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가을풍경 18題
    이런저런 이야기 2006. 6. 11. 21:17


    가을풍경 18題  

     

     


    ***********************************************************
    가을풍경1)


    올해 들어서 내가 처음 맞이한 가을은 화물선의 뿌~하는 뱃고동에 실려
    바닷내음의 비릿함에 몸을 비트는 코스모스 잎을 통해 전해왔다.
    가을은 하늘만 색이 짙어 지는게 아니다.
    바다도 역시 가을을 맞이할 때는 발정기 숫고기의 혼인색처럼 그렇게
    제 몸의 색깔을 짙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가을바다는 은빛 전어를 살찌우고 학꽁치의 기운을 돋군다.
    여름내 수면을 달구던 태양의 힘이 쇠잔해진 틈에 바다는 얼른 염도를
    높이고 자신의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풍요롭게 만든다.


     
     
     

     

    ***********************************************************
    가을풍경2)


    가을은  이중적이다.
    여름에는 모두들 덥다하고 겨울에는 모두들 춥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러나 가을에는 어떤 사람은 춥다하고 어떤 사람은 덥다하고 물이드는
    나뭇닢들도 울긋불긋 제각각이다.


    가을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산으로 들로 단풍놀이에 들뜨서 얼굴에 홍조를 띤 사람도 있는 반면에
    몇 가마니의 나락이라도 내다 팔아야 비료값이라도 갚는데 하며 하늘을
    올려보며 멍이 시퍼렇게든 한숨을 뱉느라 홍조를 띠는 사람도 있다.


    가을이 이중적임에도 불구하고 풍요롭기는 하다.
    봄과 여름동안 허리굽혀 노동한 댓가를 자연으로 부터 돌려받기 때문이다.
    밑지고 남는 것은 이 가을이 지나고 나서 따져도 될 것이다.
    가을은 사람들을 부드럽고 배포가 넓게 만들기도 한다.

     
     
     
     

     

    ************************************************************
    가을풍경3)


    가을은 억새의 계절이다.


    억새...
    가을이 흐느낌을 참다가 마침내 뱉어낸 은빛숨결이다.
    그래서 가을의 억새밭 한 가운데 들어가서 가만히 가을바람을 느껴보면
    가을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가끔은 사람들이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지 못한다.
    갈대는 바람의 전령이고 억새는 가을의 속깊은 마음이다.
    가을이 흐느낄 때마다 억새는 은빛을 찰랑 거려 가을의 울음을 우는 것이다.
     
     

     

     

    **************************************************************
    가을풍경4)


    가을이 가득차 있으면 볼썽 사나워 진다.
    가을도 이점은 충분히 인지 하고 있는듯 여기저기 여백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마음이 공허하거나 충만하거나 간에 가끔씩 하늘을 보면 어쩐지
    시원한 청량감을 느낀다.


    그래서 질투를 느낀 여름은 자신의 잎을 한껏 살찌워 하늘을 가린다.


    가을은 다르다.
    여름내 살찐 잎들을 조금씩 떨구어 낸다. 절대로 일시에 우수수~ 떨궈서
    보는 이가 당황하지 않게 그렇게 조금씩 떨구어 내는 것이다.


    가을은 여백의 계절이다.
    겨울처럼 온전히 비는 게 아니라 풍경의 한쪽을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다.

     
     
     
     

     


    **************************************************************
    가을풍경5)


    가을에는 모두들 분주해 지기도 한다.
    들판에 개구리들도 겨울 동안 삭혀 나갈 지방을 축적하기에 바쁘고 잠자리도
    짝을 찾아서 분주하다.


    멀리 길을 떠나가야 할 왜가리도 비쩍마른 다리를 휘적이며 물가를 기웃이며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가을 들판이나 산골이나 온통 가을걷이로 바쁘다.
    사람들만 가을 걷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물들이 왕성히 먹이를 찾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겨울을 위한 가을걷이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사람의 가을걷이와 그들의 가을걷이는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사람과 같은 욕심이 없다. 단지 먹이에 대한 본능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겨울을 날 만큼의 지방질이 축적이 되면 아무리
    먹이를 입 앞에 갖다 대도 먹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다르다.
    사람들은 욕심껏 수확을 해서 곳간이 다 차면 새로 곳간을 만들어 또 채우려 한다.


