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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치와 까마귀..
    이런저런 이야기 2006. 6. 11. 22:01


    까치와 까마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년초에는 조금씩 들뜬다고 한다.
    한해의 계획을 세우며 앞으로 이루어 내어야 할 과업이나 과제를 두고
    가장 자신감에 차있는 때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에서도 회사에서도 한해가 시작되는 때를 즈음하여 이른바 시무식이나
    신년회라는 이름으로 한해의 비젼을 제시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분홍빛으로
    제법 치장되고 포장된 그런것들이 내걸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도 이때만큼은 그 분홍빛으로 치장되고 포장된 그런 것들에
    자신의 희망을 투사하게 마련일 것이다.


    회사도 올해 역시도 시무식이라는 것을 했다. 정년을 연장하고 얼마간의
    임금인상도 이야기를 했지만 비단 이 회사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회에
    첫걸음을 한 28년 전부터 시무식때면 늘 나오는 낱말이 화합이다.
    두번째가 창의일것인데 그만큼 많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화합과 창의란 그만큼 절실하게 부족한 탓일 것이다.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세간을 달구는 문제가 생명공학의 문제인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화합이 부족해서 나오는 문제 일 것이다.
    나야 초등학교때 나뭇닢의 모세관을 현미경으로 본 이후에 단 한번도
    현미경이라곤 들여다 볼 기회도 없었을뿐 아니라 기초적인 과학적 소양도
    극히 모자라는 터라 무어라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내부의 세력다툼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예전에 한국축구가 연.고대 학맥으로 이루어져 돌아간다는 것 모르는
    한국사람이 없었는데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면서 그 학맥을 100% 무시하고
    전권을 준 결과 우리는 세계 4강을 이루어 내었다.
    본프레레 감독때에 다시 재발된 학맥으로 인해 볼썽 사나운 처지에 빠졌던
    한국축구다.


    유목사회와는 달리 농경사회는 정착하여 정해진 땅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수확을 거두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자연히 땅을 경계로 하여 남과 우리라는
    개념이 성립되어 세월이 흐르면서 고착이 되어 지연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다 싶이 하는 학연 지연 혈연도 농경의 사회다 보니
    자연스레 고착된 개념중의 하나인데 이제는 우리들이 이 개념의 지배로
    모두들 학연..지연..혈연에 매인 강시와 같다는 느낌조차 드는 것이다.


    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나는 까치와 까마귀가 생각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신라가 있고 고구려가 있고 백제가 있을때는 역사적 기록이나
    남아있는 유물로 보았을때도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를 좋아했다.
    신라의 중기쯤부터 노골적으로 까마귀보다는 까치로 대체가 되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유목기마의 본성을 버리고 정착농경의 본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구려의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를 필두로 삼국유사에도 초기 설화에는
    까치보다는 까마귀가 더 많이 등장을 한다.
    우리 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만주벌판의 유목민들도
    까마귀를 신성시 하기도 한다.


    흔히 까치와 까마귀는 사촌지간으로 생각하지만 서로 판이하게 다른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까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 주변에 둥지를 트는 반면 까마귀는
    사람들을 피해서 산다.
    까치는 일정한 자기 영역이 있다. 마치 누구네 논 10마지기는 어디서 어디까지
    하는 식으로 정확한 자기 영역을 가지고 혼자 산다.
    이웃은 있을 망정 가족은 없다. 새끼도 어느정도 자라면 독립을 시키고 그후에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면 적으로 간주해서 공격을 한다.


    나무에 지어진 까치집은 시골의 정취를 더해주는 악세사리 같은 역활을 하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의 나무에 두개의 둥지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끔 있다고 해도 헌집을 버리고 새로 집을 지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는 속설이 있는데 까치란 놈이 텃세가 유난한
    놈인지라 낯선 사람이 온다던지 하면 경고를 이웃에게 보낸다.
    멀리 동구밖에 사는 까치로 부터 전해진 깍깍~대는 신호는 동네의 까치들도
    덩달아 전하는데 사람들이 까치울음을 듣고 좀 있으면 손님이 오니 그로부터
    유래된 것이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것이다.
    때로는 반갑지 않은 손님도 왔겠지만 전설이란 늘 좋은쪽이 더 많이 전해진다.


