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사고]
삶의 안전핀
2004-02-17 오전 12:40:12
97년인가 확실한 연도가 기억에 없는데 구포건널목 전에서 크게 기차사고가 난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직선거리로 1킬로정도 떨어져있는 곳이라 수업중에도 기차의 제동
소리가 끼~~~이~~~~익~~하고 나면 그건 틀림없는 열차사고였다.
그러면 몇몇은 교실을 빠져나와 담치기(학교담을 넘는 것)를 해서 냅다 건널목으로
달려간다. 거의 한달에 두어번은 사고가 났으니 일년이면 20명 정도가 사고로 그렇게
구경거리만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그곳은 낙동강의 제방이 강을 끼고 이어지다가 강이 없어지면서 가로놓인 건널목으로
절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엄청난 단절감으로 이어졌는지 지금 기억으로도 자살자가
절반을 넘게 차지했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주로 귀가 어두운 노인들이었는데 대개는 차비 몇푼을 아낄려고 화명,물금
등에서 가장 지름길이었던 철길을 따라 걸어오다가 변을 당했다.
커브가 심한 곳이라서 기관사가 사람을 발견했을때는 이미 늦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고가 공군파이럿과 그 애인의 죽음이었다. 그때 김해에는 지금의
국제공항자리에 공군비행장이 있었는데 구포에는 그들의 숙소가 제법 많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공군사관학교를 나온 촉망받는 파일럿이 어찌하다 보니 호스티스와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데 집안의 반대가 극심하였던 모양이었다.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처참한 시신과 1되짜리 소주병, 가지런히 놓인 두사람의 신발과
하얀 유서한통 이렇게 였다. 구경나온 아줌마들은 눈시울을 적시곤했다.
그런 사고가 나면 수습은 항상 둑밑에 살던 넝마주이들의 차지였다. 종이를 줏어담는
긴 집게로 흩어진 주검들을 수습해서 유족들에게 인도하는 일을 도맡아서 하였었다.
우리는 언제나 사건현장에 일찍 도착하는 편이었고 수습에 걸리적 거린다고 몽둥이에
얻어맞기도 많이 했다.
국민학교 6학년때 였던가 5학년때였던지 확실하지 않은데 그때 구포시장안에 제법
큰 제지공장이 있었다.
한번은 이 제지공장에 보일러가 터져서 40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은적이 있는데
그때 숙모님도 날아온 파편을 1킬로도 넘는 거리에서 맞아서 머리를 다쳤었다.
구포둑에서 내려다 보이던 그공장에 지금의 냉동차비슷하게 생긴 차들이 와서는 팔..
다리..등등을 고기 싣듯이 싣고가는 모습을 우리는 둑에 앉아서 지켜보기도 했다.
어린나이에도 참 삶이란게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햇었던것 같다.
비단 사고는 남의 일만은 아니였다.
국민학교 5학년때 우리반에서 제일 키도 크로 눈도 크고 얼굴도 이뻣던 합판공장의
큰딸이였던 그 여자애도 낙동강에 불어난 물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건널목에서
죽었고 그 바로 밑 갈대밭에서는 중학교 1년동안 참으로 친했던 한족다리를 소아마비
로 살짝 저는 그 친구도 개구리잡는 여름 방학 숙제로 죽었다.
나는 어릴적에 그런 사고의 연속속에서 보고 자라왔다.
중학교때의 일이다.
구포에는 남자중학교가 없어서 추첨을 통해서 서면까지 통학을 했었는데 한번은
월사금을 내려고 엄마가 학교에 왔다가 기다려서 같이 집에 오는 길이였다.
지금도 생생한 33번 버스가 여러사람이 기다리는데도 휘~익하고 정류장을 지나쳐
가버린다. 배차시간이 제법 긴터이라 난감한 표정을 짖고 잇는데 금방 다음차가
따라와서 타고 오는데 거의 다와서 구포건널목 직전에서 진행을 할수 없단다.
통제를 하던 경찰이 말하기를 바로 앞차가 건널목사고가 났다고 한다.
아찔햇다.
분명히 우리가 탈뻔하였던 차였다.
그 소식은 빨리 전해져서 아버지는 희생자가 있다는 병원을 헤매다니고 우리는 우리
대로 길이 막혀서 몇시간을 늦게 집에 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반도주를 감행하여 서울에 있을대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근무를
할때..그러니까 뚝섬의 기숙사에 있을때의 일이였다.
몇몇이 술자리를 가지면서 이번 일요일에 사이클이 어떠냐고 하는데 자전거를 못탄다는
걸 깜빡한 나는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후 이틀동안 가게집 짐자전거를 빌려서 기숙사의 밤을 밝히고 일요일에 약속장소로
의기양양하게 나갔더니 처음보는 사이클에 기가 질렸었다.
그래도 자존심에 어지 어지타고 양평으로 가다가 20여미터의 벼랑에서 떨어졌는데
거짓말같이 한군데도 다친곳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 이후에 큰 사고없이 세상을 순탄하게 살고 있는데 사고는 만용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만심이 사고를 부른다는 이야기이다.
직업의 특성상 중후장대한 물건들을 많이 다루는데 한 프로젝트가 피크에 다다를때마다
피를 말리는 연속이다.
회사에서 안전사고는 관리자의 능력과 직결되므로 여간 신경이 쓰일뿐 아니라 사고가
난 당사자도 인생이 여간 괴롭지 않다.
그래서 중요한 작업에는 부하직원을 시켜서 작업자의 바이오리듬을 체크한 다음에
사고 요인이 많거나 신체지수가 좋지 않으면 다른 작업을 시키기도 한다.
본인은 불만이 많지만 할수 없다.
26년정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껶었지만 안전사고는 꼭 가정이 불안하거나
은행등이나 다른 채무관계로 복잡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지라 항상 부하직원들의 가정사에 관심이 많다.
사고치지 않는 삶..
사고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가정에 충실하라.
가정의 화목은 슈류탄의 영원한 안전핀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