    미물들에게서도 배울점이 있다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필요한 만큼만 가진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
    가을풍경6)


    전생이 어쩌면 누렁이 황소였는지 모르겠다.
    빨간 색에는 늘 흥분의 증세가 보이고 파란 빛에는 안정의 기미가 보인다.
    가을은 흥분과 안정이 공존하는 그런 계절이기도 하다.


    극도로 파랗거나 극도로 빨강이 지배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혼자가 되어봄으로써 더욱 온전히 느낄수 있기도 하다.
    왁자하게 몰려서 다녀서 느낌이 오는 건 봄의 들녘이다.


    佛家에서는 우주는 成住壞空의 과정을 거듭한다고 한다.
    이루어지고 머물러 있다가 사그라지며 마침내 없어지는..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 흐름속에서 다시 생성해서 순환하는게 우주라는 것이다.


    인간이나 미물이나 돌멩이 하나까지 우주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우리들이나 우리들의 주변 역시도 그러한 것일 것이다.


    계절적으로 본다면 봄이 생성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안주의 계절이다.
    당연히 가을은 사그라지고 무너지는 그런 계절일 것이다.


    그럼에도 가을에 세상의 모든것들에서 윤택함을 느낄수 있는 것은
    희망 때문일 것이다.
    모진 겨울을 지나고 나서 다시올 봄에 대한 기약과 희망이 가을을
    풍요롭게 만드는 지 모르겠다.
     

     
     
     

     

    *******************************************************************
    가을풍경7)


    가을의 햇살에서는 독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여름의 햇살은 색깔을 탈색시키기도 하고 현미경으로나 보아야 겨우 보이는
    미물들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서슬푸르다.


    그러나 가을의 햇살은 한폭의 수채화와 같다.


    가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조붓하게 손을 맞잡고 볕쪼임을 해도 좋다.
    사랑은 각각 다른 색..소리..느낌을 공유하는 과정의 완성이다.
    아무리 공유하는 과정이 길어도 결코 똑같아 지지는 않는게 또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인 것이다.


    "사랑했었다"는 라는 과거형의 사랑도 가슴 한곁에서는 노랗게 싹을 티우고 있거나
    씨앗이 되어 있거나 시퍼런 멍으로 남아 있거나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머리속에 지우개가 있지 않는한 사랑은 영원히 진행형으로 남을 것이다.

     
     
     
     

     

     


    *****************************************************************
    가을풍경8)


    세상을 살다가 보면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지 모른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밤에는 밤대로 낮에는 낮 그대로..
    계곡이건 바닷가던 어디서나 소리들이 있다.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소리들도 있다고 한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를
    벗어나는 소리들도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보다 가청주파수의 범위가 훨씬 넓은
    개들은 우리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쉬 듣고 반응하기도 한다.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반응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계곡의 물소리에 넋을 잃기도 하고 어떤 이는 山頂에 부는 솔바람에
    마음을 뺏기기도 한다.
    계절마다 듣기좋은 소리도 있게 마련일 것인데 역시나 가을에는 낙엽을 밟을때
    발바닥을 통해서 전해오는 바스락~ 소리나 아스팔트의 여기저기를 바람에 실려
    사르락 거리며 내는 낙엽의 소리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가을은 낙엽이 내는 소리에서 건조함이 깊어가는 만큼 깊어간다.
     

     

     

     

    ********************************************************************
    가을풍경9)


    절에 사는 스님들은 먹을 갈아 옷에 물을 들이거나 여름의 떫은 감을 따서 즙으로
    감물을 들여 승복을 만들어 입는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산책을 즐기는 개울가 습지에는 쪽이라는 놈이 살고 있는데
    이 놈을 뿌리채 캐어서 쪽물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 쪽의 빛깔이 높아진 가을하늘과
    아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깊어진 가을하늘을 "쪽빛하늘"이라고 말 하지 않는가


    가을은 여름의 단조로운 색에 사람들이 권태를 느낄만할 즈음에 빨간색..노란색..
    갈색등의 다양한 물감을 가지고 나타나 온천지를 울긋불긋하게 물을 들인다.
    우리 조상들은 말도 참 아름답게 만들어 사용했다. 서양말처럼 색이 바뀌다가 아니라
    색이 물든다고 표현을 하니 가는 쪽이나 오는 쪽이나 같이 생각해주는 말이다.


