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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폰카로 본 시장 풍경
    디카隨筆 2006. 11. 8. 10:03

     

    폰카로 본 시장 풍경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토요일이 한결 여유로와 졌다. 아이들은 격주로

    놀기 때문에 출근하는 것과 같이 일찍 일어나야 할 때도 있다.

     

    특히 막내는 토요일을 기다리는데 학교가 가까운 거리에 있기는 하지만

    토요일에 엄마가 바래다 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토요일날

    막내를 학교까지 바래다 주는 것은 와이프의 몫인데 토요일의 부산스러움이

    등짝을 침대에 느긋하게 붙이지 못하게 한다.

     

    아이를 데려다 주고 온 와이프가 아직 잠이 덜깬 눈으로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나를 보더니 장에 나가자고 한다.

     

    "장날~"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도시에 살다가 보니 아무때나 내키는 때에 마음에 드는

    슈퍼나 대형마트로 쇼핑을 가곤 하다보니 이 장날이라는 단어가 주는 낯설음이

    물없이 고구마를 먹었을때처럼 팍팍하게 다가온다.

     

    내가 어릴적 자란 곳이 부산의 구포였는데 구포장은 전국에서도 열 손가락안에

    당당하게 꼽힐만큼 큰 장이였고 닷새마다 들어서는 장날은 그야말로 새로움의

    기운에 몸을 맡기는 날이기도 했다.

     

    대뜸 그러마고 했다. 결국 남자가 장에 따라 나선다는 것은 짐꾼의 신세로 스스로

    전락할 각오를 해야 하지만 오랫만에 향수를 자극하는 장날의 유혹을 기꺼히 받기로

    마음먹고 따라 나섰다.

     

     

    현충사와 온양온천이라는 관광자원 덕분에 일찍부터 광광특구로 지정되어 제법

    프레미엄을 가졌던 곳이라 인구와 규모는 적어도 여느 중소도시에 비해서는 훨신

    도시화 되어버린 이곳에도 아직 5일장은 남아있다.

     

    안성장같은 큰 장에서 볼 수 있는 왁자함같은 것은 없지만 오히려 자그마한 규모가

    정감을 더하는 것 같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시골에서의 장날은 비단 물건을 사고 파는 것만이 아니다.

    전화가 지금처럼 보편화되거나 교통수단이나 도로가 현대적이지 못하던 옛날에는

    장날이 지역의 커뮤니케이션 역활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장날에야 다른 동네 소식도 듣고 서로의 경조사에 대한 정보도 주고 받는 것이다.

    이 장날에는 어느 동네 누구는 밭에 무었을 심었다더라 거나 누구네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다거나 구구네 아들이 서울가서 자가용을 샀다러라거나

    잡다한 정보들이 오갔던 것이다.

     

    그래서 장날에는 그냥 평상복을 입고 나가는 게 아니고 오랫만에 양복도 입고 또는

    명절에 아들이 사다준 새 월남치마라도 입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진속의 어르신도 장날이라고 한껏 멋을 부리시고 나왔다. 잘 다려진 양복에 빨간

    모자까지.....

     

     

     

    콩나물도 요즈음 대형 할인점에서는 봉지에 포장해서 상표를 붙여서 판다.

    그런 것들은 어느 봉지를 들어보아도 무게가 똑같다. 일률적이다.

     

    장날에는 주인 마음대로다. 사가는 사람 인상에 따라 손에 집히는 량이 달라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쉬운 공부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장날은~

     

     

     

    손님보다 주인이 더 많은게 요즈음 시골의 장 풍경이다. 앞마당에 심어 놓은

    감나무 한 그루에서 딴 감 열개도 가져나와 자리를 펴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다.

    이즈음의 농촌에는 팔것은 많고 현금은 적다. 그러니 겨우내 먹으려 장만해둔

    먹거리 마저도 가져나와 몇푼의 현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 장에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몇번, 또는 한시간에 한번 정도 시골버스가

    다니는 곳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요즈음 장날은 노인잔치 분위기다. 젊은 사람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기 어렵다.

    그들에게는 대형마트의 번드르함에 더 눈과 몸이 가기 때문이다.

     

    장날은 늙었다.

    파는 사람도 늙었고

    사는 사람도 늙었다.

    장판을 서성이는

    나도

    이제는 늙어가는 모양이다.

     

     

     

    한사람이 가져 나오는 물건도 지극히 단순하다. 대부분의 장꾼들은 두가지 내지는

    세가지 정도다. 열무와 파 몇단을 가져 나온 할머니....

     

    파뿌리는 어릴적에 감기가 잦았던 내가 자주 먹었던 민간약이다. 파뿌리만 잘 씻어

    꿀과 배 간것을 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넣고 뜨끈한 아랫목에 두었다가 주고는 했다.

