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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과 시와 수필로 엮는 여름 휴가記
    그림그리는 재미 2007. 8. 22. 22:22

     

    그림과 시와 수필로 엮은 2007년 여름 휴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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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세계불꽃축제


    박씨네 밭뙈기는
    넓은 먹물빛이다
    사람들은 모두
    어찌 농사 짖느냐 했지만
    박씨는 부지런히 아궁이를 지펴
    연기를 피워 올렸고
    다른 사람들
    양파, 부추 수확 끝낸 형산강변
    그의 밭뙈기에 어느 하룻밤
    연기의 신호를 받은
    UFO 날아와 무언가 뿌리고 사라진 후
    심어둔 씨앗도 없는
    나락이
    대파가
    봉선화가
    코스모스가
    펑펑 울면서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꽃들이 웃으며 피었다 했다

     

    +++++++++++++++++++++++여행메모(2007.8.4)++++++++++++++++++++++++++++


    인생은 재미없는 도돌이 음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박자치인 나는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니 도돌이 음표가 많은 음악은 길어지니 박자치라는
    내 콤플렉스가 여지없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도돌이 음표에 따라 여름휴가 시즌이 되었다. 해마다 휴가 한달전부터
    요모조모 계획을 짜느라 머리를 맞대곤 했지만 올해는 그도 시시해져서 그냥
    마음내키는 대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 보자 하고 길을 나섰다.


    장마는 지났지만 장마때보다 더 따루어 대는 비로 고속도로가 많이 막힌단다.
    국도로 차를 달리니 길옆으로 우르릉~ 거리며 흐르는 냇물이 사뭇 위협적이다.
    둘째가 포항으로 가잔다. 불꽃축제가 보고 싶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는
    방학중임에도 보충 수업을 한다고 학교를 나간다. 학교 공부보다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더 클거라는 신념을 가진 나는 와이프를 시켜 학교에 전화를 넣어
    여행으로 며칠 못 갈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기 막혀 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불꽃놀이를 하지 못할것이라 했더니 큰 아이가 포항시청에 전화를
    넣어 상황을 물었다. 포항은 비는 커녕 더워서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농구선수의 코딱지만한 나라~ 그것도 둘로 쪼개진
    작은 땅덩이인데도 이렇게 서로 다르다니....


    올해가 4회라는 포항세계불꽃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형산강변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형산강은 신라의 서울 경주가 바다로 통하는 관문같은 곳이다. 예전에는 왜구들이
    간간히 형산강을 거슬러 경주의 코앞에서 노략질을 하기도 했단다.
    지금의 형산강은 잠들지 못한다. 강이 바다와 몸을 섞는 부끄러운 자리를
    포항제철의 화려한 불빛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불꽃축제의 마지막 날은 프랑스팀, 일본팀, 한국팀이 기량을 겨루는 날이었다.
    프랑스팀의 불꽃 놀이는 한편의 클라식 음악을 빛으로 형상화 한 듯한 감동을
    주었으며 일본팀은 섬세함이 돋보였다.
    내용보다 겉멋을 선호하는 우리 성향답게 한국팀은 허공에 불꽃으로 갖가지
    꽃들을 피워 내어 탄성을 자아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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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호미곶에서


    구리와 주석의 불륜으로 태어나
    호미곶 바다 뚫고 나온 손은
    미처 경락을 만들지 못해
    바다와 하늘이 서로 통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십번
    바람을 일으키면 질세라 파도가 성을 내었다
    터를 잡고 살던 갈매기들이
    보다못해 천금같은 제 속을 게워
    손가락 마다 경락을 뚫고서야
    바다는 살이 빠졌고
    하늘은 구름뒤로 숨어 눈만 내밀었다
    오늘은 바람도 파도도 숨을 죽였다

     


