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시간의 해맞이 여행여행기 2006. 6. 24. 20:00
26시간의 해맞이 여행
2005년 12월 31일 오후 5시...
땅거미가 지고 있다. 일년동안 부지런히 지고 다시 떠올랐던 태양이
인간들이 만든 관념의 경계선이 바뀌는 시점의 마지막 길을 가느라
평소보다 더 붉어 보인다.
사람들은 2005년의 마지막 해넘이를 보겠다고 서해로 달려간다.
오늘 한해의 마지막 일몰이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것이기는 하지만 다만 관념에 묶여사는 인간들만이 마지막과
시작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올해는 참으로 덤덤히 마지막 일몰을 보낸다.
아파트 베란다의 국기봉 너머로 또 다른 아파트의 건물뒤로 져가는
일몰을 무심히 보낸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7시 00분...
1960년대 처음으로 삼양라면이 탄생했다고 한다. 지금은 수없는
종류와 이름들의 라면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한다.
전날 마트에 들렀더니 1964년인가 처음 나온 삼양라면의 디자인과
똑같은 라면이 나왔다. 이른바 추억 마케팅이다.
4개를 사가지고 왔지만 아이들은 이미 다른 라면에 입맛이 들어서인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 중에서 2개...그리고 컵라면 2개..김치 조금...1회용 커피 몇개...
그렇게 떠말 준비가 다 되었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7시 25분....
두터운 잠바를 옆구리에 끼고 따라 나서던 와이프가 묻는다.
"어디로 가요?"
"포항 호미곶으로 가던지..아니면 강릉을 거쳐서 북쪽으로 가던지.."2005년 12월 31일 오후 7시 30분....
이제 출발이다. 사실 출발하면서도 갈등이 심했다.
일기예보에 전국이 흐리고 비까지 온다고 하니 걱정이기도 하고
먼길을 가서 막상 해돋이를 하지 못하면 찝찝한 기분으로 돌아서
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할것이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8시 10분...
경부선 옥산 휴게소에 도착을 했다.
눈이 덜 녹은 길을 달리느라 헤드라이트에 잔뜩 진흙이 묻었다.
대충 휴지로 딱아내고 다시 출발한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8시 30분.....
대전 인터체인지를 지난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강원도는 이미 포기를 했다. 극심한 교통난을 배겨낼 엄두가 없어
남쪽을 길을 잡기는 했는데 대전에서 왼쪽길을 타면 포항으로
길을 잡아야 할터이고 오른쪽길을 택하면 남해안이나 서해안으로
목적지를 잡아야 할것이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1/2이다.
일기예보가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면 중부지방은 비나 눈이 온다고했고
남부는 흐리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해안..그 중에서도 서쪽으로 치우친 바닷가가 유리할
것이기 때문에 오른쪽길을 택했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8시 40분....
입력된 사전정보에 의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오른쪽길을 잡자
이어지는 와이프의 질문...
"우리..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가보믄 안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9시 10분...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인삼랜드 휴게소에 들린다.
어디론가 목적지를 가지고 길을 나선 해맞이 객들로 부산스럽다.
관광버스에는 주로 40대..50십대..60대들이 타고 있고 20대와 30대는
주로 두서넛 사람들이 팀을 이루거나 커플복을 챙겨입은 사람들이
주로 승용차를 이용한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10시....
운전자를 바꾼다. 지금부터는 와이프가 차를 몰기로 했다.
직접 운전을 하는 것보다 옆에 타고가는 것이 고되다는 느낌이다.
졸음이 쏟아지지만 운전하는 사람 때문에 억지로 참아야 하는것은
고통중의 하나이기도 했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11시 20분...
섬진강 휴게소에 도착을 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늘 경계들이 있다. 따지면 세상의 모든것들은
정확한 경계가 없다. 아날로그다. 쉬임없이 흐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간의 경계..지역의 경계..성별의 경계..빈부의 경계..
그런 수많은 경계들을 만들고는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섬진강도 그런 경계의 하나다.
섬진강의 건너는 전라도..또 다른 건너는 경상도라도 경계하고 산다.
경계가 없앤다는 것은 수많은 성인들이 노력해왔지만 결국에는
석가도..예수도..공자도..마호메트도..이루지 못하고 갈길을 갔다.
