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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하루의 찌그러진 초상..
    디카隨筆 2006. 8. 25. 22:44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 출장길에 올랐다. 저녁형 인간의 한계는 늘 아침이 힘들다는데 있다. 나는 늘 늦게 자고 반면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정말 싫은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에 속한다. 5층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몇 번의 하품이 텁텁한 입에서 새어나온다.

     

    아침에 일어나기 위하여 온 몸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때는 자영업자가 정말 부럽다. 30년 넘게 이어온 월급쟁이에게 시간적 자유가 없기 때문에 아침에는 늘 시간에 쫓긴다. 비단 아침뿐이랴.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저녁 퇴근인들 제시간에 하기 힘들다. 그러기에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는 직장인이 꿈꾸는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새벽공기 가르며 달린다. 며칠전 감기기운이 조금 있었던 것이 장거리 운전으로 늘 에어콘을 틀고 다닌탓에 생긴 냉방병 같아서 아침공기도 마실겸 창문을 열고 에어콘을 끄고 나니 엄청난 소음이 밀려들어와 모든 것을 밖으로 밀어낼 태세다. 나는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 불과 몇 분만에 백기를 들고 다시 창문을 닫고 에어콘을 틀고 말았다.

     

    오늘의 길경치중에서 가장 포인트는 무주에서 함양구간의 아침 안개였다. 덕유산을 감싸고 도는 안개들이야 말로 마치 선경(仙景)에 들어있는 느낌이다. 육십령 터널을 나왔을때의 함양쪽 경치도 세상의 어떤 화가도 그리지 못하리라. 아래로 내려보이는 함양을 감싼 산들의 겹친 실루엣들이 한 폭의 수묵담채로 잘 그려진 풍경화 같다. 무주에서 함양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빨치산의 대명사였던 이현상이라는 이가 지리산으로 숨어들던 루트였다고 했다. 지리산 아랫동네인 함양과 인근의 산청은 조선의 선비들을 많이 배출해내기로 유명했다. 산수가 저리 수려하니 그것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도 산수를 닮는 것이리라. 함양은 상림이라는 좋은 숲을 가지고 있다. 큰비가 오면 항상 물난리를 겪던 이 고을에 최치원 선생이 현령으로 오면서 물길을 바꾸고 지리산에서 좋은 수종의 나무들을 옮겨서 조성한 것이 상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조림으로 탄생한 것이다. 4대강 공사를 할때도 상림의 교훈을 새겼다면 자연과 잘 어울어진 공사가 되었을 것이다. 마음 하나만 깃발처럼 걸어놓고 지나치고 만다.

     

    아침 8시, 섬진강 휴게소에 닿는다. 여름을 막지난 섬진강은 여기저기서 익은 냄새가 솔솔~ 난다. 뜨거운 여름 햇살은 섬진강 주변의 경치도 모두 익혀 놓았다. 이제는 굳어가는 일만 남았다. 그것은 가을이 해야 할 일이리라. 순두부찌게로 아침을 먹는다. 강하나 건넜을 뿐인데도 남도음식의 맛깔스러움이 혀끝을 호강시킨다. 얼굴이 예쁜 여자에게서 우려먹을 것은 3년이고 음식솜씨 좋은 여자에게서 우려먹을 것은 10년이고 마음씨 좋은 여자에게서는 평생을 우려먹을 수 있다고 했다. 삶속에서 먹는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일텐데 나는 식탐이 유난이 적지만 전라도 음식만큼은 입맛에 잘 맞는다.

     

    조금 여유있게 목적지인 광양에 도착했다. 달린 거리가 아산에서 광양까지 400키로쯤 된다. 우리 단위로 천리길을 달린 셈이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관우에게 준 천리마보다 배나 빨리 달려준 애마가 고맙다.

     

    시계의 시침이 새로운 한바퀴를 돌아 처음 만나는 작은 기호..오후 1시에 나는 다시 차에 올라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 섰다. 표를 받고 남해안고속도로를 달린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지금이야 말로 에어콘의 역활은 참 애매하다. 틀면 조금 추운듯하고 끄면 후덥해서 땀이 삐질거린다. 잠도 조금 온다. 조금 망설인다. 사천에서 고속도로를 바꾸어 함양을 거쳐 대구로 해서 포항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늘 가는 루트를 따라 남해고속도로의 끝까지 가서 양산으로 해서 경부고속도로를 타느냐로 머뭇거리다 시점을 놓쳐버렸다. 사고하는 속도가 현실의 시간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단숨에 진영휴게소까지 왔다. 이제는 영락없이 양산을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경주로 해서 포항으로 가야 할것이다. 점심은 단감으로 유명한 진영에서 먹는다. 대동에서 다시 표를 받고 조금만 가면 새로 생긴 대저-대구간 고속도로와 분기점이 나오는데 조금 못미쳐 전화가 왔다. 그 바람에 차선 바꿈이 늦었다. 결국에는 밀양-청도-대구를 거쳐서 포항으로 가야만 하게 되었다. 삶이란 것이 요즈음 기상청 예보와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맞는것 같은데 지엽적으로 보면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빙빙 돌아서 광양에서 포항오는 길도 거의 400키로에 가깝다. 하루만에 800키로의 거리를 차속에만 있었더니 머리가 어질하다. 이를때는 조금의 변칙도 필요하다. 포항을 조금 앞두고 고속도로를 조금 일찍 내렸다. 몇 개의 산속으로 난 길을 더듬기로 했다. 오는 도중에 전화로 오늘 일은 대충 마무리가 되어 조금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므로 한적한 길로 드라이브를 제대로 즐겨야 겠다. 작은 일탈이다. 동네사람이 아니고는 잘 모르는 이길은 포항에서 십년넘게 살았던 기념품 같은 곳이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할때 자주 드라이브로 마음을 다스리던 곳이기 때문이다.

     

    산길을 따라 만든 꼬불거리는 길의 구비마다 커다란 볼록거울이 있다. 아이들의 장난스런 돌팔매 때문인지 차들의 바퀴가 퉁겨낸 돌들 탓인지 그 중 하나는 특히 심하여 거울전체가 뭉크의 그림같다. 삶 자체가 시간에 의해 강제되어진 현대인의 뇌속도 저렇게 찌그러지고 왜곡되고 있는 것을 아닐까.

     

    찌그러져 비치는 사물들이 오늘의 하루같다.

    여유없이 달리기만 했던 하루~

    그래도 이런 찌그러짐 속에서 나를 볼수 있음은 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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