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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밭에서 맞이하는 가을
    디카隨筆 2006. 8. 26. 00:18

     

    인취사 연밭에서 맞이하는 가을

     

     

     

    출퇴근 하는 길목에 연밭이 하나 있다. 인취사에서 만든 향련원이 길가에 있어서

    출근때나 퇴근때나 연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원래는 길에서 한참 들어가야 만나는 인취사에 본래의 연밭이 있다.

    봄에는 목련이 참 좋은 절인데 여름과 가을에는 역시 연밭에서 피어나는 백련이

    백미인 곳이다.

     

    얼마전에 이곳에서 백련축제를 햇다고 하더니 이제 연밭에는 여름은 가고 없다.

     

     

     

    일주문이 따로 없는 작은 절인 이곳에서 일주문 역활과 세속의 대표적 상징인 차가

    절간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기둥이다.

     

    물론 들어갈 수 있는 차도 있다. 他와 我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법이건만...

     

    역시 피아간 구분이 없는 경지는 자연이다. 녹슨 쇳덩이도 자연에서는 스스로 동화된다.

    자연에서는 늘 이렇게 배울것이 많다.

     

     

     

    다소 늦게 피어난 홍련은 휑한 푸르름에 찍힌 점과 같다.

    하얀  백지에 찍은 까만 점....까만 먹물 배경에 찍힌 하얀 점..파람하늘에 찍힌

    구름 점...그런 점들은 배경과 더불어 아름다워지는 재주가 있는 점들이다.

     

     

     

    늙음과 젊음...

    늘 같이 있는 것인데도 젊음에서는 늙음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늙음의 입장에서는 젊음이 잘 보이는 것이다. 늙음은 젊음의 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화사히 피어있는 저 연꽃도 결국에는 연밥이 되고 색도 짙어 질것이다.

     

     

     

    연밥도 푸르름의 시간이 존재 한다.

    그러나 연밥의 푸르름은 불완전함이고 미완성이다.

     

    푸르런 연밥을 갈색으로 익혀가는 것은 더 이상 여름 햇살의 몫이 아니다.

    여름 햇살은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고 그 자리를 가을의

    햇살이 대신 할 것이다.

     

    가을 햇살의 맛을 아는가?

    가을 햇살의 맛은 고소함이다.

     

    가을 햇살에 익은 밤도 고소하고 연밥속 씨앗도 고소하고 참깨도 고소하다.

    가을 햇살이 익혀놓은 해바라기 씨앗이나 호박씨앗도 고소하다.

    가을 햇살이 익혀놓은 호도 역시 고소하다.

     

    가을 햇살은 고소하다.

     

     

     

    기억하자

    우리의 삶에서도 늙음과 젊음은 늘 같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늙음과 젊음이 같이 있는 풍경은 구수한 냄새가 나서 아름답다.

     

    계절이 간다는 것..나이를 먹는 다는 것...

    이런 것들은 아날로그적인 풍경이다.

    싱그러운 여름과 탁탁~ 익어가는 가을이 같이 있는 풍경도 아날로그 적이다.

     

     

     

     

     

    나는 물방울이 좋다.

    물방울은 자신의 색깔보다는 남의 색깔을 더 아름답게 비추어 주기 때문이다.

     

    아침이슬은 빨갛게 떠 오르는 아침햇살의 색깔을 비추어 주기고 하고 연닢에

    맺힌 빗방울들은 가을하늘의 푸르럼을 비추어 주기도 한다.

     

    물방울들이 좋은 또 하나는 미련을 떨지 않는 다는 것이다.

    흔들림에 따라 다른 물방울들과 잘 섞기기도 하고 조그만 볕살에도 증발한다.

    증발하고 나서도 절대로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지 않는다.

     

    사실 인간의 삶도 짧기는 마찬가지다.

    잠깐 이 세상으로 소풍나왔다가 가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이란 부질없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들은 다투어 흔적을 남기려고 하지 않는가.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하나는 개구리다.

    우리집에는 개구리 인형,개구리 이불,개구리 저금통...아마 300마리쯤 된다.

     

    누군가가 하필이면 개구리를 모으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어릴적...12살쯤 되었을때의 일이다.

    부모님과 다섯남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던 4마지기 논이 있었다.

    아버지는 열심히 사셨던 분이라 밀가루 공장에 다니면서 농사를 지었다.

    엄마는 역시 부지런해서 30리 산길을 걸어서 나무를 해다가 집에도 쓰고

    장에 내어다 팔기도 했다.

     

    나는 장남이였는데 갓 태어난 막내동생이 있을 정도로 동생들은 어렸다.

     

    여름이 되면 논에 물대기는 생존 그 자체였다.

