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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여행-국보30호 분황사3층탑여행기 2006. 6. 24. 19:18
그림여행-국보30호 분황사3층탑
아주 오래전입니다..1300년도 더 지나서 이제는 낡아버린 전설같은 오래전에
이땅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르는 불교를 남여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신봉하던
그런 때였는데 다스리는 왕들마다 절을 하나씩 세우기도 했던 때였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여왕이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이라는 이가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를 통털어 처음으로 군주가 된
바로 그 여인입니다.
선덕여왕도 예외는 아니어서 용궁(龍宮)이라 부르는 궁궐의 북쪽에 절을 세워
자신의 원찰(願刹)로 삼게 되는데 이 절이 분황사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인걸(人傑)만 오가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조형물도 수명을
다하거나 다른 이유로 무너지고 사라지고 하게 됩니다.
분황사도 임진왜란으로 크게 소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래는 9층탑입니다.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는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는 것은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은 다음 하나씩 쌓아서
모양을 만든 것을 말합니다.
그 모양새를 보면 1단의 석축기단을 만든 다음, 그 중앙에는 1단의 화강암으로
판석(板石)을 밑에 깔고 안산암(安山岩)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서 잘 다듬어서
탑신을 쌓아올렸습니다. 1층 4면에는 각각의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좌우에
인왕상(仁王像)을 각각 1구(軀)씩 새긴 화강암을 끼웠습니다.
이 인왕상 조각은 당시 7세기 신라사람들의 조각양식을 살피는 데 있어서 더없이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탑의 옥개(屋蓋)는 전탑(塼塔)을 닮아 상하에서 단층(段層)을 이루는데 그 규모도
크지만 2층과 3층의 탑신이 1층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어 더욱 장중한 감이
느껴집니다.
이 분황사 모전석탑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절을 세운 장본인인 선덕여왕에 대해 좀 알고 넘어갑시다.
선덕여왕은 신라 27대왕으로 언제태어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재위기간은 기록에 정확하여 서기 632년부터 647년까지 15년동안이였습니다.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덕만(德曼)이였습니다.
진평왕의 장녀로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였는데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그를 왕위에 추대하고, 성조황고(聖祖皇姑)란 호를 올렸지요.
신라 호국불교의 상징인 황룡사9층탑(皇龍寺九層塔)을 당나라로 부터 귀국한 왕족
출신 승려였던 자장(慈藏)의 건의에 따라 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선덕여왕대에 백제와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공이 있자 결국 선덕여왕은 당나라에
구원요청을 하게 되는데 신라의 구원요청에 접한 당태종은 신라 사신에게 여왕이
통치하기 때문에 양국의 침범을 받게 되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적거렸지요.
저번에 올린 모란에 대한 글에서도 조금 언급을 했지만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그림을 보내서 은근히 여왕이 다스림을 비하당하기도 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는데
그래도 백제에 밀리고 고구려에 압박을 당하는 형국이라 어쩔수 없이 당나라에
굴종을 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사대사상의 뿌리를 상고해보면 여기서 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태종에 의해서 지적되었던 여왕통치의 문제점은 신라 정계에 파문을 일으켜
647년 정월에는 상대등 비담(毗曇)과 염종(廉宗) 등 진골 귀족들이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것을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왕위후보 1순위 였던 김춘추(金春秋)와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유신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여왕은 이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위 16년 만에 죽으니 시호(諡號)를 선덕이라하고
낭산(狼山)에 장사지냈다고 합니다.
죽은 해가 반란이 있던 647년이니 어쩌면 반란군에 의해 변을 당했고 잠시 성공의
환희를 누렸던 반란군을 김춘추와 김유신이 제압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유추하면 그렇다는 이야기 입니다.
항상 역사의 이면을 보려고 눈뜨고 사는 반디불이 보는 小見으로 말입니다.
글이 쓰잘데 없이 길어지기는 하지만 이왕지사 시작한 김에 선덕여왕과 그 녀를
사모한 지귀에 얽힌 애닯픈 사연 하나만 소개 합니다.
이하의 글은 다른데서 퍼 왔습니다.
