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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곧 떠납니다.時流評說 2006. 6. 7. 18:09
조류독감..곧 떠납니다.
2004-02-12 오후 9:23:01
요즘 닭이 수난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닭하면 설레임의 표상이였습니다.
방학때마다 가는 외가에서 잿간이라고 재를 모아두는 헛간에 매달린 짚으로 만든
닭집에서 매일 계란을 꺼내서 물과 섞어서 대접에 담아 밥을 할때 쪄서 계란찜을
해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일 수 없었지요.
그래서 방학이 되면 언제 외가에 가라고 하나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지요.
외손주가 왔다고 집에서 기르던 닭도 한마리 잡아서 푹 고아서 주셨지요.
쫄깃한 그 고기를 죽죽 찢어서 5학년때 짝지였던 그 여자아이의 하얀이빨같은
소금에다 찍어먹고는 했었지요.
그리고 국물에다 밥 한그릇 말아서 후딱~ 게눈감추듯 먹어치웠지요.
사촌동생이 이랬습니다.
"세야~~ 세야가 오이깨네 우리도 호강한다 아이가.."
세야는 형아의 사투리였습니다.
제놈이나 나나 귀밑머리 하얘진 지금은 "형님"하고 깍듯히 하니 오히려 어색합니다.
육촌형님과 형수님은 구식결혼을 하셨지요.
그때가 아마 제가 국민학교 3학년쯤 되었지 싶습니다.
마당에 상이 놓이고 여러가지 음식이 놓였고 지금도 기억나는것은 보자기에 다소곳하게
쌓인 닭이였습니다.
그때는 신랑신부의 백년해로를 지켜보아 준것도 역시 닭이였습니다.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결혼을 하기까지 살았던 곳이 구포입니다.
황지에서 발원한 민물이 바닷물의 비릿한 냄새를 맡고는 흥분해서 흐름도 유장해지는
그곳..구포가 고향입니다.
구포에는 유명한 오일장이 있습니다.
어릴적에 옆방에 털보아저씨가 세를 들어 살았습니다.
털보아저씨의 본업은 화가였습니다.
구포극장에 그림을 그렸는데 한번그리면 10일이상 상영을 하니 그동안 할일이
없었던 털보아저씨는 생닭집을 했습니다.
도라무깡(드럼통) 밑에다 돌로 아궁이를 만들고 나무로 물을 끓이는데 아저씨는
닭을 딱 잡고는 등있는 쪽을 수도(手道)로 내려치면 이상하게 캑~하고 고꾸라
졌지요. 그러면 물에 담구고 휘휘 막대로 저었다가 꺼내어 닭털을 벗기지요.
발가벗겨진 닭은 부끄러운지 오돌토돌하니 닭살이 돋은채로 좌판위에 가지런히
뉘어진채 다음 주인을 기다리곤 햇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셨던 아저씨입니다.
그 아저씨 덕에 한 일년간은 극장은 늘 공짜로 다녔습니다. 늘 초대권을 가져다가
주셨기 때문이였는데 마누라가 바람이 나서 도망한 이후로 시름 앓으시더니
고향으로 간다고 우리와 이별을 하셨지요.
그 아저씨덕에 닭도 참 많이 먹었습니다.
제가 무지하게 좋아하는게 무었인지 아십니까?
닭발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먹냐고 그럽니다.
우리 와이프역시 닭발은 못먹는데 가끔씩 본가에 가면 우리 엄마가 아들이 닭발좋아
한다고 지금도 손수 해주십니다.
어릴때 털보아저씨가 저녁이면 한소쿠리씩의 닭발을 주셨거던요.
그런 닭이 요즘 수난입니다.
조류독감인가 뭔가해서 닭이 소비가 되지 않는다는 군요.
예전에도 양계장의 닭이 집단으로 죽을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구포장에다가
아주 싸게 내다 팔기도 했지요.
그런거 사먹고 자랐어도 잘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언론에 의해 너무 부풀려지는 것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고온에 견디는 바이러스는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스때처럼 마늘..고추..이런거 무지 잘먹는 우리 민족이니 조류독감쯤이야
충분히 견뎌낼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아마 머지않아서 조류독감이 이 땅을 스스로 물러갈겁니다.
왜냐구요..
아주 더럽고 매쓰꼽고 아니꼬운 같잖은 정치인들이 많지 않습니까.
조류독감인들 이런 오염인간이 판을치는 나라에서 오래 있고 싶겠어요?
그렇다고 생각하지않습니까?'時流評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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