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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수필- 봄은 3박자로 온다 /김대근
    디카隨筆 2008. 3. 15. 22:34

     

    봄은 3박자로 온다

     

    강약약으로 표현되는 3/4박자, 봄은 그렇게 오는 중이고 겨울의 빈자리를 하나씩

    채워가고 있다. 식구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떠나고 적막만 흐르는 집안에서 멀건히

    누워있으려니 텔레비젼은 남녘의 봄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하다. 어제는 서울 나늘이를

    했었다. 서울에도 이미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려 겨울과 봄의 임무교대를 알리고 있다.

    장롱을 한참 뒤진 끝에 찾아낸 등산복을 입고 물병에 물을 채워 넣고 카메라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저 짐작에 남녘의 봄소식과 서울의 산수유 꽃망울이 핀 선의 가운데

    쯤이 위치적 공간이니 오늘은 제법 두둑히 봄 소식을 메모리 가득 채워 오리라.

     

     

    불과 2주전에는 멈추어 있던 물줄기가 힘차게 산의 마음을 쏟아내 하류로 흘러 보낸다.

    촤르르 촤르르 3박자로 이루어진 노래를 품고 말이다. 겨울에는 산의 혈관인 계곡은

    얼어 붙어 잠시 멈추어 있다가 봄이 되면 제일 먼저 녹아 흐르며 중턱과 아래, 계곡과

    계곡의 기운을 실어다 나른다. 동면했던 산은 마침내 기지개를 펴고 대지는 나긋해지고

    바위도 물러지는 것이다.

     

     

     

    나긋해진 대지의 힘을 받아 나무둥치에도 새로운 옷이 입혀졌다. 오랫만에 하는 운동이

    첫 가파름을 만나며 심장이 쿵.작.작 쿵.작.작 3박자로 뛰어댄다. 풀썩 주저앉고 싶지만

    초입에 지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다시 발길을 잡아 챈다.

     

    역시 봄은 땅의 기운을 통해서 먼저 오는 것인가 보다.

     

    주차해 둔 주차장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 산불예방대책본부에서 말씀드렸습니다."는

    말끝마다에 구구구 구구구~ 산비둘기가 3박자 울음으로 화답을 한다.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이름모를 산새도 째재잭 째재잭~ 추임새를 넣는 이 골짜기는 제법 왁자하다. 4계절을 돌아서

    열리는 봄 난장(亂場)이 벌어진듯 하다.

     

     

     

    봄은 군대의 행군과 같다. 일렬로 서서 행군하며 점령지를 뒷 군사에게 맡기고 다시 새로운

    싸움터를 향해 떠나는 군대…

    그래서 봄이 왔다거나 겨울이 갔다거나 하는 말은 틀린 말이다. 봄은 오는 중이고 겨울은

    가는 중이다. 종료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봄의 군대는 가는 곳 마다 온갖 것들을

    찝적거려 흔적을 남긴다. 덩굴나무의 마디마다 춘군春軍에 유린당한 흔적이 피어났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이 공존하는 풍경은 아름답다. 하기는 자연이 봄,여름 따위의 계절을

    알리 없다. 봄이라는 것도 여름이라는 것도 모두 인간이 제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경계의

    이름일 뿐이다. 여기서 여기까지는 봄이고 저기서 저기까지는 겨울이다 하고 디지탈적인

    구획을 지어둔 것도 역시 인간들이다. 계절이 가고 오는 것은 아날로그다.

     

     

     

    두더지도 이제 봄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겨울잠에서 깨어 났다는 것이다. 지난한 한 철을

    잠만 자고 이제 일어나 굴을 파고 새로운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낳고 기를 것이다.