그들도 결국은 비범과 평범의 경계만을 남기고 그렇게 말이다.2005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6분....
켜놓은 라디오의 지직거림과 함께 타종을 준비하는 실황을 들으면서
순천 톨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아날로그의 흐름속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했다.
만년전에도 누군가가 보내고 맞이했을 그날..천년전에도 누군가가
맞이하고 또 보냈어야할 시간들...
그런 평범한 시간의 경계 하나를 내 관념이 받아들인 것이다.
2006년 1월 1일 오전 0시 30분....
여수에 도착했다. 오동도의 간판도 보인다. 아마 곧이어 그 작은 섬에
�디 �은 동백꽃이 필것이다.
동백은 겨울의 마지막을 상징하기 때문에 동백이 피어서 붉어지면
우리는 봄을 생각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동백섬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곧이어 나는 돌산대교의
이정표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온갖색의 불빛으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돌산대교를 건넜다.
노견에 차를 대고 잠깐 내려서 돌산대교를 향해서 디카를 눌렀지만
성능후진 디카는 그다지 좋은 화질을 만들어 주진 않는다.
2006년 1월 1일 오전 1시 20분....
우리나라에서 세손가락에 꼽을만한 해돋이의 명소가 향일암이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목인 방죽포 해수욕장에 왔을때 유도요원들이 길을
빨간빛 유도등으로 길을 막았다.
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타라고 한다.
어쩔수 없다. 지금부터는 통제에 따라야 할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2006년 1월 1일 오전 1시 30분....
셔틀버스를 탔다.
셔틀버스는 꼬불 꼬불한 어두운 고갯길을 올라서 향일암 주차장의
맑은 공기와 반짝이는 별빛들이 있는 낯설은 밤풍경에 우리를 버렸다.
아니..표현을 바꾸어야 겠다.
버린것은 아니다..분명..스무대쯤의 관광버스를 마련해두고 잠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우리는 빈의자를 하나 얻어서 몇시간의 잠에 빠져들었다.
2006년 1월 1일 오전 6시...
알람으로 조정해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오늘은 해가 7시 40분쯤에 뜬다고 하니 1시간 40분이 남기는 했지만
제법 걸어야 할 판에다가 원래 해돋이란 자리를 잘 잡아야 하므로
와이프를 깨워서 길을 나선다.
새벽에는 별이 더욱 밝아서 훨씬 숫자가 많이 보인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에는 새벽부터 갓김치를 파는 장사치들의 목소리가
새벽사냥을 나온 짐승처럼 활기가 넘쳐난다.
승복을 입은 사이비 둘이 대량으로 인쇄된 달마상을 천원에 팔고있는
아수라장을 지나자 향일암 일주문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앞사람 궁둥이만 보고 올라야 한다.
다른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오를 뿐~
2006년 1월 1일 오전 6시 50분...
향일암에서 제일 맘에드는 석문을 지난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날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두개의 바위절벽이 사람 하나 겨우 지날만한 좁은
폭의 문을 만들어 두었다.
인간이 죄를 짖는 이유는 욕심이다.
욕심은 다른이의 몫까지 차지 해야만 하고 그 욕심의 댓가는 육신의 비대를
초래하게 될것은 자명한 일일것이다.
그래서 육신이 비대한 사람은 지날수가 없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그러나 이 향일암까지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 중에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없었는가 싶다. 모두들 좁은 석문을 잘 통과하는 것을 보니..
2006년 1월 1일 오전 7시...
향일암 경내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하나도 없다.
장소를 찾다가 결국에는 해수관음이 있는 곳으로 올랐다.
좁은 돌계단을 수없이 올라서 겨우 해수관음상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기다림...기다림...기다림...
사람들은 저 먼바다에서 떠오를 해를 맞으면서 무슨 염원들을 할까?
나는 어떤 바램을 마음에 간직하고 와서 풀어놓으려 하는 것일까?
기다림동안 잠깐동안의 혼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2006년 1월 1일 오전 7시 40분....
와!!!!!
와!!!!!
사람들의 함성이 들린다.
먼바다 수면에 한겹의 높이만큼 깔린 구름의 윗부분이 아주 진하게 빨개지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자 누구 할것없이 와~하는 함성이 터져 나온다.