    가을에는 계곡을 흐르는 물도 단풍의 색으로 물이 든다.
    그래서 가을의 계곡물은 흐르는 물소리에서조차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
    가을풍경10)


    밤밭의 가을은 농익은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 밤들이 투둑..투둑..떨어져서 널부러진다.
    예전에 나라에서 밤나무를 산에 많이 심기를 강권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일본으로
    밤을 수출한다고 해서 한톨의 밤이라도 더 주으러 다닐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산에
    밀려서 농촌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열매는 농사짓는 사람의 전부다.
    월급쟁이가 월급 날에 여기 얼마 저기 얼마..이렇게 챙기다 보면 남는거는 빈여백인것
    처럼 농삿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쌀열섬을 두고 큰놈 집에 얼마..비료값 얼마..농협이자 몇말..작은놈 등록금...이렇게
    이리저리 퍼즐 짜맞추듯이 맞추다가 보면 결국은 다시 농협으로 찾아가야 한다.


    아들보다 어린 농협직원한테 어울리지도 않는 박주사...김주사 붙여가면서 대출을
    구걸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을에는 모든 열매들이 윤기있고 탱글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윤기와 탱글함에
    가슴아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그것은 인간사의 자잘한 일일뿐......
    여전히 가을은 밤송이를 익혀가고 벌이 애써 궁뎅이를 쳐들지 않아도 투둑~투둑~
    밤알들을 떨구어 내고는 한다.


    어릴때...국민학교(초등)때이니 아마 사십년에 가까운 세월의 전에 우리엄마는
    이때쯤되면 구포에서 기차를 타고 원동이나 삼랑진으로 밤을 주으러 가시곤 했다.
    그때만 해도 나라에서 개량종 밤나무를 강권했고 밤은 수출품으로써 달라를 벌어
    들이던 때라 동네 주변에서는 이삭을 주을게 없었다.
    엄마는 원동의 천태산이나 삼랑진의 야산을 헤매며 산밤을 줏는 것이다.
    다람쥐들의 양식이나 되었던 산밤은 우리 재래종으로 밤 한톨의 크기가 어른들
    엄지손가락 끝마디 만한 아주 조그만 놈이였다.


    엄마는 그렇게 모아온 밤을 잘 갈무리 했다.
    동생들은 삶아달라고 엄마에게 매달렸지만 엄마는 막무가내로 단지에 곱게 넣어서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했다.
    하얀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면 동네 어른들은 산토끼를 잡으러 간다.
    동네 어른들은 대여섯마리의 산토끼를 잡아오면 으례 한마리는 우리집으로 들고와
    "아지매요~ 대근이 고아 먹이소..약밤 넣고 고아 먹이면 조타 캅디다.."


    나는 어릴적에 병을 몸에 달고 살았다.
    경끼로 넘어가기도 여러번 이였고..철따라 감기는 달고 살았을 정도였으니 나의
    건강에 대한 우려는 온 동네의 우환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만큼 정이 두툼히 오가던 인심좋은 때였던듯 하다.


    가을에 잘익은 밤을 볼때마다 내 추억의 책장..그속의 한 페이지가 펼치지곤 한다.
     

     
     
     

     

    *********************************************************************
    가을풍경11)


    내연산 보경사 탱자나무앞에서..


    호로롱~ 호로롱~
    참새보다 더 작은
    굴뚝새가 생각이 났습니다.


    세멘보록쿠 학교담에다
    살살 문대면
    고단한 아버지 이마의 땀처럼
    베어 나오던
    새콤달달한 탱자즙이
    굴뚝새의 양식이라 생각했습니다.


    탱자나무 가시는
    하늘도 찌르고
    땅도 찌르고
    스레트 지붕도 찌릅니다.
    보름달이 떠도 찌르고
    목덜미 뜨거운 가을볕도 찌릅니다.
    들녘에서 쫓겨난
    가을바람의 누런색도
    가시에 찔려서
    맑아진 겨울바람이 되고맙니다.


