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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장수군 논개사당을 찾아서..
    여행기 2006. 6. 12. 10:47


    전북 장수군 논개사당을 찾아서..

     


    올해의 봄은 유난히 분주스럽습니다.
    아마도 선거다 기름값이 어떻다 경기가 어떻다해서 주변의 분위기가 어수한 탓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봄날은 차를 가지고 장거리를 운행하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입니다.
    졸립기도 하고 지루해지기도 해서 잠깐 장수군에 들렀습니다.


    저번 광양출장때에 진주성을 들렀을때 의암에 서서 논개라는 여인에 대하여 잠시 생각의
    정리를 하다가 다 못한 여운이 남아서 주논개님의 출생지인 장수군에 들렀습니다.

     

     


    고속도로를 내려서 만난 안내판입니다.
    이상하게도 이곳에서 우회전으로 14키로가면 출생한 생가가 있고
    좌회전으로 14키로를 가면 사당이 있습니다.

     

     


    주논개님을 추모하는 사당입니다.


    의암사는 지방기념물 제 46호로 장수 현감 정주석이 주 논개의 충절을 찬양하며
    장수태생임을 기리기 위하여 1846년 논개생장향 수명비를 세운후 1955년에 군민들의
    성금으로 남산에 사당을 건립하였으나, 1974년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고 하는 군요.


    경내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 가 있고,
    "의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에는 논개의 영정(김은호 화백 작)이 있고있습니다.

     

    안내판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주차장에서 보는 의암호입니다.
    조그마한 못에 불과하지만 산책로로써는 안성맞춤인 크기에다가 주변의 풍경도
    무척 단아합니다.

     

     


    경내에는 외삼문과 내삼문, 충의문이 차례로 있는데 처음 만나는 문입니다.

     

     

     

    경내에 있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입니다.
    사실 우리가 기생으로 알고있는 주논개님은 실상 기생이 아니고 진주성싸움에서 전사한
    최경회 장군의 부실(첩)이라고 합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 저 끝에 보이는 곳이 사당입니다.

     

     

     


    개나리와 목련....
    사람에게나 꽃에게나 심지어는 기어다니는 개미에게서도 모두 각자의 색깔이
    있다는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입니다.
    나의 색깔이 무엇인지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저는 무슨 색깔일까요??????

     

     


    마지막 문입니다.
    충의문이라 쓰여진 간판이 보이지요.
    일단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헛기침도 두어번 하고 조용히 들어섭니다.

     

    우리가 어른을 뵐때는 항상 문앞에서 헛기침을 하는 것이 예의인데

    그것은 인기척을 미리 냄으로써 웃사람이 마음의 준비를 갖추거나 옷을

    여미거나 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지요.

     

    옛사람의 사당을 참배할때도 역시나 같은 마음가짐으로 해야만 하지 않을까요?

     

     

     

    오늘 참배할 충의사입니다.

     

     


    일단은 방명록에 흔적하나를 남깁니다.
    여러분들도 이런곳에 가면 꼭 방명록에 남기십시요.
    나라에서 이것을 기준으로 활용도를 평가하고 보조금등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니
    이렇게 덜 알려진 곳일수록 꼭 적어주고 와야 합니다.

     

     


    의암사(義巖祠)의 현판입니다.
    논개는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시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 남편 최경회, 김천일,
    고종후 장군 등이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자, 남편의 원수를 갚고 국치를 설욕하고자,
    촉석루에서 벌어진 왜군 승전잔치에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주흥에 도취된 왜장을 남강가 바위로 유인, 그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강속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었지요.


    당시 논개님의 나이는 19세였다고 합니다. 
    조정에서는 그녀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며, 예문관으로부터 의암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주 촉석루 곁에 사액정문을 지어 그 넋을 위로, 추모하게 하였고, 투신한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들어 죽은 왜놈이 장군이다 졸병이다로 논란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게 그리 중요한 것인지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의암사를 나서며 내려본 풍경입니다...

     

     


    주논개님의 행적과 남편이였던 최경회장군의 유품과 서간등이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인데 들어가는 입구에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어야 할 곳중의 하나입니다.

     

     

     

     

     

    주논개님의 일생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 파란만장한 일생에 대하여는 주논개 생가 유허지 편에서 다시 자세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암튼 이나라는 수많은 민초들이 지켜왔다는 그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요즈음 정치인들이 어쩌면 저때 죽은 왜놈들이 이땅에 복수를 하려고 다시 태어나서
    민초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가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변영로님의 논개라는 시...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의암호 전경입니다.


    나는 나라가 그렇게 되었을때 그럴수 있을을까하는 생각을 잠시동안이나마
    해본 시간입니다.
    나라면 도저히 그렇게하지 못했을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왜소해지고 부끄러워지는 잛은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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