     

    "파뿌리가 아이들 감기에 좋은데..."

    "저번에 마트에 갔을때 사다둔거 아직 남았어요!"

     

    와이프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보라빛 양파...

    내가 신기해 하자 주인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거....몸에 좋다고...저번에 텔레비에도 나왔다 말이요... 그래 몇 뿌리 구해 심었는데..."

     

    그냥 돌아서는데 뒤통수가 가렵다. 나는 이런게 문제다. 와이프가 늘 이야기 하는 단점이다.

    대형 마트에 가서도 시식을 하고 나면 미안해서 사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핀잔을 듣는다.

     

     

     

    장날이면 이 분은 전도에 열심이다. 교회에서 나와서 노란 어깨띠를 두르고 일일히

    커피며 생강차를 장사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준다.

     

    갑자기 커피가 무지하게 땡겼지만 공짜를 싫어하는데다가 마음이 약한 나는 포기한다.

     

     

     

    장판에 나오면 점심을 따로 먹으러 갈 수 없다. 자리도 자리지만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단골이 다녀 갈지도 모르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날에는 조그만 바퀴달린

    손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국수를 파는 사람도 있다.

     

    가격도 싸고 양은 많다. 꾸미도 제법 먹음직 스럽다.

    보기만 해도 괜스레 침이 넘어 간다. 침넘어 가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했는지 와이프가

    먹어보지 그러냐고 묻는다. 아쉽지만 돌아선다.

     

     

     

    장판의 마지막인 은행나무 길...

    이곳까지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은 버스를 놓쳐서 늦게 온 사람들이

    주로 자리를 잡는 곳이다.

     

     

     

    가지를 한 뭉치 샀다. 끝물에 딴 가지인지 통통함은 찾아 볼 수  없다.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탓에 손님도 적적한 곳인데 가지도 좀은 부실해서인지

    마수걸이도 못했다고 푸념이다.

     

    "가지 안 먹어 본지도 좀 되었지?"

     

    결국 와이프는 천원을 주고 한 무더기를 샀다. 마수걸이라고 두개나 덤을 얹어서~

     

     

     

     벌거벗은 오리... 아니 벌거벗기운 오리라고 해야 맞는 말이지 싶다.

    닭전이라는 게 있는데 구포장이나 안성장 같은 규모가 큰 장에서는 닭을 잡아

    파는데가 모여서 있다. 그런 곳을 닭전이라고 하는데 이 곳에는 특별이 구획이

    없이 이런거 저런거 마구 섞여 있다.

     

    생닭과 오리를 파는 곳인데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기도 한다. 내가 자신있는 요리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수제비이고 다른 하나는 닭도리탕인데 한마리 가져가자는

    말은 못했다. 요즈음 내가 게을러진 탓이다.

     

    닭전 주인은 60을 한참 넘긴 분이였는데 잘 닦은 구두에 양복바지를 입고 그 위에

    앞치마를 둘러고 칼질을 하고 계셨다. 나이가 들어도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아! 콩이다.

    그냥 콩이 아니라 콩대까지 있는 콩이 한 묶음 나왔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 우리집은 농사를 지었다. 네마지기 논이 우리집 재산의

    전부였는데 논두렁에는 항상 콩을 심었다. 벼를 수확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콩을

    베어 콩타작을 도리깨로 하곤 했는데 가끔 콩대까지 잘라서 그위에 볏짚을 놓고

    불을 피웠다가 재속에서 익은 콩을 찾아 먹던 추억이 스믈거리며 기어 나왔다.

     

    나무를 때던 아궁이 속에도 가끔씩 구워먹었는데 가스렌지와 전자렌지가 점령한

    지금에야 그냥 아스라한 추억으로만 남겨질뿐....

     

    아직도 궁금하다. 저 콩대 한묶음은 누가 사갔는지....

     

     

     

    잘 익은 해바라기 씨도 나왔다. 방송의 힘이 대단한 탓인지 해바라기 기름이 성인병에

    좋다는 이야기가 있은지 얼마되지 않아 해바라기가 자주 보인다. 전라도 어디는 논농사

    대신에 해바라기 재배로 전환을 했다고 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에도 직원들이 심심파적으로 몇 십포기의 해바라기를 심었는데 수확을 하고

    보니 씨앗이 튼실하지 못하다. 여름볕도 좋았고 화단을 관리하는 직원이 자주 물도

    주었었지만 씨앗이 튼실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 농심(農心)이 없어서 일게다.

     

     

     

    사과는 아직은 시장에 나오기는 좀 이르다. 사실 사과는 아침 서리를 맞고 그 서리를

    태양으로 달구어 내야 맛이 든다. 이즈음에는 사과밭에도 낙과가 많이 생기는 편이다.