     

    어릴적 이야기다. 4월에서 5월이 되면 삽 한 자루와 꼬챙이, 성냥 한 통을 챙겨서 들로

    나갔다. 논 둑을 더듬어 가면 두더지 굴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두더지는 항상 굴을

    따로 뚫어 탈출로를 만들어 두는 습성을 아는 우리는 그 퇴로 뚫어둔 굴의 입구를 찾아서

    한 곳에는 불을 피워 연기를 굴에다 집어 넣는다. 그러면 반대측 구멍으로 두더지가 피난을

    하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두더지 일가의 이동은 제일 맏이가 제 어미의 꼬리를 입으로 물고

    둘째는 맏이의 꼬리를 물고……

     

    어미를 잡아서 들면 일곱에서 여덟마리 정도인 새끼들도 그대로 달려 올라 온다. 그 것을

    들고 한약방에 가면 서너명이 영화 한 번 볼 수 있는 돈을 주고는 했다. 

     

     

     

     

    산당(山堂)이다. 등산로에서 한참 따로 떨어져 있는 곳인데 오늘은 이 길이 끌린다.

    누군가의 소망이 아직 한 뼘이나 남은채 버려졌다. 어지간히 속타는 소망이었던지

    산당마저도 그을려 놓았다. 지금은 무속인들이 산의 기를 받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지만

    예전에는 나뭇꾼, 심마니는 물론이고 이 산을 근거로 살아가는 이랫동네 사람들도 여기에

    정성을 들이곤 했다.

     

    미신迷信 이니 뭐니해서 일부러 잊어려는 듯 한 것이 요즈음의 세태다. 첫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몸을 행구고 장독대에서 자식들의 무운을 빌던 어머니, 부엌의 시렁에 올려둔 단지에

    쌀 한줌을 넣으며 "조왕님... 조왕님... 우리 대주 건강하게 하옵시고~" 하며 빌던 행위들을

    어찌 미신이라 하겠는가. 정성이란 스스로의 충전이다. 그 대상이 무었이거나 간에 진실한

    정성을 바칠 수 있는 마음이 된다면 그래서 그것이 타인이나 다른 사물에 인자함으로 배어

    나올 수 있다면 가장 훌륭한 종교이리라.

     

     

     

    산당에서 주로 볼수 있는 시루다. 지금도 강원도 산에는 돌무더기 위에 시루가 얹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호환虎患을 당한 사람의 무덤이다. 호환을 당하게 되면 그 혼이

    호랑이의 수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이끈다하여 그 혼을 봉인하는 의미로 떡시루를 얹는다.

    산당이라는 것이 산신에게 예를 바치는 공간이고 산신은 호랑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산당에서 다시 등산로로 찾아 가는 길은 겨우 발 폭만큼 이어진 길이다.

    그나마 오랫동안 사람의 발자국이 닿지 않아 지난 가을에 쌓였던 낙엽들이

    밟을때마다 바스라지는 소리를 냈다.

    바스락 바스락~ 3박자 음을 내며 말이다.

     

    계곡 아래서 가두어 키우는 개가 짖어댄다. 아마도 낯선 등산객이  우리앞을 지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짖는 소리에 힘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침을 부실히 주었거나

    아직 안주인이 설거지를 마치지 못한 것일 것이다.

     

     

     

    버섯은 습기를 먹고 산다. 10여 미터 쯤  떨어진 계곡에서 얼었던 물길이 새로 열려

    산의 혈관이 도는 탓인지 버섯에서도 윤기가 느껴진다. 꼭 수탉의 벼슬같이 생겼다.

     

    어릴쩍 외가에는 스무마리 정도의 닭이 있었고 자유롭게 마당을 돌아다니던 닭들은

    밤이 되면 잿간으로 찾아 들어 잠을 청했다. 잿간위에 매달린 망태기에는 하루에도

    서너개의 달걀이 거두어 졌고 외숙모는 계란찜을 자주 해주었었다.

     

    닭들의 무리에는 건장한 수탉이 두마리가 있었는데 이들은 아주 자주 싸웠다.

    이기는 쪽은 늘 암닭의 등위에 뛰어 올랐다. 어린 마음에 암닭은 전리품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보기도 했다. 싸우고 나면 한 동안 승자와 패자의 구분없이 머리위에 달린

    벼슬은 피범벅이 되었고 딱지가 아무렇게나 앉아 보기 흉했다. 수탉의 벼슬을 닮은

    이 버섯이 잠깐 동안 머언 과거로 나를 싣고 갔다 왔다.