    탱자나무 가시는
    세상에 단 두가지
    아이들의 배고픔 열망의 돌덩이와
    굴뚝새의 날개짖은
    어쩌지 못하고 맙니다.


    몇 십년
    몇 백년 세월을 먹어서
    나이테도 사그라지면
    탱자나무도 득도를 할까요?
    아니면
    굴뚝새 주검에 탱자나무로 다비를 하면
    노랑 파랑 보라빛 영롱한
    사리라도 나올까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면
    굴뚝새의 사리라고 할까요?
    탱자나무의 사리라고 할까요?


    탱자나무 가시끝에는
    탱자나뭇집 큰아들로 불리던
    아릿하게 뼛속을 우리는
    발가벗은 가난이 있습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가난이 있습니다.


    400백년을 먹었다는
    내연산 보경사 탱자나무에는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늘 같은 빛깔의 추억들이
    가시마다 걸려있습니다.


    400년을 먹었다는
    내연산 보경사 탱자나무로
    흑백사진첩같은 내 추억을 다비하면
    아마 까맣거나 하얀
    아니면 회색의
    광택없는 사리가 나올겁니다.


    탱자나무에는
    올 가을에도 추억만 물들어 갑니다.
                  (2004. 10. 29. 내연산 보경사에서...)


    내 추억의 많은 것들중에서 탱자는 아주 크게 자리하고 있다.
    어릴쩍 동네 아줌마들이 나를 부르던 이름은 "탱자나뭇집 큰아들"이였을
    정도로 우리집은 탱자로 울이 쳐진 집이였다.


    노란 탱자나무 사이로 보름달이 떠오르면 모든 탱자들이 '나도 달이다'하고
    아우성을 치는 듯 온 탱자나무에 수많은 달들이 떠 있는 것이다.


    가을은 탱자가 노랗게 익어가고 내 추억의 창고는 조금씩 좀이 쓴다.

     
     
     

     

     

     

    *********************************************************************
    가을풍경12)


    九節草


    마치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끼리
    눈빛으로 말 하듯
    꽃들
    들에 피는 꽃들도
    가을에는
    타박 타박 걷는 나그네에게
    또르르 말을 건다.


    코스모스는
    살살거리며 바람 일으켜
    후욱~ 가슴때리고
    골에 들에 九節草는
    香氣로 말을 건다.


    구절초는 꽃이 아니다.
    눈뜨고 보는 그런 꽃이 아니다.


    눈감고
    온 몸을 비우고
    그러고서야 비로소
    뼈마디에 오롯이 담겨지는 꽃이다.
                 (2005. 10.1 공주영평사에서..)


    가을의 꽃은 역시나 구절초가 으뜸이다.
    사람들은 국화를 꼽기도 하겠지만 국화는 구절초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인위적
    교배를 통해서 꽃잎을 늘리고 색깔을 변형시켜서 만들어낸 일종의 화초다.


    화초란건 야생화와 달리 온통 비계가 따글~ 하다.
    나는 그런 꽃들을 볅로 좋아하지 않는다. 겨울에서 막 봄으로 넘가가는 계절에
    일부의 꾼들이 배낭을 메고 산골짝을 헤매면서 춘란을 채취하기도 하는데
    蘭도 4군자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선비의 책상위에 올라가는 순간에
    바로 비계살이 끼어서 더 이상 꽃으로서의 수명이 끝나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삶...박제된 꽃...온실속의 화초로서 일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좌우간 나는 구절초를 무척 좋아한다.
    바람에 버티는 국화보다는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구절초가 더 좋다.
    국화가 가지지 못한 수더분함이 구절초에게는 마디 마디마다 스며있는 것이다.
     
     

     
     

     

     

     

    ********************************************************************
    가을풍경 13)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가 있다.
    조그만 이 나라가 오늘날 전세게의 우환의 절반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실 이 나라는 지금의 북한과 남한처럼 같은 민족이요 피를 나눈 형제들이다.


    이 사람들이 서로 갈라져서 죽어라고 싸움질을 하는 이유는 종교 때문이다.
    어느날 일부가 다른 종교를 받아 들였다. 다른 종교라고는 하지만 유태교와 이슬람은
    창조주와 아담과 이브로 이어지는 모든게 대부분 공유된다.