    대개는 순번을 정해서 물을 대고는 하는데 자기 차례에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슬그머니 물꼬를 돌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야간일을 나가는 날에는 밤에 물꼬를 지키는 일이 내 몫이였다.

    아직 젖먹이 동생이 2명이나 있으니 엄마는 집을 비울 수 없었다.

    논둑에다 모기장을 치고 담요하나에 의지해 깜깜한 들판에 있을때는 신경이

    곤두서 모기장 너머 어둠을 응시하면서 밤새 잠들지 못한다.

    사실 12살 꼬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이였지만 어쩔수 없었다.

     

    개골~ 개골~.....

    들에서 개구리 울음은 늘 편안함을 준다. 그러다 갑자기 "뚝"하고 개구리

    울음이 일시에 멈출때가 있는데 그러면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개구리들은 예민해서 야행성인 뱀이나 천적이나 사람들의 발자국소리에

    멈추는 것이므로 개구리 소리의 멈춤은 심장이 멎는 느낌을 준다.

     

    개굴~ 개굴~....

    잠시후 다시 개구리가 울면 비로소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곤 했다.

     

    내가 개구리를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우렁이가 크다.

    사실 이렇게 큰 우렁이는 처음 본다.

     

    이놈도 지금은 바쁠것이다. 지금부터 많이 먹어 두어야 겨울을 진흙속에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릴때는 학교를 파하고 집에 와서 논으로 나간다. 차분히 갈아앉은 물속에서

    한마리..두마리...우렁을 잡아서 바케스에 4분의 1쯤 채워서 집에 오면 서너끼

    정도는 우리집 반찬이 되었다. 지금은 중국산이 많이 밀려 들어와서 애써 잡지도

    않다 보니 덩치만 키웠나 보다.

     

    가을에는 이 놈도 바쁠것이다.

     

     

     

     

    초가을 들판에는 강아지풀이 지천이다.

    머리부분능 꺽어서 손바닥에 올리고 좌우로 조금만 진동을 주게되면 털이 누운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강아지 얼르듯 혀를 끌끌이면서 손을 좌우로 조금만 흔들어주면 마치 강아지처럼

    움직이는데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낯설은 풍경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

    아름다움을 훔쳐오면서 이름도 모르니 조금은 미안하다.

     

    하기는 이름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사람이 만든 관념의 소산이 아닌가?

    어떤 이름을 붙이던 그것은 사람끼리의 약속일 뿐이고 자연이 인식하는 이름은

    없다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내 이름이 김대근이던..아니면 마당쇠건..초랭이가 되었건..마이클이 되었건..

    내 자신은 오로지 나일뿐인 것이다.

     

    우리가 무슨꽃..무슨꽃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도 따지면 얼마나 모순인가..

     

     

     

    가을의 초입이 좋은 이유는 늘 열매와 꽃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꽃만이 있다거나 열매만 있다는 것도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역시나 여름이 반쯤 발을 걸치고 가을도 반쯤 발을 걸친 요즈음일 것이다.

     

     

     

    날개는 하늘을 나는데 필요한 것이다.

    날개의 주체는 깃털이다. 따라서 하늘을 나는 주체는 깃털인 것이다.

     

    추락....

    추락한다는 것은 날고 싶은 것들로부터 날 수 있는 능력을 뺏어버린 것이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삶에 대한 미련이듯이 깃털이 추락을 두려워

    하는 것은 난다는 것에 대한 미련일 것이다.

     

     

     

     

     

    연밭과 같은 물가의 풀섶의 제왕은 사실 거미일 것이다.

    거미는 기다릴 줄 아는 생명체다. 거미줄을 쳐두고 하루종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항로를 이탈한 날곤충이 거미줄에 걸려서 진동을 일으키면 잽싸게 달려 들어서

    순식간에 거미줄로 감싸 버린다.

     

    거미는 사람들처럼 게걸스럽게 먹이를 먹지 않는다. 우적거리며 씹지도 않는다.

    이빨로 잡힌 먹이에 소화액을 주입해서 먹이의 내부를 모두 녹인 다음 스트로우로

    빨듯이 우아하고 조용하게 섭취한다.

     

    그래서 거미에게 잡힌 곤충은 껍대기만은 그대로 돌려받는다.

     

    하루는 화장실에 앉았다가 바로 앞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미를 보았다.

    나는 온갖 기름지고 향기롭고 맛있는 것을 입으로 먹고 냄새나고 더러운 똥을

    내는 똥꼬를 가졌는데 거미는 아름다운 실을 만들지 않는가.

     

    때로는 우리 사람이 곤충같을때도 있다.

     

     

     

    아마 다음 해 축제쯤에나 다시 필라멘트를 가열하게 될것이다.

    어쩌면 내년에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 이 전등은 폐기품의 이름을 얻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가슴속의 필라멘트가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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