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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학의 발원지..경주 용담정을 찾아서...
    동학농민전쟁 2006. 5. 25. 23:25

     

    동학의 발원지..경주 용담정을 찾아서...

     

     

     

    용담정 가는 길에 만난 수풀속의 소화전...

    도저히 그 용도가 짐작되지 않았는데 아하!~ 여기가 국립공원이구나..산불이 발생했을때

    도움이 될듯 싶었다.

     

    잡초들속에 우뚝히 솟아 있는 소화전..어쩌면 우리민족 최고의 격동기에 우리 정신적

    자주를 내세웠던 수운 최제우 선생이야 말로 군계일학의 인물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 우리 것..우리 동네..우리이웃..등등 '우리"라는 것에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도 드물것이다. 반면에 어느 정도의 지위와 권력과 금력을 가지게
    되면 정반대로 우리것을 외면하기에 급급한 것도 또한 우리 민족의 특질이다.


    불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 올때도 지배층을 통해서 였으며 우리들의 정신을 깡그리
    중국에 속박되게 만든 유교가 들어 올때도 역시나 지배층에 의해서 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자랑스럽게 내세울 우리정신, 또는 우리의 사상이라는 것이 있을까?


    외래되어온 불교와 유교..거기다가 근세에 이르러 기독교까지 들어와 우리의 정신이
    말살되어 가던 무렵에 그래도 자주적이랄수 있는 여러 사상들이 출현을 했다.
    그중에서도 동학이야 말로 이나라 최하층 민중들로 하여금 자주적인 삶을 살아야
    함을 일깨워준 진정한 우리 사상이라 할 것이다.


    들불같이 일어나 이땅의 민중이 그래도 살아 있음을 보여준 동학농민전쟁은 주로
    호남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기는 했지만 그 씨앗이 발아한 곳은 경상도땅 경주였다.


    동학의 개조인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 태어나고 자기성찰을 거쳐 마침내 세상에
    그뜻을 전한 용담정이 있는 곳이 경주이기 때문이다.


    동학..지금은 천도교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서양의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천주학을 서학이라고 했고 그에 반하는 이름으로 동학이라 이름한 우리나라 자생적
    종교였던 것인데 인내천..곧 사람이 하늘이라는 사상을 근간으로 포교를 시작한지
    어언 150년에 가까워 지고 있다.


    동학농민전쟁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뜻으로 하나씩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며칠동안
    포항으로 출장이 있었고 마침 오늘은 여유가 많이 생겨서 용담정을 둘러본다.
    어쩌면 용담정이야 말로 동학농민전쟁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근원지가 될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이다.


    동학(천도교) 제 1세 교조인 수운 최제우 대선사께서 37세인 1860년 4월 5일에
    지금의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662번지인 이곳에서 단군과 풍류도를 이어서 세번째
    우리 민족의 자생적인 종교를 창제한 것이였다.


    1백 30여년전 대구 관덕정에서 흑세무민한 죄로 좌도난정률을 적용시켜 참형에
    처해져 수운이 순교 한후 오랫동안 폐허가 되었다가 1960년에 정자를 복원하였으며
    천도교 포덕115년 (1974)에는 새로 크게 지었다고 한다.


    수운 최제우가 살았던 19세기 중엽 조선 사회는 국내에서는 지배층의 지도이념인
    유교사상이 이론과 실제의 괴리로 한계에 이른데다 끊임없는 당쟁과 세도정치의
    뿌리깊은 관행으로 정치 기강이 무너지고 농정의 실패와 기상이변등으로 기근이
    계속되어 국가경제마저 파탄 나게 되었고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바깥으로 부터는 서양세력이 종교와 무력을 앞세워 끊임없이 압박해 왔던 우리
    역사상 최고로 힘든 역동기였다.


    수운은 경주의 벽촌이던 곳에서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신분의 한계를 절감하여
    오랜 방황과 수도 끝에 서양세력에 대항하고 평등사회 구현을 위해 마침내 동학을
    창도하여 한국사회를 깨우친 세기적인 선각자였다.
    동학은 문화적 자주의식이었고 민족주의 사상이었던 까닭에 날로 확산되어 갔다.


    수운은 서교인 천주교가 조상의 제사를 반대하고 특히 천당에 가려면 부모, 처자보다
    자기를 우선하고자 하는 개인 구원교리를 강하게 비판하고 사후의 영혼구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현세를 긍정적으로 보고 현세에서의 보국안민과 지상천국 건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동학(천도교)은 시천주 신앙으로 요약되는데 여기서 천주는 민속신앙에서 말하는
    잡신과 같은 귀신도 아니고 서양의 신과도 구별되는 오직 사람속에 내제한 보편적
    신으로 자각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 대한 경천 사상의 화복이요,모든 사람들은 자기 몸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인내천이라고 하여 신분의 평등사상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수운 최제우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에 대하여 단호한  반서양의 척사적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요망한 서양적`이라 하였고, 일본에 대해서도 극단의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서양문물이나 군사적 침략보다는 서학의 종교적 침략에 대해 가장 심각한 문명적
    위기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종교라는 것이 그 민족의 정신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반면 수운은 국내의 타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유교,불교가 당시 동아시아
    문명의 사상계의 중심인 중국이 서양에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보고 서학의 강점도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에 대해 쇠운기에 접어 들었다고 보았고 서교는
    천시를 알고 천명을 받았다는 것도 인정하였던 것이다.
    수운은 침입하는 서양 세력에 대항하여 척사를 내걸고 보국안민정신을 진작시켜 지상
    천국 건설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갈피를 잃고 방황하고 신음하던 민중에게 새로이 희망을 주었던 것이다.


