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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를 보내며..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6. 5. 18. 22:55
매미를 보내며..
2004-08-20 오후 5:37:22
지난 한달은 무더웠고 짜증스러움에 치를 떨었다.
살아온 나이에 곱하기1을 하면 여름을 보낸 숫자일텐데 더위나 추위에 무심한 나도
참으로 참기가 어려운 한달을 보낸것 같다.
인간이라는게 참으로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어서 차에 오르거나 사무실에서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에어콘이라는 물산적 풍부함에 적응이 되었는지
집에 돌아온 밤시간은 에어콘이 없는 5층빌라 꼭대기층의 고통이 심했던것 같다.
사무실에서도 에어콘은 내자리와는 제일 멀리 있다보니 출장이 없이 사무실에 있는
날은 선풍기를 하나를 전용으로 트는데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연 어떤 때는 도타운 종이를 가지고 부채 대용으로 펄럭여 보기도 하고 얇은
플라스틱으로 바람을 일으켜도 시원치 않을때 그나마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게
매미소리다.
맴맴맴~~~찌르르르~~
매미의 첫소리는 항상 우렁차게 시작을 한다. 그러나 그 울음이 끝나는 부분은 항상
처연해지게 마련이다.
우렁차게 맴맴맴~~으로 시작해서 짜르르르~~로 처연하게 끝나는 울음을 들어면서
늘 가슴을 짠하게 하는 그 일생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초가가 참 많았다.
나는 어릴때부터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적산가옥의 함석지붕밑에서 유년기를 보냈지만
일년에 두번있는 방학은 항상 밀양의 외가에서 보낸탓에 초가는 익숙하다.
구포의 변두리에 살았던 탓에 동네에도 절반정도는 초가집이였다.
초가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지붕이 반짝거리면서 윤기를 머금는데
그 이유는 추수를 마친 볏집으로 새옷을 갈아입기 때문이다.
그래도 십년정도마다 한번은 완전히 긁어내고 다시 지붕을 얹는데 이때는 온동네가
법썩이다. 품앗이가 잘 되던때인지라 열일제쳐두고 도와준다.
지붕을 이루는 나무와 작년에 이은 새 볏짚 사이에 오래되어 썩은 부위에서는
곤충들..애벌레들...구렁이까지 별의별게 다 나왔다.
우리가 어릴때는 폐병(결핵)환자도 많았는데 외가의 웃새미(윗샘)아재라고 외가붙이도
그랬다. 동네에 지붕가는 일이 생기면 아지매는 큼직한 바가지를 들고 오신다.
쇠스랑으로 긁어내린 섞은 짚속에서 손가락굵기의 하얀 애벌레를 골라내 소중히 담는다.
그 하얀애벌레는 굼벵이라는 놈이다.
또르르 몸을 말고 있다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면 손가락 끝이 따끔해질 정도로
물어 뜯어서 제몸을 방어한다. 몸통을 건드리면 굴러서 제깐에는 열심히 도망을 친다.
그래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날 나온 굼벵이는 웃새미아재의 몫이였다. 그것은 계약서나 회의를 통하지 않았어도
으례 그러려니 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동네에서도 그랬다.
어릴적에 유난히 몸이 약해서 경끼를 많이 했던 나를 위해 겨울에 산에서 잡히는 산토끼를
값을 쳐주지 않아도 우리집에 가져다 주었던 것이나 같은 거였다.
"대그이...몸도 약하고 하이께네.가져왔심더...밤너코 푹살마 미기이소"
이 말은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열살전 유일한 말이다.
아마 그런것처럼 폣병을 앓던 웃새미아재 몫으로 굼벵이가 돌아간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웃새미아재의 그 뒷이야기를 모른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들이 빨간색..파란색 스레트로 갈아입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삼류극장의 간판처럼 되고 난 다음부터 나의 관심밖으로 웃새미아재는 사라져갔다.
마지막으로 웃새미아재의 기억은 아마 내가 4학년때였던가 일것이다.
그때도 외가에 가 있을때 였는데 정식방학은 아니고 무었때문이였는지 1주일정도
10월달에 방학이 있었다.
그때 새마을때문이라고 외가도 초가를 털어내고 기와모양을 한 스레트를 빨간색으로
올릴때 였다. 외가가 하필 국도변이라고 해서 관에서 독촉을 많이 한 탓이다.
그날도 웃새미아재를 대신해서 아지매가 큰 함지를 가지고 왔고 그렇게 줏고 있는데
배꼬마당(동네 공용마당을 이렇게 불렀다..어원은 알수없다)가에 있는 집의 할배가어디서 들었는지 몸에 좋다는 소리에 욕심을 났는가 보다.