    가끔 시골생활에서 고양이와 까치가 먹을거리로 싸울때도 있는데 까치란놈은
    상당히 집요하다. 게다가 힘에 붙이면 이웃을 불러서 함께 대항한다.


    까치의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농촌의 삶과 닮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되 영역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지연으로 맺어져 있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지연이란 대단하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연을 당하지 못한다.
    같은 김해 김씨라도 선거때는 지연에 따라 표가 갈리게 된다.


    까마귀는 혼자서 살지 않는다.
    늘 무리를 지어서 활동을 한다.
    까마귀가 사람들로 부터 배척받는 이유는 서너가지다.


    첫째는 온몸이 까맣다는데 있다. 사촌인 까치는 하얀털 한줄이 더 있을 뿐인데
    그 차이로 사람들이 받는 인식은 대단히 크다.


    두번째는 주로 까마귀는 겨울에 출몰하는 일종의 철새와 같다.
    을씨년 스럽게 찬바람 부는 겨울에 까아악~ 까아악~ 울면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먼저 들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이 많은 어른들은 주로 초겨울의 급격한 기온의 변화사이에
    별세를 많이 한다. 예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하필이면 노인네들이 많이 사망하는 철이 까마귀가 오는 철과 맞아 떨어진 결과
    까마귀가 오명을 쓰게 된것이다.


    세번째는 지연이다. 까치는 늘 동네부근에 살므로 사람들과 정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지연이라는 헤게모니를 가진 탓이다. 반면에 까마귀는 사람과는
    떨어진 곳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사람과 정이 들든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이 많기로는 까마귀다.
    새끼를 길러 어느정도 크서 나름의 개체가 되어도 가족으로 남는다.
    우루루 모여서 다니는 것이다.
    요즈음같은 겨울에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논 바닥에 몇십마리 또는 몇백마리씩
    무리를 지어서 나락을 줏으먹는 까마귀를 보게 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탓에 늘 무리를 지어서 행동한다.


    나는 까치에게서는 이런것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자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그것은 까치로 부터 배워야 한다.
    큰딸의 작년에 대학진학 문제를 두고 심하게 다툰 일이 있었다.
    부모의 기대가치와 아이 자신의 현실가치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 일어난
    다툼일 것인데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결국에는 내가 백기를 들었다.
    까치처럼 자식을 길러서 내 보내 제 둥지를 틀게 해준 다음에는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 할텐데도 괜스레 미련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나는 까마귀에게서는 이런 것을 배웠으면 한다.
    좀 더 우리 다울수 있는 것...그것은 까치로 부터 배워야 한다.
    나의 이익..나의 자리...나의 지역..이런 것 보다는 좀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이야기다.
    같이 산다는 것..그것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같이 산다고 하면서 남에 대한 비방이나 하고 뒤로 꼼수나 부리고 그속에서
    요기만큼은 내것..저기 만큼은 네것 구분짓는다면 애시당초 혼자 살아야 한다.

     

    까치는 농경정착의 대표적인 표상이라면 까마귀는 유목민족의 상징이나 같다.
    우리민족의 옛설화에서도 삼국시대와 그 이전까지는 까마귀의 등장빈도가 많았고
    통일신라기 이후엔 까치의 빈도가 훨씬 많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생활양태가
    유목민족에서 농경정착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전설속의 새 삼족오가 나오는데 좌우로 중국의 상징인
    용과 봉황을 거느리고 있음은 중국민족에 대한 우월감의 표시일것이다.
    삼족오는 태양을 숭상하던 우리민족의 표상새로 태양속의 흑점의 모습을
    나타낸듯 하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왕의 상징으로 옥새라고 하는 인장이 있는데
    지금은 옥새라는 용어보다는 국새라고 많이 사용된다.
    대한민국이 새겨진 지금의 국새가 손잡이 부분의 미세한 균열로 인해서 새로
    만들어야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일전에 손잡이의 디자인에 대하여 여론조사를 한 결과로는 삼족오가
    월등히 그 지지도가 높았다고 하니 우리들 가슴속에는 늘 고구려에 대한 선망이
    자리를 하고 있는가 싶다.


    그 삼족오를 지금은 일본아이들이 가져가서 축구대표팀의 상징문양으로 삼아서
    사용을 하고 있으니 그 또한 난감한 일일 것이기도 하다.

     

    세상사는 일이 만만치는 않지만 어쩌랴 하루 하루 살아 있음에 감사할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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