    +++++++++++++++++++++++여행메모(2007.8.5)++++++++++++++++++++++++++++


    불꽃놀이가 너무 늦게 끝이 났다. 무려 7시간을 차에 시달린 여독도 만만치 않게
    무릎이며 허리며 팔다리를 조였다. 어디로 가야하나?
    계획하고 출발한 것이 아니였으므로 어디로 가서 하룻밤을 유숙해야 하는지도
    하나의 고민이 되었다. 여관과 민박, 그리고 찜질방을 두고 설왕설래하다가 뜨거운
    탕속의 안온함에 끌려 문덕의 찜질방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이들이 유년을 보낸 곳이 포항이다. 12년을 살았으니 큰 아이에게는 모든 유년의
    기억이 서린 곳이 포항이다. 그럼에도 큰 아이는 경주를 가고 싶다고 했다.
    경주로 가기로 하고 바닷가로 길을 잡아 호미곶을 들러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토끼꼬리가 맞다고 한다. 지도를 놓고 보아도 호랑이 꼬리고 보기에는 너무 짧으니
    토끼꼬리로 보는 게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나는 와이프의 응원에 힘입어 짧지만
    그래도 호랑이 꼬리로 불러야 한다며 우겼더니 대학생인 큰 딸의 한마디가
    잘드는 창이 되어 나를 찔러왔다.


    "택도 없는 국수주의적 발상이야...그게 호랑이 꼬리라고 우리가 호랑이가 되나"


    호미곶에는 3개의 불꽃이 있다. 세기가 바뀌는 2000년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피지
    에서 채취한 불꽃, 호미곶에서 2000년의 첫 해오름에서 채취한 불꽃, 1999년의 마지막
    일몰의 서해에서 얻어온 불씨가 그것이다.


    그리고 광장에는 바다를 향해 손을 벌린 조형물이 바닷속에는 육지를 향해 손가락을
    벌린 청동 조형물이 있다. 수직으로 추를 내리면 아르헨티나 어디쯤 되려나 싶어
    그쪽에는 발을 조형하면 어떨까 했더니 이번에는 와이프가 비수같은 한마디를 꼽는다.


    "그쪽 사람들은 벨도 없남요? 냄새 나는 발을 자기 나라에 심게..."


    바닷물속의 손은 갈매기들이 배설물로 마치 경락인듯 그려 놓았다. 생명이 없던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 마침내 갈매기들로 인해 마치 살아 있는 듯 했다.


    피해왔나 싶었던 비가 남쪽으로 우리를 따라 왔다. 구룡포에서 감포로 향하다
    마음에 드는 바닷가에 자리를 깔고 컵라면을 한 젓가락 막 입에 넣으려는데 우드득~
    소나기가 쏟아 졌다. 작은 코펠에 물을 끓인 탓에 물을 인색히 부어 짠 컵라면에 빗물이

    섞여 조금 알맞은 간이 되었다. 우산 하나에 다섯식구가 머리만 디밀고 컵라면을 먹다가
    키득키득 웃다가 사래가 들렸다.


    경주는 사실 나도 가고 싶었던 곳이다. 안압지의 밤풍경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압지는 큰 아이가 두어살때 데리고 갔던 곳이다. 이십년 가까이
    흐른 안압지는 큰 아이에게 어떤 느낌으로 와 닿았을까?


    경주에 도착했을때는 아직 날이 훤했다. 안압지의 야경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둠이
    내려야 할 것이니 보문호에 잠시 여장을 풀었다. 딸들의 성화로 ATV라는 4륜구동
    오토바이를 임대해 주었다. 의외로 재미 있었고 얌전하던 딸들은 이 순간 마치
    숨겨운 야성이 폭팔한 맹수처럼 자갈밭을 으르렁 대고 다녔다. 평소 얌전하던
    둘째도 숨겨온 야성을 내 보였다.


    와이프는 저녁을 준비했다. 간편하게 라면으로 하자는데 굳이 하루 한끼라도 밥을
    먹어야 한다며 준비했다. 이번에도 첫숟갈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나기가 내렸다. 깔았던 자리는 이미 버린채 두고 먹거리만 모두 차로 옮겼다.
    이번에는 좁은 차안에서 다섯식구가 서로 바라 보며 킬킬 웃었다.


    안압지의 밤 풍경은 그림같았다. 벌써 대여섯번의 걸음이지만 안압지의 밤 풍경은
    질리지 않는다. 아이들도 다행이 좋아라 했다. 안압지는 신라가 통일을 이룩한 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게 내 지론이다. 통일전쟁을 하는 동안
    수많은 신라의 귀족들이 전사를 했고 그들의 미망인들은 당시 위정자들에게는 가장
    골치 아픈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염집 여인도 아니고 왕족이나 귀족들의 과부는
    함부로 표나게 욕망을 풀 수도 없지 않았겠는가.