    사실 이슬람은 유태교에서 발전한 기독교의 한 유파라 해도 다를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 두종교는 극렬히 서로 싸우곤 한다.


    다른것에 대한 용인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것을 믿어면 아군..다른건 모두 적군으로 보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은
    그들의 인식체계에서는 도저히 용서될수 없는 것이다.


    사랑...
    기독교의 함축은 사랑이다...이슬람의 함축은 관용이다.
    사랑과 관용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용인해야만 가능한것이기 때문에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할 것없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공부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은 서로 다른 색깔에 익숙해져가는 과정이다.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빨간색의 남자와 파란색의 여자가 만나서 서로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서로의 색깔에 나를 맞추어 가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자기고유의 색깔이 묽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상대의 색깔에 스스로
    익숙해지는 것이다.


    가을이다.
    모든 색깔들이 혼재되어 있는 계절이다.
    그렇다고 겨울처럼 무조건 하얗게 덮을 수도 없는 그런 계절이다.
    서로 상대의 색에 익숙해지자. 서로 사랑한다면 말이다.
     
     

     

     

     

    ***********************************************************************
    가을풍경 14)


    가을볕,된장단지


    가을은 한숨을 쉰다.


    스쳐가는 바람이
    똑...똑...똑...
    단풍소식을 전해도
    떠나버리면
    가을햇살이 찾아왔다가
    힘없이 돌아갈까봐
    제자리를 지키는
    단지속 가을이 한숨을 쉰다.


    찬서리 맞아야
    사과도 맛이 들듯
    가을볕아래 된장단지는
    구절초 향내로 익어간다.


    가을은
    스스로 익어가며 한숨을 쉰다.

     

    --------------------------------------


    예전에...뭐 그리 오래된건 아니지만 공주에 있는 영평사라는 작은 절에서
    처음으로 구절초 축제를 한다고 해서 다녀왔다.
    산골짝에 수십여호의 작은 동네와 중간규모의 사찰인 영평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온 골짝이 모두 구절초로 뒤덮혀 있는 경치가 가히 선경에 견줄만 하다.


    선경이야 내눈으로 직접 본적이 없으니 너무 과장되지 않았나 모르겠지만 먹을거
    충분하고 다툼이 없고 충분히 아름답다면 바로 선경(仙景)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영평사 계곡도 선경이라 불러도 과치는 않으리라.

     
     
     

     

     

    ********************************************************************
    가을풍경 15)


    영평사 부처님


    바람 한 줄
    구름 한 점
    꽃 핀 구절초 몇 송이
    이만하면
    올 冬安居 밑천은 되겠다.

     
     
     
     

     

    *******************************************************************
    가을풍경 16)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다.
    만나면 헤어져야 하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것이 세상의 순환이치다.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고 영원한 이별도 또 한 없는 것이다.


    잠시 소풍을 왔다 간다고 천상병 시인이 읊었던가..
    나는 지금의 삶이 온전히 본래의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결국은 어디론가 잠깐
    소풍을 다녀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인의 부고를 받게되면 나는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대여...잘 다녀 오소서"


    나는 아직 육근에 얽매어 살고 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는것...촉감으로 느끼는것...귀로 듣는 것 등에 얽매여서
    사물을 판단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만남은 기뻐다. 그것은 만인이 모두 공감할것이기는 하지만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또한 슬픔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별은 다시 만날것을 전제로 함인데도 사람들은 슬퍼하고 아쉬워한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애절해하고 통절해 하기 마련이다.


    헤어짐을 아쉬워 하지말고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키워야
    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만날수 있는 사람과의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지금의 세상이 시간과 공간을 얼마나 단축시키고 좁혀 놓았는가 말이다.


    인생은 짧다.
    마치 풀닢에 이슬에 맺친 이슬이 아침 햇살에 말라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것처럼 말한다.
    바쁘다... 무척 바쁘다... 사는게 말이다......

     
     
     
     

     

    *****************************************************************
    가을풍경 17)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나훈아라는 가수가 노래를 했었다.
    사랑은 필연적으로 눈물을 남긴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저 노래일뿐일까?
    나는 후자에게 한표를 보태고 싶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무었인가를 남기기 마련이다.
    그 남기는 결과물도 천차만별로 다종다양한게 사실이다.
    시인에게는 시를...화가에게는 그림을...수필가에게는 수필을...


