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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첫눈 오는 날작은詩集 2006. 2. 20. 14:15
첫 눈 오는 날
오늘처럼 눈이 오는 날
짧지 않은 세월동안
줄잡아 수천그릇
따슨 밥을 축 내고도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값,
치루지 못했습니다.
가진것도 별스레 없는 삶
서랍을 뒤적거려 찾아낸
숨겨둔 적금 통장들 이거나
쌀독의 바닥까지 긁어서
갚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호시탐탐
오른쪽 귓볼쯤에 숨어서
찰나의 순간 기다리는
악귀에게라도 영혼을 주고
대신
갚을 수 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살아 있으면서
그 값을 치루지 못한 부끄러움
오늘만은
그냥 그대로 덮어두어도 좋을
그런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왠지 발자국 남기기도 두려운
아직은 빚지고 사는 삶,
갚지 못하는 부끄러움
잠깐
덮어 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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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첫눈이 내렸습니다.
눈오는 풍경을 창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현듯 그동안 내가
이렇게 첫눈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눈이 몇번이나 될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릴때를 빼고 첫눈이라는 인식의 범주를 가지고 느껴온 것도 따지고 보니
서른 몇번쯤 되는 듯 한데 인간들이 마음대로 지어놓은게 첫눈이라는 이름
으로 된 관념의 장난일뿐..자연에 처음이 어디있고 마지막이 어디에 있겠나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첫눈을 맞이하고 보니 또 부질없이 한해를 보내야 하는 가
하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무거워 지기도 합니다.
그동안 내가 지나보낸 수많은 첫눈들..
그 세월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말았지만 나는 사람값을 하고나 살았는지..
이 생각을 하니 부끄러워 집니다.
참 부끄러워 집니다.
사람으로 살면서 아직도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인지도 모르니
이것이야 말로 그동안 내 위의 소화액으로 녹여내 버려진 엄청나게 많은
똥들..오줌들..땀들...트림들..구토들이 모두들 손가락질을 할 듯합니다.
"이놈아! 사람값 못하면 너나 나나 오물인거는 같어.."'작은詩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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