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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미와 잠자리..그들의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2006. 6. 11. 20:40


    거미와 잠자리..그들의 사이에서..

     

     

     

    예전에 떠도는 방랑객 김삿갓이라는 이가 있었다.
    하늘을 우러럴수 없다는 뜻으로 챙이 넓은 삿갓을 주문해서 쓰고 죽장하나를
    친구로 의지해서 온 세상을 떠돌았다.


    하긴...따지고 보면 우리들 인생이라는 것이 잠깐 왔다가는 여행같은 것인데
    자신의 인생 떠돌이는 알지 못하고 세상의 떠돌이에 이상한 눈길을 준다.


    그 김삿갓이 어느날 숲속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다급하게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를 듣게 된다.
    여름에 숲속에서 매미우는 소리 나는 것이야 당연하겠으나 그 소리가 하도
    다급하고 애절하게 들렸단다.


    매매소리의 다급함을 느끼어 들을만한 정도로 세상의 모든것에 애정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다.
    무덤덤히 세상을 사는 사람과 애절히 세상을 사는 사람과의 차이다.


    아뭏던 소리나는 곳으로 가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쳐놓은 거미줄에 매미 한마리가
    걸려서 요란스레 날개짓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잘 알겠지만 매미란 놈은 흙속이나 썩은 짚풀속에서 5년 내지 7년을 지내다가
    마침내 찬란한 아침해에 날개를 돋우는 羽化를 하고 나면 보름 남짓 산다.
    이 짧은 시간동안 삶의 최대 목표인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 밤낮으로 매음~
    하고 우는데 얼마나 애절한지 꼭 賣淫 買淫~ 하며 짝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짝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거미줄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감성이
    넘쳐나는 김삿갓이 그냥 지나갈수는 없었을 터이다.


    김삿갓은 하도 애처로워 거미줄을 떼어 주려고 손을 뻗어서 끙끙되는데 그때 옆을
    지나가던 행인 혀을 끌끌차며 한심하다는듯 김삿갓에게 말했다.


    "쯧쯧~~거참 씰데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구료."
    "와요? 와 씰데없는 짓이라 카요?"
    "그까짓 매미나 거미같은 미물들이 살려주는 은혜를 알기나 하겠소? 원래 자연의
    세계란 서로 먹고 먹히는 것이고 약육강생이 다반사 아니겠소? 또 매미를 살려봐야
    매미는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할 것이고 거미는 당신을 원망할텐데....결국에는
    당신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데 뭐하러 그런일을 하려고 하시오?"


    그러자 김삿갓이 시덥잖다는 표정으로 행인에게 말했다.


    "원래 거미란 놈은 탐욕스러워서 항상 자기배만 채우려 한다오. 하지만 매미는 풀잎에
    맺친 이슬만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요. 나는 그런 매미가 갸륵해서 살려 주려고
    하는 거요.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온갖 냄새를 따라다니는 솨파리가 걸렸다면 나는
    그해주지 않았을 것이요."


    행인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고 전해온다.


    대충 이야기를 풀었는데 이제 논점을 하나 생성해보자면 감상주의자 김삿갓의 행위가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며칠전에 불현듯 길을 나서서 강릉을 다녀왔다. 경포대와 신라의 9산선문의 하나였던
    굴산사지와 정동진에서 턴을 해서 돌아왔다.
    아!..하나 더...위의 이야기가 생각났던곳이 강릉의 초당두부를 먹고 허난설헌의 생가에
    들렀는데 그곳의 숲에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대는 잠자리 한 마리 때문이였다.

     

     

     

    나는 일단 사진부터 한컷 찍어두는게 습관화 되어 초점을 맞추는 중인데 막내딸이 이랬다.


    "아빠! 불쌍하잖아...거미줄 떼주고 살려주자..어..."


    심한 갈등이 가을바람이 솔가지를 흔들듯 휘몰아 쳤다.
    나는 사실 자연계에 인간이 끼어든다는것을 반대하는 주의에다가 거미에 호의적이기도
    하다.
    김삿갓은 거미가 탐욕스럽다고 했지만 사실 거미를 잘 관찰해보면 참 욕심이 없는 놈이다.
    이놈은 정확하게 자신의 사냥 영역을 경계한다. 자신이 거미줄을 칠 수 있는 크기만큼에서만
    사냥을 한다. 호랑이나 인간처럼 매복을 했다가 뒤를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냥감이던 눈이 밝아서 거미줄을 피해가면 그만이다. 어디 거미란놈이 거미줄에다가
    이런 저런 향내를 발라 놓던가..아니면 울긋 불긋 색깔을 입혀놓던가 말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거미와 같은 삶을 산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사회의 여기저기에 지연과 혈연과 학연의 줄들을 주욱~ 깔아두고 누군가가 걸렸다는 신호만
    오면 어떻게던 이용하고 살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니 나는 거미의 삶에서 항상 현대인의 삶을 보는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막내딸래미의 입에서 살려주자는 말이 나온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10살짜리 계집아이의 감성이니 그런대로 흐뭇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거미도 먹고 살아야지...글고 잠자리는 수명이 짧아서 며칠이면 죽을텐데 뭐.."
    "그래도 그냥 죽는거 하고 저렇게 잡혀서 죽는거 하고는 다르잖아!"


    그 잠자리를 살려 주었더라면 아이는 즐거웠을 것이고 잠자리는 하루 정도는 삶을
    더 영위하며 가을하늘을 누볐을 터이지만 어쩌면 며칠 굶은 거미는 마침내 기아에
    이르렀을지 모를 일이다.


    아이의 마음은 상했을터이지만 그대로 스쳐지나오고 말았다.
    잠자리는 세상은 앞을 잘보고 다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니 하루쯤 짧게 살았다고
    해도 그닥 큰 손해는 아니였을 것이고 거미는 한 며칠 다른곳에 거미줄을 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변을 날던 호랑나비나 쇠파리들도 잠자리의 시체를 보고 당분간 주의해서 다닐 것이다.


    관람자인 나는 사진 한장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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