    매미... 메뚜기... 잠자리들도 사랑의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 여름내 목청을
    돋구거나 무더운 햇살아래를 날라다닌다.


    사과나무...배나무도 결실을 남기기에 온 힘을 쏟아 붓는다.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는 첫서리를 맛아야 맛이 든다고 한다.
    어쩌면 사람의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데 생각이 미친다.
    사랑의 아픔은 그 사람의 마음을 여물게 하고 시거나 달거나 쓰거나 간에
    맛의 깊이를 깊게 한다.


    가을이 슬프지않고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남길것을 남겼다는
    안도의 마음이 짙기 때문일 것이다.


    외롭게 남아 혼자서 가을풍경을 지키는 연밥처럼 말이다....
     
     
     

     

    *****************************************************************
    가을풍경 18)


    감나무 만큼 가을의 엑센트 역활을 하는 것도 드물지 싶다.
    풍성하던 나무들이 하나둘 잎을 떨구어 내고 나면 앙상해진 가지들마다
    허전함이 가지마다 매달리는데 이때쯤에 빨간 간들이 달린 감나무는
    그 허전함을 많이 메꾸어 주는 역활을 하는 것이다.


    감나무에 열린 감은 저절로 떨어져 삭힌 감이 달고 맛이 있다.
    사람들은 인내심이 부족하다. 아직 익지도 않은 감을 장대로 따서는 단지에
    담아서 아랫목에 두고 익혀서 먹는다.
    저절로 익어야 맛이 바짝드는데 이렇게 익힌 감은 달기는 하되 마음까지
    달지는 않다.


    잘 익은 감은 두손으로 살짝 쪼개면 향내가 난다.


    현대에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 선승으로 나는 세분을 든다.
    40대의 나에게 익숙한 이름들만 예를 들자면 통도사의 경봉스님..해인사의
    성철스님..송광사의 구산스님인데 이 세분은 어쨋던 먼 발치에서라도 직접
    뵌 분들이다.


    그 중에 경봉스님이 극락선원에 계실때의 일이다.


    극락선원에는 경봉스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겠다는 수좌(스님)들이나 신도들로
    항상 득시글 했다.
    참선을 하는 스님들은 참선후에 자신이 깨달은 바를 큰 스님이나 스승에게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인가라고 한다.


    어느날 수좌 한 사람이 극락선원의 경봉스님을 찾아왔다.


    "그래, 무슨일로 찾아 왔는고?"
    "제가 이번 안거 때 한 소식을 깨달아서 인가받고자 찾아왔습니다."
    "도를 깨달았다고?"
    "녜..단박에 꿰뚫었습니다."


    경봉스님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고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그래, 그거 좋은 소식이네. 동쪽으로 꿰둟었는가. 서쪽으로 꿰뚫었는가?"
    "아. 그것이...."
    "막대기로 꿰둟었어, 손가락으로 꿰뚫었어?"
    "..........."


    한번 말문이 막힌 수좌는 경봉스님의 이어지는 질문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경봉스님은 들고있던 주장자로 사정없이 수좌를 내리쳤다.


    이어서 경봉스님은 불호령을 내렸다.
    "이런! 어디서 풋감을 따가지고 와서 홍시라고 꺼내놓는 것이냐!"
    "풋감이라고요?"
    "그래 이놈아. 너는 따가지고 온것도 아니고 훔쳐온것 같구나"


    마음을 찾는 과정도 늘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달관한거 처럼 말하기도 하고 세상사를 다 아는양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을 본다는 것은 곧 부처를 이루는 일이다.


    아! 나의 풋감은 언제나 홍시가 되어 내 혀를 달게 해줄것인가...
    그럭 저럭 가을도 깊어서 바람이 차다.

     

     

    '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치와 까마귀..  (0) 2006.06.11
    짧은 가을여행  (0) 2006.06.11
    거미와 잠자리..그들의 사이에서..  (0) 2006.06.11
    그냥 스쳐지나가 주세요..  (0) 2006.06.11
    동막골의 나비들...  (0) 2006.06.1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