     

     

     

     

    사람들은 봄을 자신의 눈보다 높은 위치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입에서도

    산에서 가장 먼저 피는 산수유의 노란 꽃을 찾기만 했는데 아직 그곳까지는 봄이 닿지는

    못한 듯 하다. 그래서 눈을 낮추니 낙엽속에, 나무 맡둥치에, 바위 아래에 봄은 있었다.

     

    굽고 굽은 가지의 끝에도 봄은 왔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의 시작점에서 쑥을 만난다. 봄 나물의 대표다. 해발 500미터가

    넘는 이곳에 쑥이 저렇게 돋아났으니 아랫마을의 들판에는 부지기로 돋았을 것이다.

    지금보다 서너배 젊었던 엄마는 봄이면 종일 쑥을 캤다. 날마다 식탁에는 쑥국이 올라 왔고

    쑥국에 넣은 들깨가루는 보리밥이 식도를 부드럽게 타도록 해주는 윤활유가 되곤 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오면 소쿠리에는 쑥과 밀가루를 버물러 쪄낸 '쑥털털이'가 담겨져 있어

    5남매의 배고픔을 달랬다. 엄마가 큰 마음을 먹은 날에는 쑥떡이 방아간에서 막 뜨거운 김을

    간직한 채 왔지만 나는 쑥떡보다는 노란 콩고물이 더 좋았다.

     

    아직 진달래 피는 철도 아닌데 서둘러 온 두견이가 3박자 울음을 울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1킬로쯤이다. 그러나 무척 가파른 길이어서 중간에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한다. 입구에 작은 데크에 까만 비닐봉지에 2병씩 담아 놓은 봉지 여러 개가 있다.

    이것을 들고 오르면 정상에서 막걸리와 컵라면을 파는 장사치가 막걸리 한 잔을 준다.

    막걸리 두병이면 노란 막걸리 잔으로 8잔이 나온다. 그중 한 잔은 이것을 들어다 준 사람에게

    나머지 일곱잔은 한잔에 2,000원에 판다. 3,000원짜리 막걸리가 14,000원이 되는 것이다.

    나도 한 봉을 들고 오를까 하다가 아무래도 카메라가 방해가 될 것 같아서 포기한다.

     

    토요일인데도 정상은 붐빈다. 단체 등반객들의 부산스러움에 섞여 있다가 2,000원을 주고

    막걸리 한 잔을 사 마셨다. 안주는 멸치와 고추장, 마늘쫑이 전부지만 목을 넘는 막걸리는

    달디 달았다. 자꾸 입맛이 다셔 졌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혈관이 돌면서 연해진 땅의 껍질은 질퍽했다. 아예 늪지처럼 되어버린 하산길을 피해

    낙엽을 밟으며 찾아든 계곡은 생각보다 깊었다. 아마도 두어배는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것이다.

     

     

     

    우연히 잡은 길이 계곡옆에 분지에 조성된 밤 밭이다. 새마을 사업이 한참이던 때에 조성된듯

    대규모 밤 밭인데 수익성이 없어지면서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속을 모두 비워내고

    가시와 껍질만 남은 밤껍데기는 수도 없이 널려 있었다.

     

    나는 등산스틱을 골프채로 삼아 밤 송이를 날리며 부자 흉내를 좀 내보기도 했다.

     

     

     

    봄의 전위대가 일차 점령의 흔적을 남기고 간 계곡은 생각보다 풍요했다. 이끼는 튼실하게

    자신을 살찌워 꽃술을 피워내고 있었다. 역시 봄은 공간을 통해 전해지는 것보다 땅의

    매질을 따라 전해지는 것이 몇배는 빠른 듯 하다.

     

    투두둑 투두둑~ 이끼들이 터트리는 봄의 소리도 오늘은 3박자다.

     

     

     

    소태나무에는 아직 봄이 찾아 오지 않았다. 겉만 그럴뿐 아마도 속으로는 봄이 수액을 부지런히

    돌리고 있을 것이다. 소태나무는 그 수액들을 거르고 걸러서 쓴 맛 만을 속에 갈무리 할 것이다.

