헤치고
    설익은 까마중을 딴다.
    "감창 여있다..감창 여있다"


    엄마는 나뭇단 머리에 이고
    지금 시오리는 왔을 것인데
    이슬처럼 내리는 어둑사리

    귀뚜리 몇 마리 다져놓으면
    까마중, 한웅큼은 더 있어야겠다.

     

    몇 십 년 지나도

    이맘 때면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는 그리움 하나

    달빛 아래 홀로 서있다.

     


                              ** 무싯날:장날을 제외한 평일
                              ** 수채:집마당에 있는 하수구
                              ** 감창:까마중의 경남 사투리

     

    <종합문예지 문학미디어 2007년 겨울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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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출장을 갈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출장이야 늘 있기는 하지만
    포항이나 거제도, 광양같은 장거리 출장이 거의 한달쯤 없으니 종일 회사에
    붙박이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회사에 있는 날은 일명 짭밥(왜 단체급식을 짭밥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더러는 연륜을 짭밥이라고 하기도 한다.)이라는 회사식당에서 먹게 되는데
    바깥으로 외식을 가려면 차로 왕복 20여분이나 걸리니 그 시간적 낭비가
    아까워서 그냥 식당에서 먹고 그 시간에 30여분의 오수를 즐기거나 카메라를
    들고 회사외곽의 숲을 찾기도 한다.


    어제는 관리팀에서 품을 사서 잡초를 일주일에 두번은 뽑아대는 회사정원에서
    뜻밖에도 까마중을 발견했다. 소철로 둥글게 꾸며진 틈바구니 속에 숨어서
    그동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히곤 했나보다.


    실상 "까마중"은 나중에 자라서 알게된 표준말이고 고향인 부산의 구포에서는
    "감창"이라고 했었다. 그때만해도 여기 저기에 참 많이도 있었다.
    특히 나는 우리동네에서 '탱자나뭇집 큰 아들'로 불리워질 정도로 탱자나무가
    뒷울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밑에 잡풀들중에 이 까마중이 많았다.


    구포는 한때 우리나라 재래시장으로서 그 규모가 상당했다. 그래서 국극단이나
    서커스단(특히 동춘인가?도 자주 왔다.)이 자주 찾아왔고 한번 오면 그들은
    달포쯤 머물기도 했다. 우리집은 구포둑이 죽~이어져 시장을 감싸고 있는 곳으로
    마당에 서면 둑위로 유일하게 국극단의 오방색 깃발만 보였다.
    구포둑은 늘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구획이 되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갓 태어난 막내를 나에게 맡기도 엄마는 나무를 하러
    삼십리를 걸어 산으로 가셨고 그렇게 모아서 일부는 방을 덥히고 일부는 장날
    내어다 팔아야 추석빔이라도 한벌씩 얻어 걸리곤 했다.
    아버지는 부지런 하셔서 밀가루 공장에 다니시면서 주간근무때는 야간에 논일을,
    야간근무때는 주간에 잠을 아껴 4마지기 농사를 지었다. 그래도 올망한 다섯남매를
    키우기에는 두분 다 버겨운 삶을 사셨다.


    다행히 막내는 순둥이였는데 바로 밑에가 여동생이긴 했지만 한번 막내를 업고
    있다가 아이가 뒤로 허리를 제치는 바람에 불안해서 보챌때는 내가 업었다.
    엄마 젖이 그리운 막내는 자주 보챘고 그럴때 마다 옆집담과 앞집담이 대문역활을
    골목앞에 서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석양을 바라보며 엄마가 지금쯤 어디쯤에
    왔을 것인데...지금은 어디쯤 왔겠다 셈하곤 했다.


    배고픈 아이는 칭얼대고..내가 해결해 줄수 있는 것이라고는 탱자나무 아래에서
    가을볕에 익어가고 있는 까마중의 달콤함 뿐이였다.
    그것도 동생들이 익는 대로 따먹어서 아직 완전히 익지 않는 것들이 태반이였다.
    그래도 등에 업힌 막내의 칭얼댐은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까마중은 맨들한 둥근 모양이 마치 스님의 두상을 닮았던 탓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해살이풀인데 가지과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나 꽃이 핀것을 보면 흡사 고추와 같다.
    옆으로 가지를 많이 치는데 다자라면 70센티 안팎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그렇게
    큰 것은 보지 못했다.

     

    까마중은 표준말이다. 각 지방에 따라 다르게 불리워 지기도 했다.

     

    까마중의 다른 이름은 감창,깜두라지,깜또라지,용규(龍葵),까마종이,먹때깔,강태,

    고채(苦菜), 수가(水茄) 흑성성(黑聖星),천천가(天天茄),야가저(野茄子),고규(苦葵),

    천포초(天泡草)등이 있다.


    밭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고 열매가 완전히 익으면 단맛이 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먹기도 하지만 독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그러니 나는 어릴쩍에 독을 먹고 자란
    셈이 되어 버렸다. 한방에서는 가을에 뿌리까지 전체를 캐어 그늘에 말린 약재를
    용규(龍葵)라고 한다는데, 줄기와 잎은 해열·산후복통에 쓰며, 뿌리는 이뇨에 쓴다.
    봄에 어린잎을 따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이때는 삶아서 물에 우려 독성분을 없앤 다음
    먹어야 한다고 한다.

     

    *** 그림을 클릭하시면 좀더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찍은 까마중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옛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은
    마치 전설을 듣는듯한 표정이다.


    놀잇감이 적었던 그때 까마중 한알과 속이 빈 갈대나 밀짚 한뼘쯤이면 끝을 등분으로
    갈라서 펼쳐 깔대기로 만든 다음 그위에 까마중 한알을 놓고 후~ 입바람을 불면
    까마중은 가을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춤을 추고는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쟁하다.


    "아빠~ 저런것도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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