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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린다는 것
2004-08-17 오후 2:20:29불과 며칠전에 땡볕이 정수리를 후끈하게 하는 대낮에 현장을 한바퀴 돌때였다.
철골재에다가 금방 페인트를 칠해서 반빡거리는 그곳에서 열심이 암수두마리가
꼬리를 하트형으로 말고서 교미를 하다가 계속 철재의 반짝이는 바닥에 꼬리를
계속 붙였다가 떼었다가 한다.
반짝거리는 철재의 표면이 아마 수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곤충의 세계에도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우리 인간세계와 비슷한 인연의
세계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똑 같은 인간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사람과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의 관습이 달라지듯이 공간적인 인연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것은
아니다.
저놈들도 물가에서 태어났어야 하건만 어찌하다가 망치소리 귀를 울리고
용접흄이 가슴을 압박하는 무미건조한 공장바닥에서 태어나 쉬는곳도 H빔이나
햇살에 달구어진 철판위가 고작이다.
사람이라면 지각이 있으니 처해진 환경에 불만을 가질줄도 알것이고 당연히
그 생각이 오래지속되다가 보면 다른곳이나 더 나은 곳으로 옮길수도 있으련만
이놈들은 일단 자리를 잡은 이곳의 자기영역을 철저히 지킨다.
다른 영역이 물이 많고 그늘도 있음은 이놈들에게는 오로지 척박하고 흉스럽게 휑한
이곳을 목숨걸고 지킬 뿐이다.
가끔은 방금 뿌려놓은 페인트를 물이라고 슬쩍 내려앉았다가 페인트에 다리가 붙어
꼼짝도 못하는 놈들도 있어서 떼어서 날려주기도 한다.
곤충들중에서도 잠자리는 불완전 변태를 하는 놈이다.
그래서 아침에 숲을 거닐다 보면 막 껍질을 벗은 잠자리들이 떠오르는 햇살에 날개와
몸을 말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된다.
물속에서 거의 4~6개월을 애벌레로 살다가 우화를 하여 날게되면 이놈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종족번식의 본능만 남아있는 듯 설친다.
먹이를 먹는 것은 짝짖기 할 동안의 기력과 암껏이 알을 낳기까지 적으로부터 자신의
정자를 지키는 일을 위해서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페인트를 갓칠한 빤지러한 철재면을 물이라고 착각을 하는 놈들이 좀 있다.
그래서 하트모양으로 교미를 하면서 알을 놓느라고 꼬리를 계속 철재바닥에 댔다가
땟다가를 계속하고 있으니 보기에도 애처롭기까지 하다.
어제저녁에는 비가 제법왔다.
오랜 무더위로 인한 열대야에 시달리다가 어젯밤에는 그나마 좀 시원히 잠을 청했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공장을 한바퀴 도는데 여기저기 콘크리트 바닥에 얇은 물웅덩이가
생겨있다. 말이 물웅덩이지 평탄한 콘크리트 바닥에 일부 고르지 않는 부분만 물이
고여서 아마도 햇살이 한 두어시간만 비추어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그런 얇은
웅덩이다.
아직 아침시간이라 공장의 소음이 들리지 않으니 제일 분주한 놈들이 잠자리와 소금쟁이다.
몇개의 웅덩이마다 한쌍씩의 잠자리들과 몇마리의 소금쟁이들만 바빠졌다.
물에 알을 낳는 잠자리들은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이니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사랑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잠시도 쉬임없이 암수 두놈이 만든 하트모양의 사랑행위중에도 암놈은 연신 꼬리를
물에다 담구었다 떼었다 하면서 알을 낳기에 여념이 없다.
지금 저알들은 아마도 깨어보지도 못하고 햇볕에 말라서 그냥 한알의 먼지로 사그라져
이세상에 왔다간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것이다.
평생을 나무라고는 모르고 세상은 그저 콘크리트와 쇳조각...발이 닿으면 뜨거운 철재..
그리고 끈적한 페인트가 이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엄마사이에서 생겨서
세상구경도 못해보고 말라 먼지로 변해갈 불쌍한 알들....
아는지 모르는지 잠자리 몇 쌍은 바쁘기만 하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그나마의 공간에서도 암수의 불균형으로 짝을 이룬놈과 그렇지
못한 놈도 있게 마련인데 짝을 이룬놈들은 이세상에 왔다간 흔적은 겨우 남겼다고
안도하고 생을 마칠것이다.
햇살에 마르고 바람에 분해되고 지게차 바퀴에 갈려서 가루가 되더라도 원초적인
본능하나는 해결하고 가니 그것만으로도 행운인 것은 사실이다.
깡~~ 깡~~
망치소리가 공장마당에 가득차기 시작하는 것은 잠자리와 별반 다를것없는 우리네
반복된 일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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