"아~ 너무(남의)동네 아지매가 여까지 와서 이라믄 되나..이거 내가 무야된다.."
아지매는 굼벵이를 줏다가 할배의 어름장에 어쩔줄 모르고 애궂은 함지만 만지작 거린다.
"아재요..(외삼촌에게는 이 할배는 아재뻘이다.) 웃새미 행님이 몸이 안좋다아입니꺼"
"내도 올해는 좀 묵어야 겠다안카나..."
갑자기 핏대를 세운 할배의 서슬에 다들 어쩔줄 모른다.
웃새미아재의 아지매는 얌전한 사람으로 기억이 되는데 여전히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끝내 눈물을 보인다.
아마도 폣병을 앓고있는 웃새미아재 생각에 갑자기 섧어졌을 것이다.
깡~~깡~~깡~~~
사랑방의 문을 열고 가만히 보고 계시던 외할배의 곰방대로 놋쇠 재털이를 치는 소리가
가을햇볕에 반사가 되어서 모두의 정수리를 울린다.
이 동네에서 우리 외할배는 최고의 어른이다.
동네잔치가 있어도 외할배에게는 한상을 차려서 제일 먼저 드린다.
회갑잔치가 있어도 사랑에 가만히 앉아계시면 한상 차려서 가져다 드린다.
그러니 동네에서는 서열이 제일 높은 분이다.
집성촌에서의 서열은 국가권력을 초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짐작할만 하지 않는가.
"아픈 사람이 먼저 아이가~~"
그러고는 사랑문이 탁 닫치고 만다.
그것으로 끝이였다.
마지막으로 꼬물거리는 굼벵이가 함지에 담기는 모습을 보았다.
웃새미아재의 눈보다 더 슬픈 아지매의 눈을 본것도 그때가 마지막이였다.
내가 기억하는 굼벵이의 모습이다.
그래서 맴맴맴~ 차르르~ 우는 매미의 뒷소리에서 애절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매미는 '선연'이라고 하여 곱고 어여쁜 뜻으로 쓰기도 하고, 신선으로 탈바꿈하는 곤충을
닮았다고 해서 '선세'라고도 한다.
호메르스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피도 없고 배설을 하지 않으니 신과 같다 했다.
정말로 먹지 않는 지는 모르지만 종일토록 울어내니 먹을 틈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네 옛사람들은 매미의 덕을 칭송해 마지 않았다.
머리 모양새가 관(冠) 끈이 늘어진 형상을 닮았다 하여 문(文)을 대비시켰으며
맑은 이슬만 마시고 평생을 살다 죽으니 청(淸), 곡식을 먹지 않는다 하여 겸손할 겸(兼),
집 없이 아무곳이나 제 몸붙이는 나무등걸이 집이니 검소할 검(儉),
자신의 허물을 벗고 노래를 불러 절도를 지켜내 신(信)이라 일컫는다.
문, 청, 겸, 검, 신을 이른바 오덕(五德)이라 칭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아치들이
본받아야할 징표로 삼았다.
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양반들은 매미 날개와 머리 끈을 닮은 익선관(翼蟬冠)을 썼다.
나랏님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별한 행사에서는 정장에는 익선관으로 치장했으니 매미가
갖고 있는 덕의 깊이가 어느 정도이며 그덕을 본받으려는 의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무려 십년가까이를 애벌레로 지내다가 허물을 벗고 날개를 얻어서 세상에서 가장 청량한
소리를 우리들에게 세상에 내뱉고 가는 시간은 불과 2~3주에 불과하다.
나는 매미를 볼때마다 인내의 소중함과 영광의 허무함을 동시에 배운다.
오늘이 힘들고 고될지라도 내가 마침내 투명하고 고운 날개를 얻는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지금의 고통은 단지 여름의 날개를 얻기위한 봄의 과정을 밟고 있을뿐이다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눈은 상대성이다.
월세를 살때는 전세로 옮길때 애벌레를 벗어난것 같고 전세에서 살다보면 또 제집 가진
사람이 애벌레를 벗어나 날개를 단 매미로 보인다.
삶은 과정일뿐이다.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매미처럼 시원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향해 울수있는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허물을 벗게될 내년을 기다리는 굼벵이는 희망이 있다.
혹여 매미의 뒷울음이 처연하게 들리는것은 날개를 달고 목소리를 얻은 기쁨보다도
10년의 기다림과 희망이 더 이상 없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굼벵이의 인내와 희망을 안고 이 여름동안 내내 나를 가르쳐주었던 창문밖 벚나무 두번째
가지의 매미를 보낸다.
이제는 귀뚜리로부터 가을을 배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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