    안압지를 발굴할 때 나무로 깍은 남자의 거시기 모양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따로 전시를 할 만큼 숫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했더니 그 전시는 꼭 보고 싶다고 했다. 공연한 말로 숙제만 늘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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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덕장을 지나며


    그들의 먹물빛 밤 밝히던
    어선들 수평선을 버리고
    서해로 떠나 버린 동해
    차마 떠나지 못해 얼쩡이다가
    늙은 채낚기를 따라 나와
    노끈에 몸을 기대고
    나날이 바다를 그리고 있다
    아무리 그려도 바다는 멀고
    심장은 자꾸 말라간다


    아! 그랬었구나
    연탄불에 오징어 구우면
    비트는 피부사이로
    온통 꼬릿한 내음 풍겨나와
    쪽빛 어지럼이 되던게
    잃어버린 바다
    그 그리운 몸짓이었구나

     

     

    +++++++++++++++++++++++여행메모(2007.8.6)++++++++++++++++++++++++++++


    경주의 야경을 보고 나서니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경주에서 자고 가느냐 아니면
    내일 북행하는 길을 위해 포항쯤에서 자느냐를 두고 고민하다가 포항으로 가기로 했다.
    포항에서 구룡포로, 다시 감포로 해서 경주에서 포항을 가니 한 바퀴  빙 돈 셈이다.


    포항에 가까이 와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휴가철이라 모텔은 방 잡기가 어려울 것 같다
    좀 더 북으로 오르기로 했다. 영덕쯤가서 잠자리 잡자하고 밤길을 돋우었다. 아이들과
    추억이 많이 서린 흥해바닷가에 잠깐 내렸다가 부근의 펜션을 이용하기로 했다.
    처음 전화에서 12만원을 부르던 펜션은 11시를 넘기자 8만원까지 내려갔다. 생각보다
    예산이 좀 더 들어가긴 했지만 밤새 시원한 에어콘 아래서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다시 7번 국도를 타고 새물을 찾아 헤매는 미꾸리처럼
    오르기 시작했다. 영덕을 가는 중에 만난 삼사해상공원은 전망이 좋은 곳이다.
    주목받지 못하던 이곳은 TV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로 촬영지로 선정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하여 지금은 거대한 관광지로 꾸며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치는 동해바다로 향한 시원한 경치보다는 하얀 건물에 빨간 간판
    으로 "국민가수 태진아 친동생집"으로 쓰여진 건어물 파는 집이다.


    해안도로를 타고 오르는 곳에는 예전에 오징어를 말리던 덕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지구 온난화 탓인지 동해안 전유물이던 오징어가 요즘은 서해바다에서 더 많이 잡혀
    오징어를 잡는 어선들도 죄다 서해안으로 몰려간 탓이다. 지난 밤 흥해해수욕장에
    섰을 때도 그 옛날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밝히던 오징어 채낚기 배들의 불빛을 볼 수
    없어서 낯선 풍경을 느꼈다.


    드물게 낡거나 규모가 적은 어선들이 잡은 몇 마리의 오징어가 바다와 마을을 구분하는
    철망이나 비닐 노끈에 걸리어 바다의 그리움에 속을 말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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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 강구항에서


    8월 염천炎天에는
    영덕 강구항 대게 장사들
    지금은 이방인 까레이스키
    러시아 환전상이 된다


    어둠을 달리던 기차가 내뿜던
    뜨거운 증기烝氣의 구름
    슬쩍 스치기만 해도
    동해의 차가운 물을 ?어온
    이국異國의 붉은 돈들이
    푸른색 가면을 쓰고 빠지는 코스프레


    만원짜리 서너장을 이어붙여야
    겨우 덮을 수 있는 대게 등딱지 네개와
    돈 열장을 바꾸어 먹은 날
    뱃속이 종일 꿀꿀했다

     

     

    +++++++++++++++++++++++여행메모(2007.8.6)++++++++++++++++++++++++++++


    어느덧 점심 때가 되었다. 강구항으로 들어섰다. 강구항은 동해안에서 멸치 그물을
    터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십육년전 멸치를 터는 철에는 사진을 찍는답시고
    자주 다녔던 곳이다.


