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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의 마음공부여행여행기 2006. 6. 16. 23:26
오어사의 마음공부여행포항과 인연을 맺은것은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아니 그 전에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을 갈때 열차는 경주역의 밤공기를 가르고 있을때
지나치는 화차에서 아직도 덜 식어 붉으스레한 빛이 감도는 빌렛트를 보았을때
가까운곳에 포항제철이 있구나 생각했던 적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신혼의 보금자리를 튼 곳이
포항이였으니 참으로 깊은 인연이라고 할것이다.
그래서 포항으로 출장이 있는 날에는 항상 고향으로 가는 느낌이 난다.
포항에서 역사와 규모를 갖춘 절이 보경사와 운제산 오어사이다.
이번 출장길은 다소 그 거리가 만만하지 않았다. 거제도까지 갔다가 포항에 도착을
한 시각이 밤 11시쯤이였다.
24시 슈퍼에서 캔맥주 하나와 치즈하나를 사들고 여관방에 밤을 피하는 참새처럼
자리를 틀고 하루의 여독을 실타래처럼 풀어놓는다.
자리가 바뀌어도 워낙이 잘자는 스타일인데 어쩐일인지 새벽 5시에 눈을 떳다.
텔레비젼도 아직은 시간이 아닌지 고정된 화면만 내보내고 다시 한숨을 더 자자니
정신이 멀쩡해지고 30여분 고민을 하다가 마음을 정하고 나선 곳이 오어사였다.
운제산 오어사는 부처님의 그윽한 향기가 머물고 용이 감싸고 있는듯한 호수와
기암절벽이 한폭의 동양화처럼 어우려져 있는곳이다. 오어사는 신라 4대 조사를
배출한 성지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원효암과 자장암을 왕래 하기가 힘들어 구름다리을 만들어
오고 갔다고 하여 구름운(雲), 사다리제(梯)자를 써서 이름붙인 운제산 자락에 위치한
오어사는 『삼국유사』에도 그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1)
때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창건이후 혜공(惠空)․원효(元曉)․자장(慈藏)․의상(義湘) 등이 주석하여 (신라
사성(四聖))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특히 혜공과 원효 스님에
대해서는 절 이름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옛날 오어사에서 원효 대사와 혜공 대사가 수도하고 있었다. 하루는 둘이서 계곡
상류에서 놀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서로 법력을 시험하여 보고자 하여,
고기를 낚아 다시 살리는 재주를 겨루었다.
그런데 둘의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좀체 승부가 나지 않다가 딱 1마리 차이로 승부가
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고기 한 마리를 놓고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주장하였다고
한 데서 나 오(吾)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기를 놔준 곳이 지금 오어사 앞에 있는 오어지(吾魚池)이다.
이 이야기는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일연 스님은 1264년에
오어사에 머문 적이 있었으므로 당시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채록하였던 것으로
짐작할수 있다.
포항에서 구룡포쪽으로 가다가 다시 경주로 가는 지방도로를 타면 오천이라는 동네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경주쪽으로 길을 잡으면 오어사라는 간판이 나온다.
멋스러운 길을 좀가면 오어지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오어사의 경내라고 할수 있다.
지금 이 다리부근에서 몇년전에 등산객이 산삼을 몇십뿌리 캐어낸 곳이다.
주차장에서 보는 오어사...
저 뒤쪽에 보이는 산이 운제산이다.
12만평의 오어지와 균형을 이룬 오어사의 모습...오어사의 정문...
이 문앞에는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막내려서면 시퍼런 호수가 있어서
이문앞에 서서 바라보는 오어지의 모습은 가히 절경이라 할수 있다.참으로 오랜세월을 버텨낸 오어사의 대웅전...
금방이라도 원효스님이 치는 목탁소리가 들릴듯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불전함을 지키고 있는 까만 고양이....불심이 깊은 놈이다.
단아한 응진전과 매실이 익어가는 산령각...댓닢에 앉은 나비 한마리...
저 나비는 지금 무슨꿈을 꾸는 것일까..
나비의 세계도 파격이 필요한 법이다. 모두가 꿀물을 탐하더라도 나는 댓닢의
청아함에 취하련다...
