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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수필>비오는 겨울밤 진공관의 따스함 /김대근
    디카隨筆 2007. 12. 29. 15:09

     

    비오는 겨울밤 진공관의 따스함


    겨울임에도 비가 왔다. 그렇다고 세차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비가 온다는
    사실만 인지시키려는 듯 미적지근하게 내렸다. 방에 불을 끄고 창문을 통해
    길거리를 내려보니 가로등에 비치는 빗줄기가 무언가 모를 아픔을 전한다.


    오랜만에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침저녁으로 마주하지만
    아주 먼 곳에서 오랜만에 돌아온 것 같은 마음으로 LP 판들을 골랐다.
    그러고 보니 진공관 앰프도 낯설만큼 오랫동안 마음 밖으로 밀어 두었던 것 같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한동안 티볼리 라디오에 빠졌던 탓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해보기로 한다. 아주 고풍 스러운 티볼리 라는 상표의 이 라디오에
    한동안 빠져서 있었다. 식구들은 찌지직 거리는 아날로그 라디오를 끼고 사는
    나에게 곱지않은 눈길을 보냈지만 트랜지스터 라디오로는 유일하게 생산되는
    제품이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있으니 가깝다는 위치적 이유로 그 쪽으로 손이
    많이 가게되니 자연히 멀리 떨어진 진공관 앰프가 찬 밥일 밖에 없다.


    봄에 진공관을 바꾸어 들었으니 몇 개의 계절을 뛰어넘은 지금 또 다른 진공관으로
    겨울을 나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서랍을 뒤져 볼록 볼록한 포장지에 곱게 싸두었던
    EL-34를 꺼내 봄, 여름, 가을을 지킨 KT-88과 교체를 했다. 사람에게도 개인마다
    이름이 있듯이 EL-34니 KT-88이니 하는 것들은 진공관의 이름들이다.


    내가 가진 오디오 시스템은 참 간단하고 소박하다. 20년도 넘은 스피커 두 개, 역시
    그 정도 연륜이 지난 국산 LP플레이어( 턴테이블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플레이어
    라는 말이 좋다- 지극히 개인적인~), 지인이 버리려는 걸 주워온 튜너(튜너라는
    말은 라디오를 말한다.), 십만 원도 채 안 주고 산 CD 플레이어가 전부다.


    아! 가장 중요한 앰프가 빠졌다. 이 앰프는 몇몇 이런 류의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부품을 구입하고 공동으로 케이스를 만들고 조립한 일명 공제(共製)라고 하는
    진공관 앰프다. 설계자의 탁월한 안목으로 메인 진공관을 EL-34와 KT-88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것들에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대로 번갈아 들을 수 있게 설계가 되었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앰프다. 최근에 한쪽의 출력에 문제가 좀 생긴듯하지만 손본다
    손본다 하면서 아직 그대로다. 그러고보면 나도 꽤나 게으른 편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사람들은 깨끗한 음질의 CD 플레이어를 두고 한물간 LP판을 듣냐고 타박을 놓지만
    고급음질에 적응하지 못하는 둔감한 음감에다가 어차피 LP판 듣는 목적이라 굳이
    스테레오에 집착하지 않는 탓이다. 그래도 게으른 주인을 만나 앰프가 다소 고생하는
    중이다. 한 두어 시간이면 수리를 할 수 있을 텐데 미적거리는 것은 내가 가진 단점이
    잘 발현된 것 중의 하나다.


    늘 오늘은 하리라, 내일은 하리라 하면서도 아직 못하는 운동과 같다.

     

     
    이 사진은 EL-34를 심장으로 했을 때의 모습이다. 가장 잘 어울린다. 앰프의 사이즈가
    좀 작다 보니 길쭉한 키다리 EL-34가 외형상 잘 어울려 보인다. EL-34는 음이 상당히
    섬세해서 아주 맑고 고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기타나 현악기류의 음을 잘 표현한다.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실내악은 특히 잘 표현해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주관적인
    느낌이리라…. 막 귀 주제에…. �…. 그래도 겨울에는 관현악이 제격이다. 그래서 가을부터는
    보통 이놈으로 갈아주는데 올해는 좀 늦었다.

     

     
    이놈이 조금 전까지 심장의 역할을 하고 있던 진공관인 KT-88의 모습이다. EL-34의 다소
    여성적인 모습에 비해서 씩씩하게 생겼다. 그래서인지 소리도 질감이 느껴진다. 사실 나는
    음악적 자질이 부족한 편인데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넉넉하고 풍부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갈기 전에 한 컷을 했는데 역시 쌓인 먼지가 녀석의 쓸쓸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진공관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불빛이다. 진공관이 내는 특유의 소음들이 있는데
    오히려 막 귀인 나에게는 이 불빛의 아름다움이 상쇄하고도 남는다.

     

    따스함이 그리운 계절이 아닌가. 이 진공관 불빛이 주는 따사로운 느낌을 즐기는 것도
    한겨울을 나는데 작은 도움이 되리라.

     

     

     

    마침 골라진 LP 판이 박강성의 것이다. 소제목으로 붙여진 "그대 뒷모습에 비는 내리고"가
    마침 내리는 비와 어울리는 듯해서 몇 장 이것저것 빼 보다가 골라내었다.


    가사가 마음에 든다.


    그대 뒷모습에 비는 내리고


    마지막 남은 추억마저
    시든 꽃처럼 버려져 있고
    우리 사랑은 비가 되어
    눈물 같은 하얀 비가 되어 떠나네
    우 우 우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랑을 버린 그 여인은 무슨 아픔이 있을까
    슬픈 뒷모습 그만 눈물 흘리며
    떠나는 아픈 모습엔 스러지는 내사랑이
    아직 그대로 남았을까? 우~우~
    이젠 어디서 울고 있나 비를 맞으며
    내 사랑 홀로 서있는 그대 작은 모습은
    내 마음 슬프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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