    지금은 옛모습은 간 곳 없고 오로지 영덕대게로 불리는 먹거리의 시장으로 변했다.
    사실 영덕대게로 알려져 있지만 영덕 앞 바다에서 잡히는 놈은 한마리도 없다.
    대부분 조금 북쪽의 울진 앞 바다의 깊은 물이나 일본의 해역, 북한과 소련의 해역
    에서 잡히므로 국산대게라면 당연히 울진대게가 어울릴 것이다.


    지금은 그나마도 국산은 없고 90%가 소련 해역이나 북한산, 일본산이란다.
    값도 워낙 비싸서 조막만한 대게 4마리에 10만원이나 주고 먹고 나니 속이 쓰리다.
    그래도 예까지 왔으니 대게는 먹어보아야 되지 않겠냐는 가족들의 바램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에 비싸긴 해도 어쩔 수 없다.
    영악해진 상인들은 나그네의 그 속성을 잘 알고 있고 나름 이용하고 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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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포말 등대


    나는 광대다
    적막한 밤, 불빛에 꾀여
    동해의 포말들 우르르 몰려와
    제 흥에 겨워 바위를 들이 박다
    푸르팅팅 멍이 들어 돌아간다


    나는 광대다
    태양이 바위에 거북등을 그리는 낮
    물기를 찾아 나선 방죽의 두꺼비처럼
    사람들 꾸역 몰려와 도회의 단근질로
    내 얼굴을 온통 붉히어 놓고 간 자리
    산바람이 슬며시 다가와 흘리는
    웃음마다 도드라기가 돋았다


    나는 광대다
    집게발에 잡혀
    뱃사람도 떠나버린 빈터
    떠나지 못하고 지키는 광대다

     

     

    +++++++++++++++++++++++여행메모(2007.8.6)++++++++++++++++++++++++++++


    대부분 7번 국도를 통해 국토의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은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인
    강구항에서 풍력발전소에 이르는 길을 스치고 만다. 강구항을 지나 바닷가 길을
    따라 계속 북행하다가 보면 산쪽으로 드문 드문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창포리에 이르고 가장 먼저 대게의 집게발에 잡혀 있는 듯한 창포말 등대를
    만난다.


    예전에는 일반적인 등대였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늘면서 새로운 구경거리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모양으로 디자인 되었다. 이 등대앞의 계단을 걸어 바다로 내려가면
    맑은 바닷물이 철썩이는 해안이 나온다.


    코발트빛 바다를 그리며 지중해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내고 우리 나라에는
    이런 바다가 없다고 안타까워 하던 큰 딸이 "코발트 빛 바다다!" 며 탄성을 지른 곳이다.


    지금은 작은 어선에도 GPS를 기반한 항해장비가 있어서 등대의 불빛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현재의 등대란 오히려 육지 사람들이 바다를 관망하는데 양념 역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큰 항구의 등대는 아직 그런대로 조금의 역활을 하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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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 풍력발전소


    하늘이 바람의 씨앗을 뿌리면
    밤 파도 소리에 싹을 틔운 바람이
    옆으로 줄기를 뻗어
    솔가지를 흔들고
    물의 살결을 어루만지다
    심심해지면 산정山頂에 올라
    햇살에 제 몸을 쪼여 물기를 빼고
    가벼워진 몸으로 바람개비를 돌리며 논다
    바람개비의 원심력에 씨방이 커지면
    바람의 씨앗이 굵은 빗방울로 되어
    후두둑 떨어진다


    자신이 뿌린 씨앗만큼만 거두는
    정직한 바람이 사는 바닷가

     

     

    +++++++++++++++++++++++여행메모(2007.8.6)++++++++++++++++++++++++++++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이후 문명의 발전을 거듭한 인간들은
    자만심도 눈덩이 불어나듯 해서 이제는 신을 창조하기도 하고 자신이 신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해서 자연은 오직 인간을 위한 도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특히 그런 오만함은 서양인들이 더해서 서양 중심의 현대 문명은 자연소모형에
    포인트가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특히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미래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의 심각함을 인지한 현재는 태양력, 풍력, 조력등 자연친화형 에너지원의 이용에
    많은 기대를 가지게 하였다.


