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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수필- 봄이 튀는 소리, 섬진강
    디카隨筆 2008. 3. 9. 00:32

     

    봄이 튀는 소리, 섬진강

     

     

    꽃 소식은 남에서 몰려온다. 봄이 되면 제주도의 유채꽃 소식부터 시작해서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 소식이 들리는가 싶으면 이어서 섬진강변의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줄지어 선다. 지리산의 산수유 소식이 오면 긴가 민가 하던

    봄이 확연히 피부로 와서 닿게 된다.

     

    개구리가 잠을 깨고 나온다는 경칩을 하루 지나 꽃 소식을 찾아서 섬진강으로

    떠났다. 남도의 꽃 소식들 중에서 오동도의 동백도 좋기는 하지만 동백은 겨울꽃에

    오히려 가깝고 매화는 설중매雪中梅라는 옛말처럼 겨울꽃인듯 하지만 실상은

    첫 봄의 열쇠같은 꽃이다. 이틀뒤면 '섬진강 매화 축제' 열린다는 알림판이 어디서나

    들리고 보이니 오늘쯤이면 제법 꽃 세상을 이루었으리라 짐작을 했었다.

     

     

    몇 백리 긴 여정을 끝 마친 섬진강의 강물이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관문이다.

    바닷물과 민물이 사이좋게 서로를 받아 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은 늘 경이롭다.

    사람들이 자연의 10분지 1만 닮아도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이 될까 싶다. 아무런 저항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저 강물을 보라.

     

    여기는 아직 봄의 훈풍이 불지 않았다. 공간의 구획선을 사이로 정박한 채로 바람에 몸을

    맡긴 어선과 갈대…, 한쪽은 출항을 앞둔 기다림에 설레는 중이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분신을

    바람에 맡겨 날리고 사그라져 가야할 안타까움의 끝에 있는 것이다.

     

     

     

    가끔 경계의 끝에서 고민할 때가 있다. 하나의 일을 끝내고 새로운 일을 맞이하는

    경계이거나 아이의 진로를 두고 결정해야 할 때의 경계, 지독한 상심傷心의 끝이나

    지극한 희심喜心의 경계등에서 생기는 고민이야 말로 진을 빠지게 하는 일이다.

     

    인생이라는 행로를 질주하는 기차에서 객차와 객차 사이의 경계가 어떤 의미도 없지만

    매번 경계에서 우물쭈물대는 것은 아직 마음공부가 부족함일 것이다.

     

     

     

    강변에서 상념想念에 빠졌다가 이 길에서도 나그네임을 깨닫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 이내 섬진강을 가로 지르는 철교를 만났다. 워낙 낡아 있어서 기차가 다니기는

    하는지 궁금하다. 마침 매실나무에 두엄을 내고 오던 농부가 곁을 스친다.

     

    "저기… 열차는 다니나요?"

    "그람요! 자주 다니지라~ 서울가는 것도 하루에 한번 있구요이~"

     

    녹슨 철교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고 있구나 싶다. 하긴 하류쪽으로 가면 고속도로가

    잇고 상류쪽으로도 줄줄이 다리들이 서로를 있고 있는데 유독 철교의 이어짐이 주는 벅참은

    그 연원을 모르겠다.

     

     

     

    아직은 봄은 조금 이른듯 하다. 카운트다운 중에서 거의 다 까먹고 이제 "투…원…제로"만

    겨우 남겨 놓은 듯하다. 피기전의 매화꽃 봉오리는 강냉이 같다. 가지들 마다 강냉이 알들을

    수없이 매달아 놓은 것 같다.

     

     

     

    "펑~이요!"

    오일마다 열리는 장판에서 됫박으로 강냉이를 시커먼 주물기계에 넣고 아래에 불을

    피우고 빙글빙글 돌리다 압력게이지가 임계압력에 바늘을 꽂으면 까맣게 염색한

    군복 점퍼를 입은 아저씨가 사람들을 향해 고함을 치고는 했다.

     

    "펑~~~"

    귀를 막아도 고막을 울리던 굉음이 멀리 떨어진 국극단의 깃발을 흔들고 땅에 떨어지면

    이어서 풀썩이며 하얀 수증기가 눈앞을 가리다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곤 하던 하이얀

    강냉이 튀밥, 뒤어어 코를 자극하던 달디단 사카린 내음……

     

    섬진강은 지금 봄이 튀는 소리가 들린다. 사카린 냄새 대신 두엄냄새가 섞여서 말이다.

     

     

     

     

    강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것이 철교와 다리가 어색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싶다.

    역시 섬진강의 물길은 배가 이어야 하는 것이 제격인듯 하다. 고정관념일까?

    이제 배는 더 이상 강을 잇지 않는다. 그냥 강의 자궁을 채우고 있는 제첩을 따글거리며

    긁어내는데 사용될 뿐이다.  배가 이어주던 세월보다 몇 십 배는 빨리 서로 소통되지만

    인심人心의 벌판은 왜 자꾸 가물어 가는지 모르겠다.

     

    겨울이 조금씩 비키고 있는 자리를 곧 봄이 채울 것이다. 회색빛 풍경도 봄의 혈관으로

    푸른빛 피가 돌게 될 것이다. 섬진강은 구비구비가 예민하고 물폭이 잘록해서 아마도

    봄이 제법 어울릴 것이다. 그때쯤 다시 발걸음의 약속을 매실나무 가지끝에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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