    한 바구니에 오천원이면 아직 그리 싼편은 아닌 듯 하다.

     

     

    충청도 서산은 생강으로 유명하다. 서산과 아산은 지리적으로 가깝다보니 아산에도

    생강을 재배하는 농가가 제법 된다. 충청도라는 풍토가 생강에 적합한 황토인 탓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와이프는 쪼그리고 앉아서 좋은 생강들만 고르고 골라서 한 무더기를 산다.

     

    "생강이 뭐... 그기 그기지... 뭐를  그리 골라?" 나의 핀잔성 멘트에

    "고르는 재미지!" 라는 답이 돌아 온다.

     

     

     

    구슬만한 감자가 눈에 들어 왔다. 스쳐 지나가다가 다시 뒷걸음으로 와서 본다.

    한말쯤이나 될까? 다 팔아야 겨우 차비하고 손주 과자값이나 하겠다 싶다.

     

    갑자기 울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구포에서 차삯을 물고 대동이라는 곳까지

    자주 이삭을 줏으러 다녔다. 철따라 초여름에는 찰보리 이삭을 줏어와서 미숫가루를

    만들어 주셨고 가을에는 감자 이삭을 줏어 왔다.

     

    주먹만한 것들은 삶아서 모자라는 양식에 보탰고 구슬만한 것들은 쪼려서 반찬으로

    만들어 주셨다. 오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분이다.

     

    와이프도 눈치를 챘는지 두말없이 한봉지를 샀다.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도 마수란다.

    한주먹이나 더 담아 준다. 받기 미안하지만 마수걸이에 기준이 좋아야 하루의 장사가

    잘 된다는 장마당의 전통이 있는 만큼 흔쾌히 담아 왔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먹는지 모릉께~"

    할머니는 늦은 시간의 마수걸이를 그렇게 변명하셨다.

     

     

     

    짚으로 만든 새집...

    베란다에 하나 쯤 사서 걸어 두고 싶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베란다가 좁은 탓이다.

    개를 키우자, 새를 기르자, 거북이를 사고 싶다는 막내의 바램에 불을 붙이기 싫어서가

    결코 아니다.

     

    나이를 먹는가 보다. 요즈음은 왠만한 지름신의 뽐부질에도 어지간히 내성이 생겼다.

     

     

     

    일렬로 늘어선 키들...

    이즈음 시골에서 요긴하게 쓰일 도구들이다. 참깨나 들깨, 그리고 콩 수확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인 것이다.

     

    어릴적에 단 한번 머리에 덮어 쓴적이 있었다. 늘 다니던 솔밭에서 오줌누는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요에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세계지도에는 못 미치는

    자그마한 한국 지도였는데 엄마는 야속하게도 저 키를 머리에 씌우고 바가지를 들려서

    소금을 꾸어 오게 하셨다.

     

    그리고 불이나게 주걱으로 뺨을 맞았다. 너무 억울해서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던 그 집

    철 대문에 참외만한 돌을 두덩이나 던지고 씩씩 거리며 돌아왔다.

     

     

    은빛이 도드라져 보이는 갈치...

    아직도 핀잔을 가끔 듣는다. 경상도 억양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는 칼치로 발음을 해

    주변사람들에게 웃음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쌀..살의 발음을 구분하지 못해 충청도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어릴쩍에 방학이면 외가에 가서 살았는데 장날이 되면 외삼촌은 새마을 복을 차려입고

    녹색의 새마을 모자를 쓰고 삼천리표 자전거를 잡고 사랑방앞에서 외할배한테 외출을

    고하는데 외할배는 늘 잊지 않고 당부하셨다.

     

    "대그이 주구로 갈치나 몇 마리  사오너라~"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와이프는 떫은 감을 한접 샀다. 110개를 세어서 넣었다는

    한 상자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곳감을 만들겠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뭔 곶감이냐고 했더니 그래도 만들고 싶다고 고집이다. 그래서 키 장사에게

    커다란 소쿠리도 하나 샀다.

     

    시장 다녀온 두시간 동안 마주 앉아서 감만 깍았다. 와이프가 어릴때 장모님이 감을

    깍아 소쿠리에 담아 가을볕에 말려두곤 했단다. 오며 가며 와이프와 처남들이 다 먹고

    결국에는 장모님은 하나도 입에 넣어 보지 못했단다. 아마도 그때가 생각이 난듯 하다.

     

    "이번 명절에도 못 가 봤는데 이번 주말에 다녀 오지..곶감 몇 개 가져다 드리고..."

     

    와이프의 얼굴에 곶감보다 붉은 열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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