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짧은 가을여행
    이런저런 이야기 2006. 6. 11. 21:44


    짧은 가을여행 
    2005-11-11 오후 12:00:00

     

     

    오랫만에 출장이 없는 날..
    남들은 오랫만에 출장이 있는 날로 표현을 해야하건만 출장을
    여름에 찬밥 먹듯이 하니 가끔씩 출장이 없는 날이 오히려
    생경스럽기도 하다.
     

    출장이 없이 회사에 있는 날은 오히려 휴가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날은 멀리 나가기도 귀찮아서 그냥 회사 짭밥으로 해결을 한다.
    스테인레스 식판에 자신이 먹을 만큼 덜어먹는 이 회삿밥을
    왜 짭밥이라고 하는 지 모르겠다.

     
    이렇게 점심을 걸치고 나면 배도 꺼지게 할겸 산책을 즐기는게
    대부분 점심시간에 내가 만들어 내는 풍경중에 하나다.
     

     

     
    *
    회사 식당을 나오면 회사 마당에서 보이는 낚시터다.
    겨울이 다가 오는가 보다.
    이제 더 이상 농사용 물이 필요없어진 탓에 내년봄에 내릴 비를 위해
    어느정도 비워두어야 한다.

     
    평일이라 낚시꾼도 없다.
    낚시꾼이 없어진 가을 못에는 왜가리만 바빠졌다.
    더 추운 겨울이 오기전에 지방질을 비축해야 하리라.
    구부정한 자세로 한마리의 미구리라도 더 찾아서 먹어야 겠다는
    앙다진 자세로 바삐 다닌다.

     
    왜가리가 저리 바삐다닌다는 것은 이미 계절이 가을을 벗어나 겨울의
    영역으로 한발 더 다가선 것이리라.
     

     

     

     *
    식당과 기숙사가 있는 뒤란에는 이미 가을걷이가 끝난후라 이제 기다리기에도
    지쳐버린 열무 몇개와 그리고 가을의 마지막을 달구는 햇살만 가득하다.

     
    식당부부가 봄부터 가을까지 가지...고추...열무..배추등을 조금씩 심어서는
    가끔씩 우리들의 입을 호사시켜 주기도 한다.
    이곳의 농사야 말로 우리들이 늘 눈뜨고 보고 있는대로 무공해 유기농인셈...
    하지만 양이 워낙 적어서 그 많은 공장식구들 입을 매일 호사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주 가끔씩 내어 놓는다.

     
    회사식당부부는 가만히 따지고 들어가 보니 와이프 친구의 부부와도 절친한
    사이여서 어쩌다 한번 회사식당에 나타나는 최고 불량손님인 나에게 여간
    친숙한 티를 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늘 점심을 먹으러 늦게 간다.
    일찍가면 줄을 한참이나 주~욱 서있어야 하는 수고로움도 귀찮기도 하지만
    왁자한 분위기보다는 조용함을 즐기는 탓도 또한 있어서 늘 느지막히 가는 편인데
    그런때마다 계란후라이라도 꼭 하나씩 해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다.
     

     

     
    *
    회사의 서쪽의 모퉁이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여름에는 분수도 틀어서 제법 한운치를 하는 곳이지만 요즈음은 주변의
    나무들이 매일같이 떨구어내는 낙엽을 감당할 길이 없어 가동을 중단한
    그런 상태다.
    곧 이어 밀어닥칠 겨울에는 어차피 가동을 못할 것이니 낙엽을 핑계삼아
    이참에 아예 분수를 중단한 터이다.

     
    하릴없이 이 주변을 한 5분여 왔다 갔다 해본다.
    "바스락...","보시락...","뽀드득"....발자국 하나 마다 조금씩 다른 소리들이
    들린다. 같은 낙엽의 무더기이건만 발자국마다 화음도 다르고 소리의 강약도
    달라서 가끔씩 이런것에서도 나름의 느낌이 생기게 되는 것인가 보다.

     
    하기는 우리들 인간들도 몇백만을 모아두고 위에서 보면 그게 그거 같기도
    하겠지만 실상은 모양도 느낌도 행동도 모두 다른것처럼...
    아무리 하찮은 것들도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과 특색이 존재하는듯 하다.
     

     

     
    *
    서쪽 가장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면 북쪽 모서리에 타조 한마리를 키운다.
    식당에서 잔반처리용으로 키우는 녀석인데 벌서 이놈과 가끔식 눈을 맞춘지도
    어언 5년이 넘어가고 있다.

     
    3년전까지 암수가 나란히 있을때는 내가 가끔씩 다가가서 "훠~이!!"하고
    객적게 해도 눈도 꿈적하지 않던 놈이 3년전에 어느날밤에 불현듯 암놈이
    떠나고 나니 제놈도 무척이나 외로운 모양으로 10미터 바깥으로 지나만 가도
    고개를 빼어 흔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미물이라도 반갑다고..지놈이 외롭다고 저리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데
    그냥 매정히 스쳐버릴 수는 없는 탓이라 가까히 다가가서 폰카로 한번
    찍어 주기도 하고 "이놈아..가실에 많이 먹어둬라..겨울 잘 나려면..."하고
    한번 건듯 말해주고 가야 내 마음도 편해지는 것이다.

     
    이놈이나 나나 껍데기의 형태만 다를뿐 마음이 갇혀있기는 매한가지일터....
     

     

    *
    불과 달포전만해도 점심시간에 잠깐의 시간동안에도 아이들처럼 안전화의
    둔탁한 바닥으로 밤송이를 까면서 까르르~웃기들도 하더니 이제는 인간에게
    줄것이라고는 바스락대는 바람소리 뿐이니 아무도 발걸음을 않는곳이다.