    그런 면에서 영덕 풍력 발전 단지는 대관령의 풍력발전소와 제주의 풍력발전과
    함께 미래를 위한 투자로 꼽을 수 있다.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의 풍력발전소에서 잠시 딱딱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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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고래불 해수욕장


    오늘은 무욕無慾한 날이다
    농도 짙던 욕망이
    담채색 빗물에 씻겨
    모래땅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무욕無慾한 날은 무료하기도 해서
    텐트를 두드리는 빗방울의
    박자를 셈하다 쪽잠이 들었다가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비늘을
    온몸에 치렁치렁 두르고
    여름이
    비를 타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언뜻 깨어나 로또를 살까 하다가
    오늘이 무욕無慾한 날임을 깨닫고
    개꿈을 꾼 셈 쳤다

     

     

    +++++++++++++++++++++++여행메모(2007.8.6~8)++++++++++++++++++++++++++++


    여름 휴가의 백미는 역시 해수욕장의 백사장에 머무는 햇살을 엉덩이로 깔아 뭉개는
    쾌감에 있다. 고래불 해수욕장에서 이틀밤을 텐트를 치고 잤지만 해수욕을 즐긴 건
    몇 시간 되지 않는다. 늘 비가 오락 가락 한 탓이다.


    첫날 도착해서는 텐트치고 저녁 해결하니 이미 밤이었고 그저 방파제를 거니는 것으로
    보내고 다음 날 아침부터 해수욕을 하다가 비가 오면 다시 텐트로 피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두어시간 따가울 정도로 햇살이 비치곤 했다.


    값이 2배나 되는 해안가의 슈퍼나 횟집의 가격표에 질려 영해읍에 나와 오징어 회와
    통닭을 튀겨왔는데 양이 많아서 고래불 해수욕장의 터줏대감인 사주보는 이웃 텐트에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8일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혹시나 했는데 제법 거세게 내렸다. 이미 젖어 버린 텐트지만
    비가 멈추고 햇살이 1시간만 쪼여주면 말릴 수 있겠다 싶어 버텨 보기로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떠난 사람도 제법 있고 우산을 쓰고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도 있다.


    참 무료했다. 잠깐 쪽잠이 들었다가 더 거세진 빗소리에 잠을 깨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텐트를 걷었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고래불 해수욕장을 떠났다. 짐칸에 실린 텐트가 물을 잔뜩 먹어 차가
    힘겨워 한다.


    어디로 가야 하나?
    와이프 얼굴을 넘겨보며 채근하자 와이프는 뒷자리의 큰 아이에게 바톤을 넘기고 만다.
    "하회마을 보고 싶어"
    일단 목표는 생긴 셈이다. 그래 그럼 영양군을 거쳐서 안동호반의 월영교를 구경하고
    그 다음을 하회마을로 길을 잡으마 했다.


    영양군을 지나다가 국도변에 있는 고추홍보관에 들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매운고추의
    대명사인 청양고추는 청송과 영양에서 재배되던 고추의 품종인데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청도 청양이 원산으로 알고 있다.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는 청양군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지금은 고추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한다.


    안동호반의 월영교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서 발굴된 400여년전 묘소에서 편지 한장이
    발견되었는데 일찍 죽어 버린 지아비에게 보내는 애닮픈 편지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는데 안동시에서 안동호반을 건너는 나무다리를 놓고 월영교라는 멋스런 이름을
    붙였는데 나무가 세월을 견디는데 한계가 있음인지 지금은 안전진단으로 건너지 못하게
    막아 두었다.
    연인이 이 다리를 건너면서 사랑을 맹세하면 오랫동안 그 맹세를 지킬 수 있다고 한때
    소문이 나기도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회마을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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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봉정사에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였다지
    잘 익은 연꽃 한 송이
    크게 깨달은 이가 들어 보였다지
    멀뚱한 눈들 사이로
    마하가섭, 동전크기로 웃었다고 했지