기다리던 2006년의 새로운 해가 솟아 올랐다.
순식간에 불쑥 솟아서는 금방 동그란 불덩이가 되어서 동쪽 하늘을 불들인다.
먼길을 왔다.
매일 매일 텔레비젼을 통해서 전해주는 일기예보를 대개는 믿어왔는데
이번만은 믿고 싶지 않았다.
행여나 하면서...만약에 아니면 다른곳 구경이라도 하지..하는 체념도 섞어서
온 길인데 새벽에 주차장에 도착했을때 하늘에 반짝이던 별빛이 전해주던
맑고 찬란한 기분....
2006년 이라는 시간의 단위동안도 저렇게 �게 정열적으로 살게 되기를
그저 빌어볼 뿐이다.2006년 1월 1일 오전 9시 30분....
역시나 무료로 제공해준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제서야 육신이 허기를 느낀다.
늘 그렇듯이 정신적인 허기가 채워지고 나면 그 다음에 몰려오는 것이 바로
육신의 허기일 것이다.
와이프가 플라스틱 물병에 담아온 곰국으로 주차장에서 라면을 끓였다.
여행의 묘미는 그저 떠돈다는 것도 큰 몫을 차지 한다.
2006년 1월 1일 오전 10시...
차안에 만든 침실에서 잠깐 휴식을 맛본다.
아...몇시간만에 등을 중력의 법칙에 맞추어 보는가..2006년 1월 1일 오전 11시....
돌산대교가 빤히 보이는 공원에 잠시 들린다.
이곳이야 말로 돌산대교 부근의 경치가 가장 멋있게 보인다.
여행을 한다는 사람들이 "경치좋은 곳"이라는 안내판을 보면서도 바람처럼
무심하게 스쳐버리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또 여행이라는 재미있는 삶의 게임에 반칙을 하는 것이다.2006년 1월 1일 오전 12시 30분....
국보 제 304호인 진남관에 들린다.
삼도수군 통제사 이시언이 원래 있던 진해루 터에 세운 건물로 75칸의
규모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아는것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나는 기계기술자이므로 쇠로 만든것은 누구보다 친숙하다.
그 동안 수없는 여행길에서 오늘은 참으로 특이한 것을 만났다.
진남관 비석군에서 철로 주물을 떠서 만는 비석을 본 것이다.
비석이라면 으례 돌을 깍거나 또는 자연석에다 글자를 새기는 것인데
이곳에서는 쇠로 만든것이 특이했다.
2006년 1월 1일 오후 1시 20분....
동네마다 청과시장이 가볼만 한 곳도 있고 곡식시장이 주류인곳도 있고
어시장이 좋은 곳도 있게 마련이다.
여수는 바닷가의 도시인고로 어시장이 볼만한 곳이다.
와이프는 이곳에서 갓김치 한통과 말린 건어물 몇점을 샀다.
그 곳의 진정한 물산과 만난다는 것은 꽤나 즐겁다.2006년 1월 1일 오후 2시 30분....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우는 순창군의 군립공원 강천산에 도착하다.
강천산은 호남에서는 제일 아름답고 장대한 폭포들을 여럿 안고 있어서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린다.고려때 지어진 절로 추정되는 강천사는 그리 크지않는 규모지만 아담하고
고즈넉해서 겨울경치를 한결 마음편하게 해준다.
순창은 순창고추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순창의 강천산은 어찌보면 숨어 있는 명산중의 명산에 속한다.강천산의 계곡 풍경들....
강천산의 백미...현수교..
강천산이 품어 안고 있는 폭포들....
2006년 1월 1일 오후 6시...
순창고추장민속마을에 있는 한식 부페에서 저녁을 먹다.
2006년 1월 1일 오후 9시 30분....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와인 한병을 앞에두고 해맞이 후기를 쓰다.'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추의 상림...가을을 보내다.. (0) 2006.06.24 1박2일의 태백산 눈꽃열차.. (0) 2006.06.24 그림여행-국보30호 분황사3층탑 (0) 2006.06.24 5월의 섬진강 記3)- 평사리 최참판댁 (0) 2006.06.24 5월의 섬진강 記2)- 밥도둑 참게장 (0) 200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