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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할매가 만들어준 염주...
    그림그리는 재미 2006. 5. 11. 00:13

     

    우리 할매가 만들어준 염주...

     


    모가지 긴 사슴이 멍한 눈으로 뒤돌아보듯이 사람도 살다보면 반추되는 추억으로
    가슴이 아릴때가 가끔 있다.


    선운사갔을때 사찰내에 있는 기념품점에 들렀는데 여기의 가격이 내가 다녀본 절들의
    어느 기념품점 보다 비싸다는 걸 알았다. 그때 마음에 드는 108염주를 들었다가 가격을
    보고 놓은 적이 있었다.


    염주... 염주를 보면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난다. 벌써 15년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다.
    돌아가실 때 할머니는 우리와 떨어져서 삼촌과 살고 계신터라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는데
    묘소자리는 내가 직접 골라서 공원묘원에서 제일 볕이 좋은곳을 골라드렸다.


    한많은 일제 강점기에 청춘을 보낸 할머니는 돈 벌러 일본으로 가셨다가 탄광에서 돌아
    가신 할아버지의 유산일부를 나누어 우리 아버지는 큰댁에..삼촌은 데리고 그렇게
    재혼하셨다가 실패하고 만년에 돌아와 평생을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하셨던 할머니다.


    또 삼촌에게 큰아들이자 나에게는 사촌동생이었던 그 잘생긴 동생..사실 나보다도 더
    정이가고 귀여워 했던 그동생을 사고로 일찍 보내신 할머니..집안의 장손인 나에게는
    할머니는 언제나 어렵사리 대하셨고 특히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때는 항상 최상석에서
    할머니와 겸상을 하던가 했던 할머니...


    우리 엄마는 상당히 엄하신 분이셨다. 어릴때 한번 잘못을 저질러서  매질을 당할때는
    장딴지에 피가 줄줄흐를 정도였다. 반면에 아버지는 다소 여린 성격이셨던 분이다.
    그래서 나는 어릴때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일단 아버지가 계시는지 확인하고 안계시면
    할머니에게로 피난가는 길이 매를 피하는 길이였다.


    한번은 냇가에서 놀다가 옷과 신발이 몽땅 떠내려간줄도 모르고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놀다보니 집에 가면 맞아죽게생겼다. 그길로 할머니에게로 스트리킹을 했는데 할머니는
    그길로 10리를 걸어서 장에 다녀오셨다. 근데 소문을 들은 엄마는 옷가지와 집에 있는
    신발을 가지고 오셨는데 나는 급한김에 쌀뒤주에 숨어 있다가 잡혀서 집으로 왔다.


    그렇게 빨가벗고 할머니에게 가서 한 첫마디가


    ‘할매! 밥도..’


    ‘야아~~ 옷은 우예뿟노..아이고 답답애래이..이일을 우짜노~~’


    ‘밥도고..배 고프다 안카나..’


    할머니에게 반말하는 손자는 나밖에 없었다..심지어는 동생들은 말을 배울때부터
    할머니께는 높인말을 쓰라고 윽박질렀는지 다 높인 말을 사용했는데 나는 할머니..
    숙모..고모..이모 모두에게 반말이였다.
    친가나 외가를 통틀어 첫 손자라는 프리미엄이였다.


    할머니는 봄이 되면 손수 율무씨를 심어셨다. 마당가의 한곁에 정성을 들여서 심으시고
    가을에는 수확을 하시는데 많지도 않은 그 씨를 가지고 할머니는 염주를 꿰시는데 항상
    두개를 궤셨다.


    숫자도 해마다 들쑥 날쑥했지만 그렇게 꿰신 염주를 초파일이 되면 하얀 모시적삼의 목에
    거시고 절에 가시곤 하셨다. 늘 가지고 계신 것을 본 기억은 없는데 초파일에는 항상 목에
    걸고 가시는 거였다.


    만드신 두개중에 하나는 나에게 주셨는데 먹을수도 없고 계집애들처럼 목에 걸수도 없는
    걸 왜 주시는지...


    채 3일도 가기전에 터트려버리면 할머니는 그 알들을 다시모아서 이번에는 알수가 좀
    줄어든 염주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한번은 그때는 율마라는 사실도 몰랐던 그 염주가
    열리는 나무에 병이 들어 수확이 불가능해지자 그앞에 앉아서 애석해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우짜겟노~~ 우짜겟노~’를 연발하시던 할머니가 말이다.


     가을에 수확을 했을때는 할머니의 유난스레 작은 손에 한 웅큼이였는데 파란하늘에서
    여과없이 떨어지는 가을햇살이 좋던날.. 사촌동생과 장난을 치다가 할머니 벽에 걸린
    할머니 염주를 떼어다가 뚜두~둑 실을 끊고는 고무 새총알로 다 써버렸다.


    ‘우짜겟노~~ 아이고..야들이...우짤라꼬~~’


    결국에 이듬해 봄이된 초파일에는 파종하고 그나마 남은 몇 개의 율무로 염주가 아닌
    단주를 만들어 절로 가셨다.


    할머니의 일년농사였던 율무...그리고 무었을 그리 염원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알알히
    꿰시면서 설움과 한을 담으신 것은 아닐까.. 돈이면 살수 있는 염주...그것을 보면서
    생각나는 우리할매 염주...


    이제는 그림으로 밖에 남겨 놓을수 없는 우리할매 염주~~~

     

     

     


    # 할매가 심던 염주나무(율무)와 만들어 주시던 추억속의 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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