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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수필> 첫눈
    디카隨筆 2007. 12. 18. 16:02

    <디카수필> 첫눈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구가 점점 따뜻해진다거나 남북극의 빙산이 녹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요즈음 자주
    듣는 이야기 중의 하나다. 그래도 피부로 체감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데 기후란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변화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몇십 년에 걸쳐서 몇 도 정도 변하는
    아주 점진적인 변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피부로 와 닿을 만큼 작년보다 변화의 폭이 크다. 작년에는 11월 중반에
    이미 눈이 제법 왔고 두툼한 외투를 입고 다녔다. 올해는 12월에 들어서야 작년에 입었던
    외투를 꺼내 차의 뒷좌석에 던져놓고 다닐 뿐 좀체 입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첫눈이 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달라진 기후의 변화를 느낀다. 특히 첫눈에
    대한 기대가 큰 막내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창문을 내다보고는 한다. 며칠 전에도
    잠깐 눈발이 날렸다고 하는데 바닥에 쌓일 정도도 아니니 첫눈이라 하기엔 부족하다.
    첫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있어서 양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질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애매함을 유지할 수밖에 없으나 일단 바닥에 쌓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쌓인 눈이 최소한 반나절은 가야 눈이 내렸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일 것이다.


    내가 태어나 유년기와 학동의 시절을 보낸 곳은 낙동강이 마지막 용을 쓰고 바다로 빠지는
    구포라는 곳이다. 겨울이면 나무로 만든 썰매를 들고 얼어붙은 무논에서 종일을 놀아도
    얼음이 물러지지 않았고 한해에 두어 번의 소담스런 눈이 내리곤 해서 장독 위에 앉은 눈을
    살포시 걷어다가 신화당 같은 상표의 사카린 가루를 솔솔 뿌려서 먹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제대로 된 눈 구경은 몇 년에 겨우 한두 번이 고작이고 얼음이 얼지 않는 겨울이
    대부분인 그런 곳이 되었다. 한마디로 겨울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예전에는 춥지 않은 겨울에는 다음해 봄 농사가 흉년일 거라며 동네어른들의 한숨이 깊어
    우환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더 귀해진 지금에는 전설처럼 들릴 뿐이다.
    날씨가 추워야 논둑에서 겨울을 나는 벼별구 같은 해충들이 죽을 텐데 춥지 않은 겨울은
    그들의 생존능력을 키워 흉년의 잠재적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아이들이 나고 자란 포항에서도 눈을 보기란 힘들었다. 뉴스에 눈이 왔다는 뉴스에도
    아이들은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에 산다는 데 대한 불만을 쏟아 내고는 했다. 10년 전에
    충청도로 이사를 오고 나서 아이들은 겨울철마다 듬뿍 내리는 눈을 즐기곤 했다.
    듬뿍 이라는 말은 그동안 생활했던 곳에 비해서라는 말이다.


    사실 눈이 오면 출퇴근이 우선 걱정된다. 도로가 좁고 눈길에 강한 자동차가 드문 우리의
    길 사정으로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지는 탓에 눈길 30분 운행은 보통 때의 열 배의 집중력과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도 나 역시 눈을 기다린다. 저녁에 날씨가 꾸무리했거나 일기예보에
    눈이 온다고 한 날은 아침에 일어나 창문부터 열어보게 되는 것이다. 눈이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와 풍경이 출퇴근의 고통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오십이라는 나이의 빗금을 살짝 밟은 내가 이리 눈을 기다린다는 것이 우습긴 하다.
    "아빠에게 없는 네 가지…, 그 중에 네 번째 <철>"이라는 아이들 말처럼 이 나이에도 철이
    들지 않은 탓일까.


    그래도 오늘은 오전에 한 시간 정도 눈이 내렸다. 개념상 '첫눈"이라 할 만하다. 서너 시간이
    지났지만 응달에는 아직 쌓여 있을 정도여서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12월의 중반이
    지나도록 첫눈이 오지 않았다는 섭섭함은 조금 달랠 만 하다.


    다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맛보기로 슬쩍 지나가는가 보다. 섭섭하다.
    '첫눈'을 맞으며 손잡고 같이 걸어 줄 사람이 없어서 섭섭하다. 창문에 손을 집고 내다보는
    창밖에 흩날리는 눈이 밟는 갈짓자 스텝을 따라 현장에서 망치질 소리가 들려 온다. 열심히
    일하는 동료가 있는데 혼자서 눈 구경에 빠진 나 자신에 대해서도 섭섭하다. 점심을 먹고
    낚시터로 나와 얇은 얼음 위에 소담하게 쌓인 눈을 갈대의 흔들림 사이로 넘겨 본다.
    군데군데 원형 탈모처럼 녹아 내려버린 눈도 왠지 섭섭하다. 사람도 없는 국도변 낚시터 옆을
    "기호 0, 기호 0"을 외치는 확성기 트럭에 쫓겨 떠나는 철새들도 오늘은 섭섭하다.
    오늘은 왼통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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