    소나기 오가는 날
    봉정사에 들렀더니 천년 묵은 극락전을 둘러
    매미는 통천음경通天音經을 외고 있었고
    쓰르라미 때아닌 도량석에
    화들짝 놀란 바람,
    풍경을 범종삼아 하늘을 열었다
    봉선화, 달맞이 꽃, 메꽃들 경건에 몸을 떠니
    그 자리가 잘 차려진 천등산회상天燈山會上이 되었다


    햇살이 열걸음 옮길 시간 지났어도
    여전히 극락전은 열릴줄 몰랐고
    조바심에 몸이 달아
    한 소식 보여 주십사 참나리를 들어보였더니
    와글대던 대중들만 까르르 웃었다

     

     

    +++++++++++++++++++++++여행메모(2007.8.8)++++++++++++++++++++++++++++

     

    하회마을로 가다가 갑자기 핸들을 꺾었다. 봉정사鳳停寺 간판을 본 것인데 몇 번의
    안동 나들이에서 번번히 들러보지 못한 곳이다. 별다른 계획이 있는 여행이 아니니
    시간에 대한 부담이 없다.


    안동시 서북쪽의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天燈山 기슭에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고운사
    孤雲寺 말사로 신라 문무왕 12년(서기 672년) 의상스님의 제자 능인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의상대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안동 부석사를 창건한 바 있는데 또 다른 절을
    짓기 위해 자리를 찾던 중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종이 봉이 앉은 곳인
    이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고 햇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 다른 전설에는 의상스님이 화엄기도를 드리기 위해 이 산을 오르는데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혔고 그로 인해 산이름을  천등산天燈山이라고 했다고 한다.


    봉정사는 극락전(국보 제15호).대웅전(보물55호).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등의 주요 문화재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봉정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공민왕이 들리기도 했고 최근에는 영국 여왕이 다녀가기도한
    우리 나라의 고유 사찰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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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마을은 쉬는 중


    한바탕 소나기 훑고 간 하회마을이
    기분 늘어진 오수에 빠졌다
    기념품 매점의 각시탈 웃음도 우습지 않고
    할미탈도 주름을 걷고 쉬는 중이다
    매미도 조심히 우는 삼신당 소원쪽지들도
    잠시 세월의 허기를 메꾸는 중이고
    나룻배도 강이 제 물빛을 찾기까지는
    드러누워 쪽잠을 자는 중이다
    기와담을 넘던 능소화도 잠시 허리를 꺽는 오후
    초가지붕에 돋은 버섯들이 키를 키우고
    도회소식을 잔뜩 지고 온 나그네들만
    노곤한 걸음을 사박사박 걷고 있었다

     

     

    +++++++++++++++++++++++여행메모(2007.8.8)++++++++++++++++++++++++++++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다. 하회마을을 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회마을은 몇년 전에 왔을 때 보다 더 세속적으로 변해버려서 기념품 매점에 걸린
    각시탈의 미소조차 도시적으로 보인다.


    예전보다 공개하지 않는 주택이 늘었고 그런 집들은 궁금증이 더해가서 대문의
    작은 틈으로 들여다 보게 만들었다.


    하회마을에서 노인정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원래 마을 사람들이 버스를 타는 곳이다.

    이곳이 관광지로 이름을 드날리면서 입구가 새로 생겼고 버스가 더 이상 들어 오지

    않아도 집집이 자가용이 있어서 그리 불편하지 않다. 자연히 버스정류장도 명을 다해

    형태만 고스란히 남은 문명의 화석이다.

    지금은 거의 사용될 일이 없는 빨간 우체통이 매달려 있는 처마 밑에는 아이들 몇이
    비를 피하고 있다. 비는 여전히 오락 가락 한다.


    비가 잠깐 멈출 때 마다 초가로 이은 담위에 조그만 버섯들이 때를 놓칠세라 키를
    키우고 빗방울들이 볏짚의 끝마다 매달려 구슬을 만들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나룻배도 물가의 기둥에 몸이 묶인 하회마을~
    이곳도 이제는 달려가는 중이다. 세상으로 말이다. 그것이 싫은 옛스러운 것들만
    잠시 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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