    같이 동학의 반서양 문화사상은 반왕조적 저항의식과 함께 근대화의 정신적 기틀이 되는
    근대 민족주의, 인간존중적 인권사상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때부터 근대적 민족적 국가의 싹이 트고 시민의식 또한 나타 나기 시작
    했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그래서 동학은 교세 확산운동, 동학농민혁명, 3.1독립운동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근대적
    민족사 전개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수운 사상의 또 하나의 핵심은 개벽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운론을 내세워
    조선왕조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새로운 사회건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몽중노소문답가>를 통하여 동학출현을 기점으로 하여 후천개벽의 새로운 문명의
    여명이라고 단정지었다.


    시운론적인 역사의식을 주장하였다. 그는 지상 신선사회의 건설을 제시하였다.
    즉 요순과 같은 이들이 다스리는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군자공동사회를 만들 것을 주장
    하여 기존의 존왕주의적 군주주의를 과감히 버렸던 것이다.


    역사는 늘 한 사람에 의해서 혁명되는 것이다. 석가에 의해 인도가..공자에 의해서 중국이..
    예수에 의해서 유대인이..그렇게 정신적 혁신을 이룩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수운 최제우와 같은 자주적 선각자가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수 없다.

     

     

     

    용담정으로 들어 가는 입구의 포덕문(佈德門)

    어느 종교이던지 다른 사람에게 종교를 전하는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마침내 그의 사상을 전하기 시작한 것을

    동학(천도교)에서 포덕..즉 덕을 널리 편다는 뜻...이라고 한다.

     

     

     

    용담정 가는 길에 만난 멋있는 소나무 한그루...

     

     

     

    여기가 용담이다.

    용담정이란 이 용담이라는 연못위에 지어진 정자라는 뜻인데 사실은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서야 용담정을 만날수 있다.

     

    물이 어찌나 맑던지 제법 깊어 보이는데도 바닥까지 훤히 보였다는....

     

     

     

    우거진 소나무 숲을 따라 길게 이어진 운치 있는 용담정 가는 길..

    끊임없이 귓가를 간지럽히는 계곡의 물소리..이름 모를 새소리...솔닢을 흔들고

    부비는 바람소리..그리고 숲의 빈틈들을 비집고 쏟아지는 햇살의 줄기들...

     

    이런게 선경(仙景)은 아닐런지...

     

     

     

     

     

    용담교와 용담정...

     

     

     

    수운 최제우 선생이 치열한 자기성찰을 통해 자각한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하늘이 있다라는 진리를 퍼트리기 시작한 곳이다.

     

    건물은 최근에 다시 지어졌지만 댓돌만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머물러 있더라는...

     

    150년전 누군가가 불원천리를 달려와 수운 선생의 가르침을 들을때도 오늘처럼

    햇살이 저리 따스히 쏟아 졌으리라..

     

     

     

    수운 선생의 자기성찰에 일조를 했을 용담정옆 계곡...

     

     

    용담정에서 몇십걸음이면 이런 운치있는 정자와 계곡을 만난다.

    예전에는 수운 선생과 제자들이 자리를 펴고 시국을 논하고 삶을 논하고 세상을

    논했을 그곳.....

     

     

     

    용담정옆 계곡을 흐르는 작은 폭포...

    아~ 그는 가고 없지만 자연을 통하여 여전히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마음을 정화하여 자연을 자신의 속에 넣을수 있는 자만이 자연도 그의 것이 되리라.

     

     

     

    다시 길을 잡아 지방도로로 나와서 길 건너 산아래 동네에 있는 수운 최제우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

    그가 태어난 집이 있었던 곳이라는 유허비와 몇 송이 꽃들..그리고 늦봄의 햇살만

    지킴이로 남아 있다.

     

    그의 선각자적인 공로에 비해서 너무 초라한...

     

    우리들이 우리것들을 외면할때 우리적인 것이 없는 정신적인 노예가 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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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동학농민전쟁의 전적기 순례를 하고 따로 폴더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동학농민전쟁의 전적지 순례의 기행문이 될터인데 그 뿌리인 수운 최제우 선생의

    흔적도 마침 인연이 닿았을때 순례 해두고자 했습니다.

     

    용담정 마루에서 30분의 명상을 하며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보고자

    했습니다. 비록 한 사람의 선각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겠지만....

    150년전의 나라 사정이 그를 울분케 했을 터입니다..

     

    그때의 입장으로 돌아가 적은 글이기에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반대로 특정한

    종교를 폄하할 의도는 없었음을 밝혀 둡니다.----반디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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