     
    푸드득~~
    오늘은 그래도 행운인 모양이다.
    요즈음 통 보기 힘들기만 하던 산비둘기 서너마리가 낙엽밑을 뒤지다가
    인기척에 놀라서 날아 오른다.

     
    아마 몇십년은 족히 흘렀으리라.
    내가 국민학교 3~4학년때 쯤이 였으리라..우리 동네에 공기총 가진 집이
    딱 한집이 있었는데 그집의 형이 사냥을 갈라치면 나는 항상 뒤잡이로
    따라 나서곤 했다.
    산비둘기가 주 사냥대상인데 빵~하고 총을 쏘고 나면 숲을 뒤지고 새끼줄에
    동여매는 것은 내가 맡아 했다.

     
    그래서 그날 수확의 배분이 있게되면 넉넉히..어떤대는 서너마리씩이나 얻어
    오면 엄마는 장만해서 맛있는 산비둘기 볶음을 해서 온식구들이 먹고는 했다.

     
    가끔씩은 이런 자투리 시간도 귀해서 소중한 추억을 들추곤 하는 것이다.
     

     

     

    *
    갈대....
    억새가 아닌 갈대를 우리 공장안에서 볼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한 며칠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끔히 정리를 해버렸다.

     
    그래도 그 중에도 멋쟁이가 있었나 보다.
    내 마음을 썩 잘아는 이가 있는듯 몇 가닥의 갈대는 그냥 두었다.
    갈대가 제 혼자 있으면 절대로 멋이란게 없다.
    갈대는 그저 바람이 있어야만 진정한 갈대로서 자연의 한 풍경이 된다.

     
    생각해보라.
    바람도 한점 없는 날 꼿꼿하게 서있어야 하는 갈대의 멋적음을....
    바람도 갈대도...있을때 서로 아름답다.
     

     

     

    *
    겨울을 앞둔 탓인가..유난스레 하늘이 깊고 맑다.
    한번 빠져버리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요즈음의 하늘은 시리고 깊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끝이다.
    하늘로 솟은 무전기용 안테나는 오늘도 딱 맞는 주파수를 찾아 헤맨다.
    무전기는 서로가 딱맞는 주파수를 공유해야만 교감이 가능한 물건이다.
    비단 무전기 뿐이랴..사람 마음도 같다.
     

     

     


    *
    오동나무는 이가을이 깊어지기 까지는 푸러름에 있어서 따를 나무가 없었다.
    지금은 가을이 골수까지 깊어져 버린 탓에 자연 오동나무에도 황량함이 찾아와서
    푸르럼을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든다고 했던가.
    예로부터 딸자식을 낳게되면 오동나무를 심어서 나중에 출가를 할때에
    그 오동나무로 가구를 해서 보낸다고 했다.
    딸의 배우자로써 출세한 사람은 곧 봉황과 같을 것이고 봉황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것은 역시나 딸자식이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는 자리로 시집을
    가기 바라는 부모의 바램일 것이다.

     
    아파트 생활...찌들어 버린 도회의 생활에서는 딸자식을 위한 오동나무는
    언감생심으로 그림의 떡이요 하늘의 별에 다름이 아니다.
    그저 한푼두푼 저축해 모아서 나중에 오동나무로 만든 장롱이나 하나
    사서 보내야지...

     

     


    *
    벌레가 먹어서 여기저기 구멍이 숭하게 나버린 이파리 하나...
    그래도 아직은 미련이 많이 남은 탓인지 떨어질 생각은 아예 없는듯하고
    그 구멍에 눈을 가까히 대니 또 다른 풍경들이 보인다.

     
    이것도 하나의 가을이요..우주의 모습이라하고 폰카메라를 가까히 대고
    한장을 남겨본다.

     
    세상은 볼 수록 아름답다.
     

     

    *
    오동나무 아래를 어슬렁 거리니 오동나무 열매가 제법 눈에 뜨인다.
    봉황이 깃들면 먹는 다는 열매가 저것인가 싶기도 하고 옛 추억도 갑자기
    미어터지게 가슴을 아려나와서 몇개 줏어왔다.

     
    예전..어릴때는 참 먹을게 귀하기도 했는데 이때쯤에는 오동나무 아래에
    여기저기 흩어진 오동나무 열매를 따서는 손톱으로 껍질을 벗기고
    먹기도 했던 것이다...

     

     


    *
    이 오동나무 열매를 까먹으면 잣과 비슷한 맛과 향이 난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이제 엎어지면 오십을 눈앞에 두고 어릴쩍 추억 한자락과
    장난삼는 일도 또한 재미가 잔잔하다.

     


     


    *
    늘 그렇듯 세월이란게 지내놓고 보면 이렇게 추억의 파편들만 가득하다.
    결국 사람이 산다는 것이 지나간 이런 추억의 파편들을 모으고 모아서
    같은 것끼리 모우고 모자이크해서 그림을 만들어 가는 과정속에 사는 것이다.

     
    가끔씩의 이렇게 20여분에서 30분동안의 짧은 산책동안 나는 다람쥐가 된다.
    겨울먹을 양식으로 도토리를 모으듯 나도 내 생각의 창고를 채우는 다람쥐가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모님과 君子蘭  (0) 2006.06.11
    까치와 까마귀..  (0) 2006.06.11
    가을풍경 18題  (0) 2006.06.11
    거미와 잠자리..그들의 사이에서..  (0) 2006.06.11
    그냥 스쳐지나가 주세요..  (0) 2006.06.1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