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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가 넘쳐나는 지리산 화엄사
    여행기 2006. 7. 26. 01:29

     

    역사가 넘쳐나는 지리산 화엄사

     

     

     

    지리산에서 큰 사찰 2개를 꼽으라면 역시 하동 쌍계사와 구례

    화엄사일 것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화엄사를 다녀 왔다. 햇수로 아마 10년전쯤에

    들린 이후로 다시 가보는 곳이라 푹푹 찌는 무더위보다 오히려

    긴장되는 마음이 더 가누기 힘들다.

     

     

     

    이렇게 후덥한 날씨에 사찰을 찾으면 마음조차 시원해 지는 것은 아마도

    어느 절을 막론하고 이런 시원한 계곡을 안고 있음일 것이다.

    여름에 죽부인이 공기를 유통시켜 시원한 느낌을 주듯이 이런 계곡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 으로도 마음이 한동안 서늘해 온다.

     

    화엄사 입구에서 만난 시원한 계곡...

     

     

     

    지리산 화엄사라는 현판이 돋보이는 일주문....

    지금부터는 모든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한 생각만 하라는 뜻일게다.

     

     

     

     

    화엄사의 가람 배치들을 가장 잘 볼수 있는 건 일주문 옆의 조감도이다.

     

     

    화엄사는 본래 백제 영역이였던 지리적 여건에 따라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연기 조사가 창건하였다 하며 절의 이름은 불교의 주요 경전

    중의 하나인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회당(海會堂)과 대웅상적광전(大雄常寂光殿)만 세워졌고

    그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된 이후 몇번에 걸쳐

    중수되다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

    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 완성 하였다

    고 한다.

     

     


    화엄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찾기 힘들정도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

    재 2점등 많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건물들이 있다.

     

     

     

     

     

    화엄사는 가람의 배치가 좀 특이한데 일주문 격인 불이문을 지나면

    약간 어긋나게 금강문이 있고 다시 그 위로 천왕문이 다시 어긋나게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절이 대웅전 앞에 세워진 누각은 그 아래를 통하게 되어

    있으나 이곳 화엄사의 보제루는 밑을 지나지 못하고 옆으로 돌아가

    도록 되어 있다.

     

     

    절의 가장 중요한 건물에 속하는 대웅전과 각황전이 'ㄱ'자로 서 있음

    을 알수 있는데 그 모양이 불이문과 금강문 사천왕문까지가 하나의

    태극형상을, 연이어 보제루에서 운고각을 지나 대웅전 앞뜰에 이르기까지가

    또 하나의 태극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역시 토속신앙인 태극사상이 가람에 구현된 좋은 예일 것이다.

     

    천왕문 밑에 붙은 글귀는 오늘 화엄사에서 새로 조성한 부처님인지

    아니면 새롭게 개금(부처님의 몸에 금을 입히는 것)을 하였는지 그

    마지막 절차인 점안식을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화엄사를 중건하는데 많은 힘을 쓰신 벽암스님의 비...

    금강문의 바로 옆에 위치 해 있는 벽암스님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끄는 주요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제법 멋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운고각...

    법고를 매달아 두고 매일 울리는데 다른 절들은 불전사물을 한곳에다

    모아두지만여기는 범종은 종각에...즉 보제루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좌우에 있다.

     

     

     

     

     

    당간지주는 요즈음으로 치면 깃대받침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당간지주 사이에 나무나 철등으로 긴 깃대를 세우고 깃발을 걸어서

    큰 법회나 큰 스님이나 선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국보 67호인 화엄사각황전 (華嚴寺覺皇殿)이다.

     

    오늘은 마침 부처님 점안식이라는 큰 행사가 있어서 오색띠가 늘어뜨

    려져 장엄을 하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

    져 있었다고 전해지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그 조각은 지금 따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숙종임금이 

    '각황전'이란 이름의 현판을 내렸다고 한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각황전 안에는 후불탱화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대웅전 안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금기이므로 화엄사 홈페이지에서 이 사진 한장을 모셔왔다.

     

    국보 301호로 지정된 화엄사영산회괘불탱 (華嚴寺靈山會掛佛幀)의 모습

    이다.

     

     

    이 그림은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그 다음은 화엄사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보 12호 화엄사

    각황전앞 석등 (華嚴寺覺皇殿앞石燈)이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은 전체 높이 6.4m로 우리나라에

    서 가장 큰 규모이다. 법당앞을 환하게 밝히는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사찰의 대웅전

    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배치된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이 워낙 웅장한

    규모이다 보니 균형미를 위해서 석등의 크기를 크게 만든 것일 것이다.

     

     

    예술적인 기교면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각황전 뒤를 50여 미터를 가파르게 오르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있다.

    화엄사를 오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기는 하지만 못보고 가는 사람도 60%

    정도는 되는 그런 탑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찰을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국보35호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이다.

     

    이 탑은 각 부분의 조각기법이 워낙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함

    으로써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석탑중에서 이형(異形)

    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그 다음은 보물로 지정된 것들을 살펴볼 차례다.

     

    보물 299호인 화엄사대웅전(華嚴寺大雄殿)이다.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이다.

    사실 현실적인 면으로 볼때 불교의 가장 중요한 전각이라 할 것이다.

     

    화엄사 대웅전은 규모도 크고 아름다우며 건축 형식의 특징과 균형이

    잡혀있어서 조선 중기 이후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보물 300호인 화엄사원통전전사자탑(華嚴寺圓通殿前獅子塔)이다.

     

     

    이 석탑과 비슷하게 생긴 유물은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아직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공양대(拱養臺)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보물 132호인 화엄사 동 오층 석탑(華嚴寺東 五層 石塔)과 나란히

    서있는 보물 133호인 서 오층석탑(華嚴寺西 五層 石塔)이다.

     

     


     

    보제루이다. 대개는 절에서 큰 법회를 연다거나 강연회를 한다거나 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이 되는데 다른 절의 보제루는 밑으로 기둥을 세우고

    사람들이 다니도록 되어 있으나 이곳 화엄사의 보제루는 사람이 다닐수

    없다.

     

    태극사상을 가람 건축에 도입하였기 때문으로 짐작이 된다.

     

     

     

     

    보제루에는 화엄사의 일부 작은 유물들과 문화재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보제루 천장에는 몇개의 등이 달려 있다.

     

    그 등들 중에서 눈에 딱 들어온 호랑이등...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의

    리얼함...

     

     

     

    마지막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 입구에 있는 부도밭...

    부도는 스님들이 열반한 후에 육신을 화장해 나온 사리나 유골, 또는 유품

    등을 넣어두는 곳이다.

     

     

    남겨진 흔적이란 늘 부질없는 것....

     

     

    나오는 뒷덜미를 타고 스님들의 염불소리며 목탁소리가 연방 꼭꼭 찌른다.

    오늘이 화엄사의 각황전 부처님 점안식이 있다고 한다. 점안식을 한번도

    보지 못한터라 보고 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는 했으나 여전히 시간에

    쫓기는 나그네 일뿐~

     

    실상은 화엄사 부처님 눈뜨는 것보다야 내가 눈뜨는게 백배는 더 급하다.

    그런데도 오십의 나이를 내일앞에 두고도 심안(心眼)조차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니..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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