***************** 퍼온글 *********************************************
신라 선덕여왕 때 활리역에 지귀(志鬼)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지나가는 선덕여왕을 보고 첫눈에 여왕을 사모하게 되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맏딸로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용모가 뛰어나서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과 찬송을 받았다.
그래서 여왕이 한번 행차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여왕을 보려고 거리를 온통 메웠다.
지귀도 그러한 사람들 틈에서 여왕을 한번 본 뒤에는 여왕이 너무 아름다워서 혼자
여왕을 사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선덕여왕을 부르다가 그만 미쳐 버리고 말았다.
"아름다운 여왕이여, 나의 사랑하는 선덕여왕이여!"
지귀는 거리로 뛰어다니며 이렇게 외쳐댔다.
이를 본 관리들은 지귀가 지껄이는 소리를 여왕이 들을까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지귀를 붙잡아다가 매질을 하며 야단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여왕이 분향을 위해 행차하게 되었는데, 골목에서 지귀가 선덕여왕을 부르면서
나오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떠들썩했다.
이를 본 여왕은 뒤에 있는 관리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미친 사람이 여왕님 앞으로 뛰어나오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그럽니다."
"왜 나한테 온다는데 붙잡았느냐?"
"아뢰옵기 황송합니다만, 저 사람은 지귀라고 하는 미친 사람인데 여왕님을 사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마운 일이로구나."
여왕은 혼자말처럼 이렇게 말하고는, 지귀에게 자기를 따라오도록 이르라고 관리에게
말한 다음 절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한편, 여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지귀는 너무나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여왕의 행렬을 뒤따랐다.
선덕여왕이 절에 이르러 부처님에게 불공을 올렸다.
그러는 동안 지귀는 절 앞에 있는 탑 아래에 앉아서 여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여왕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지귀는 지루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안타깝고 초조했다.
게다가 심신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지귀는 그 자리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여왕은 불공을 마치고 나오다가 탑 아래에 잠들어 있는 지귀를 보았다.
여왕은 그가 가엾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팔목에 감았던 금팔찌를 풀어서
지귀의 가슴 속에 놓은 다음 발길을 옮기었다.
여왕이 지나간 뒤에 비로소 잠이 깬 지귀는 가슴 위에 놓인 여왕의 금팔찌를 보고
놀랐다. 그는 여왕의 금팔찌를 가슴에 꼭 껴안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그 기쁨은 다시 불씨가 되어 가슴속에 활활 타올랐다.
그러다가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는가 싶더니 이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가슴 속에 있는 불길이 몸 밖으로 터져 나와 지귀를 어느새 새빨간 불덩어리로 만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가슴이 타더니 다음에는 다리와 팔로 옮겨져서 마치 기름이 묻는
솜뭉치처럼 활활 타올랐다.
지귀는 있는 힘을 다하여 탑을 잡고 일어서는데 불길은 탑으로 옮겨져서 이내 탑도
불기둥에 휩싸였다.
지귀는 꺼져 가는 숨을 내쉬며 멀리 사라지고 있는 여왕을 따라가려고 허우적허우적
걸어가는데, 지귀 몸에 있던 불기운은 거리에까지 퍼져서 온 거리가 불바다를 이루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지귀는 불귀신으로 변하여 온 세상을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불귀신을 두려워하게 되었는데, 이때 선덕여왕은 불귀신을 쫓는 주문을 지어
백성들에게 내놓았다.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나
몸이 불로 변하였다.
바다에 멀리 쫓아서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백성들은 선덕여왕이 지어준 주문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그랬더니 비로소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사람들은 불귀신을
물리치는 주문을 쓰게 되었는데, 이는 불귀신이 된 지귀가 선덕여왕의 뜻만 좇기
때문이라고 한다.
******** 반디불이 소견머리 **********************************************누구를 사랑한 다는 것은
가심속에 불덩이를 키우는것...
점점 커지고 커져서
마침내 몸뚱이를 활활~
그렇게 태우고 말지라도
타고나서 한 줌 재로 남아
바람에 흩날리고 말지라도
사랑한다는 것은
살고있다는 의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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