나비의 호흡은 댓닢에 묻고
바람은 댓닢을 흔들고
이슬은 방울마다 하늘을 품고
구름만 할일없이 떠도는데
내일의 나는 어디에 있으랴
나는 오늘도
나비가 아닌 꿈을 꾼다.
댓닢이 되는 꿈을 꾼다.
바람이 되는 꿈을 꾼다.
이슬이 되는 꿈을 꾼다.
나비가 아닌 꿈은
항상 내꿈이 된다.
나는 꿈을 꾼다.
나비가 아닌 꿈을 오늘도 꾼다.사람이 살면서 매순간을 고민하는 것중에 이쪽과 저쪽일 것이다.
우리가 늘 접하는것중에 이것과 저것..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항상 우리를 닥달하게 한다.
오늘도 그 갈림길을 만난다.
십년 넘게 포항에서 삶을 꾸릴때도 몇번의 오어사여행중에서도 가보지 못한곳이
이 다리 넘어서 원효암이라는 암자였다.
시간을 재보고 약속을 가늠해보고나서야 겨우 건너기로 마음을 먹었다.건너온 후에 그 발자취를 다시보아도 역시 풍경의 변화는 없다.
다만 변하는것은 그 다리의 시간적공간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또 채우고 있다는 사실...
결국 이쪽과 저쪽의 차이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같은 것이다.
분명 저쪽이였던 곳이 이제는 이쪽이 되고 저쪽은 그 반대가 되었다.
원효암으로 오르는 길...
몇백년 전에도 몇십년전에도 몇해전에도 몇시간전에도 누군가가 갔을 이길을
누군가가 갔었기에 올바른 길이리라 믿어며 나도 가는 길이다.
몇백년 후에도 몇십년후에도 몇해후에도 몇시간후에도 또 누군가가 지금의 내흔적을
밟으며 또한 오리라.
애절함과 간절함이 모이면 탑이되는 것..
사랑하는 마음도 그리워하는 마음도 어던 간절한 바램도 세월이 가면 엷어져가고
작아져가는 것처럼 삶이란 마음의 응어리들을 세월에 삭혀가는 것...
그래서 탑들도 하늘이 가까워 질수록 조금씩 작아져 가는가 보다.원효암 입구에서 만난 나무다리...
작은 경계의 표식이다.
낙인(烙印)....
낙인이야말로 구분의 대명사이다.
구분짖는 마음을 조금씩 버려가는 것..삶의 가장 큰 공부다.
이런 작은 구분의 경계를 두고도 "흐음~ 이곳을 건너면 원효암인가?" 생각한다.원효암의 관음전...
625전쟁때 불타버렸는데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원효스님이 주로 이곳에서 수행을 하셨다고 한다.
아까 다리를 건너기전 골짜기의 저쪽 꼭대기에는 의상스님이 수행하셨던 의상암이 있는데
이곳과 저곳을 넘나다니기 귀찮아서 구름으로 다리를 놓았단다.
이름치...
몸치..음치처럼 나는 이름치다.
물고기나 우리꽃이나 나무들..이런것들의 이름을 유난히 외우지 못하는 편이다.
예전에 분명히 이름을 알았던 꽃인데 지금은 깜깜하다.
원효암 뜰에서 인연이 닿아진 꽃무리들...이곳의 물맛은 한마디로 좋다라는 말이외에는 수식어를 찾을수 없다.
시원하고 달작한 뒷맛이 돈다.소풍나온 지렁이...
이놈은 높은 곳 낮은 곳 가리지 않고 제 몸을 맞출줄을 아는 놈이다.
우리도 자연에 이렇게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금방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 밟힐뻔 했던 놈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조용히 가르쳐주는 스승이다.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
석간수는 산의 정령이 스며있는 물이다.
한 바가지의 산을 삼키고나면 세상이 몸속에 있는것처럼 무거워짐을 느낀다.오늘은 구름다리가 걷우졌다.
구름을 타고 다닐만큼 마음이 가벼운 도인이 없어진 탓일까.
아침햇살이 계곡건너 산정의 의상암과 이쪽의 원효암을 오갈뿐이다.아직끝나지 않은 승부...
원효대사가 뱉어놓은 고기인지 혜공스님의 뱃속을 구경한 고기인지....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져야 그 경지를 짐작이나 할런지....'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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