    5남매에게 젓을 물리느라 엄마의 젖은 막내에게는 그 양이 많이 줄었었다. 막내는 유난히 젖을

    보챘는데 문제는 넷째였다. 넷째는 다른 형제들보다 유난스레 늦게 젖을 떼었다. 막내에게 젖을

    물릴라 치면 달라 붙어 한쪽 젖꼭지를 물고 늘어졌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갔다. 아버지는 산을 한참 헤맨끝에 나무 하나를 찾았고 그 가지를

    몇 토막 잘라서 왔다. 엄마는 그것을 냄비에 넣고 푹 삶아서 젖꼭지에 발랐고 두 동생은 그날

    이후로 젖을 뗐다. 막내는 손해를 본 셈이다. 그 나무가 소태나무 였다.

     

     

     

    두견이의 울음이 급하다. 아마도 봄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은 것일 게다.

    "난리가 날 게여~ 산 두어개 너머는 벌써 난리가 났단 말이여. 춘군春軍들이 아주 야멸차게

    밀어 붙이고 있다는 게여"

     

     

     

     

     

    마지막 옹달샘이다. 따지면 옹달샘처럼 땅밑에서 �는것은 아니고 계곡의 물들이 돌밑을

    따라 넘쳐서 삐져 만든 샘이다. 도룡룡 한 마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마실을 나왔다가 얼른

    숨어 버렸다. 내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쪽에 숨어서 가만히 기다린지 20여분만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고마운 김에 얼른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찍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이놈에게는 내가 이방인 일 터이고 막 겨울잠을 깨어 처음 나와서 만난 인간에게 거부감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도 한 컷이라도 허용해준게 어니댜 싶어 발걸음이 가볍다. 녀석은 아마

    며칠내로 저 옹달샘에 알을 담뿍 낳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씨앗을 뿌리는 봄의 이미지가 저들

    에게는 결실의 계절인 것이다. 종족번식의 하일라으트를 그들은 봄에 맞이 하는 것이다.

     

     

     

    이제 민가의 냄새가 난다. 산행이 끝나는 곳에는 밭이 있었다. 아직 주인이 갈지 않은 밭에는

    냉이가 땅의 기운을 부지런히 엽록소로 바꾸고 있다. 엽록소의 부피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

     

     

     

     

    산매실 나무에 꽃몽오리가 터질듯 말듯 하다. 펑튀기 기계에 넣기전의 강냉이 같다.

    펑튀기 기계로 치면 봄은 임계압력의 4/5까지 바늘이 가르키고 있을 것이다. 펑하고 터져서

    하얀 꽃닢을 세상에 내 놓을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주에 이미 섬진강에서 임계압력을 넘어버려 터져 버린 꽃을 보고 왔다.

    1/5의 거리가 1,000여리는 족히 되는 셈이다.

     

     

     

     

    아르륵 아르륵~ 맹꽁이처럼 우는 산 개구리들의 흘레붙는 소리에 복숭나무의 새순들이 발갛게

    발기를 한다. 그러고도 춘정을 이기지 못해 바르르 바르르~ 3박자로 떤다.

     

    복숭아 밭 옆에 습지에 잔뜩 덮힌 개구리 알들이 풍성하다. 이렇게 풍성한데도 산개구리들은

    흘레를 붙는다. 그놈들 참 욕심도 많다.

     

    "하긴 다다익선이지"

     

     

     

    일명 로드킬(roadkill)로 생명을 마감한 녀석도 있다. 승용차로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끝인데

    아마도 습지의 영역투쟁에서 밀려나 새로운 삶을 찾으려 여행을 떠나던 중이었을 것이다.

     

    사람에게도 이들에게도 삶이란 야박한 것이다.

     

     

     

     

     

    사람의 발걸음이 잦은 곳에 내려와서야 봄 꽃을 만난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사람들은 벚나무에

    꽃이 피어야 봄이고 산수유가 노랗게 가지를 채워야 봄이라고 생각한다.

    햇살 좋은 언덕에 낙엽을 밀치고 바스락 바스락~ 꽃을 피워내는 들꽃들, 이 들꽃들이 진정한

    봄의 주인이다.

    바스락~ 바스락~ 3박자 소리를 내며 봄을 여는 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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