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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의 동물적 본능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6. 5. 11. 00:30

     

    자살의 동물적 본능


    사람이던 동물이던 죽는 방법에는 병들어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스스로 죽거나
    이 세가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명체가 늙게 되면 모든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고
    그러므로 면역또는 기타의 요인으로 죽게 되는데 이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자 삶의 과정이다.


    요즘은 사고로 자기의 의지나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지 않고 죽는 사람도 많은데
    대개는 외부의 물리적인 힘에 의한 경우이다.
    그러나 사실 인류가 지적인 능력을 갖춘이후 가장 큰 숙제가 바로 자살이다.


    얼마전에도 수능 첫시간을 마치고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아프다.
    진화론자들은 사람이 자살의 충동을 느끼는 것은 동물의 자기 희생적 본능의
    표현이라고 이야기 한다.


    별거숭이 두더쥐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공동의 배설지역에 가서 죽을때까지 꼼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의 집단에 기생충을 옮기지 않으므로서 자기집단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런 동물의 집단에는 레밍쥐의 사례도 있다. 유행에 예민해서 맹목으로 남을
    따라 행동하는 일을 레밍효과(lemming effect)라 하는데 여기서 ‘레밍’은 다리가 짧고
    작은 귀에 부드럽고 긴 털을 가진 설치류 레밍쥐에서 따온 말이다.
    아마 컴퓨터게임도 있었던것 같다.


    노르웨이에 사는 레밍쥐(Lemmus lemmus)는 보통 쥐와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한다.
    지구상의 모든 쥐들이 으례 그렇지만 특히 레밍쥐의 집단은 워낙히 번식력이 탁월해서
    3-4년만 지나면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면 봄이나 가을의 하루를 잡아
    야음을 타고 여러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나중에는 대낮에도 집단으로 이동한다.


    이들의 종착지는 바닷가라고 한다. 거기서 막다른 벼랑에 다다르면 처음에는 멈칫거리며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며 도망갈 곳을 찾다가 다른 길이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고는
    그만 바다에 빠져버린다.


    ‘집단 자살’이 무의식적으로 본능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다. 과학자들도 아직 확실한 원리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때가 되면 늙은 쥐들이 죽어줌으로써 집단의 밀도를 낮춰 결과적으로
    종족보존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 있다. 이런 일은 3-4년 주기로 반복해 일어난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터득한 방법인 셈이다.


    코끼리도 ‘집단적인 죽음’을 행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때가 되면
    떼를 지어 한 곳으로 가서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모험가들이 상아를 찾아서 헤메다가
    코끼리무덤을 찾는 횡재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코끼리는 자신이 죽을 때가 되면 무리를 지어 정해진 굴로 찾아가서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는
    얘기가 전해져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무도 그 ‘전설의 묘지’를 찾지 못했다.
    다만 그동안 찾아낸 코끼리 무덤이라고 알려져 횡재한 몇몇의 발견은 그냥 몇마리의
    코끼리떼가 이동하다가 늪등에 빠져서 죽은 시체의 더미라는 것이다.


     가끔 고래들이 해안에 올라와 죽는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을것이다.
    이 고래의 자살도 미스테리다. 그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나, 고래의
    귀에 기생하는 회충이 방향감각을 파괴 해서라는 설, 고래의 늙은 리더가 망령이 나서
    해안으로 오면 집단생활을 하는 고래들은 마구 쫓아서 죽음을 각오하고 해안으로 올라온
    다는 설.. 등의 여러가지 설이 있을뿐이다.


    다만 지금까지 동물학자들이 밝혀놓은것은 늙어서 쓸모가 없어지거나 병에 감염되면
    집단을 위해서 그렇게 희생하는 몇몇종의 동물집단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고래장이라는게 있었다고
    한다. 부모가 늙게되면 자식이 지게에다 또는 등에 업어서 산에다 갔다버리는데 물론 후대에
    없어졌지만 사회적인 제도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버리는 자식이나 버림을 받는 어버이나
    담담히 받아 들였다는 이야기이다.


    그것 역시도 집단을 위한 자살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동물적자기본능의 표현이 더욱 신빙성이 있어보인다.
    우리는 자살을 한사람을 의지가 없다는니 나약하다느니 비하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단지 잠재된 동물적인 본능이 어떤계기로 불쑥튀어 나와서 이성을 누르고 이긴
    결과로 본다면 우리에게 잠재된 본능도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환경과의 관계..국가와의 관계...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의 수많은 관계메트릭스공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내재된 본능이 꿈틀거리지 않으리라.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르게 쉬면서 당신의 메트릭스가 허물어진곳은 없는지 당신은
    지금 사회와 이성이라는 메트릭스에 들어있기나 하는지 살펴볼일이다.
    나의 메트릭스와 소통이 되는 또 다른 사람의 메트릭스는 허물어지지 않았는지 눈여겨
    볼일이다.
    나의 메트릭스가 아닌 우리의 메트릭스..그곳을 복되게 할 여분의 에너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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