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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에 대한 小考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6. 4. 23. 13:18

    결혼에 대한 小考

     


    결혼이란 무었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것일까?
    올해로 19년의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결혼에 대한 정답은 없는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수없이 결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누구나 당연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지자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 인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결혼생활에
    대한 정의도 기준도 애매할 뿐이니 말이다.


    그냥 성인의 남자와 성인의 여자가 만나서 같이 사는게 결혼인가?
    나이가 되었으니 해야하고 또 그렇게 만나서 식올리고 사니 남자의 역활
    여자의 역활을 담당하는게 그런게 과연 결혼의 의미일까?
    물론 결혼에 대한 미사여구도 참으로 많다.


    결혼은 대개가 좋은 날을 받아서 한다.
    다산과 풍요를 보장해준다는 결혼 길일, 실제로 그런 날이면 숱한 결혼식이
    치러지느라 어디라 할 것 없이 북새통이다.
    그러나 40년 넘게 역학을 연구해온 한 전문가는 ‘길일은 없다’ 라고 딱 잘라
    말하고 있다.
    해마다 ‘대혼일’ , ‘길일’ 이라는 날만 되면 온 나라안이 시끌벅쩍해진다.
    기어코 그날 혼례를 올려야겠다는 신랑 신부 하객들로 교통은 마비되고, 뉴스와
    신문은 앞 다투어 보도한다. 좋은 날을 받아 아들딸을 결혼시키겠노라고 찾아오는
    부모들은 사주를 내밈과 동시에 ‘이달 주말게 좋은 날로 잡아달라’는 조건부터
    제시한다. 아무리 길일이라도 먼저 ‘주말’이나 ‘휴일’ 이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길일은 얼마나 좋은 날일까?
    오늘날에 와서는 그 자체의 의미보다 주말을 끼고 있어야 비로소 환영 받는 ‘길일’은,
    본래 음양오행의 성쇠를 따져 남녀가 혼인하여 합궁하기에 좋은 날을 가리킨다.
    즉 ‘그날’ 남녀가 첫 합궁을 이루면 다산과 풍요를 가져와 가정에 화합과 복록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의미도 그날은 가급적 주말이어야 한다는 점과 결혼 전 이미
    할것 다 해버린 커플이 많다는 사실로 평가절하 되고 있다.


    전혀 남이었던 사람들이 서로 끌리는 마음만으로 결혼에 이른 것으로도 찰떡궁합이다.
    중요한 것은 길한 날을 택하는 것에 있는 것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했으므로
    좋은 날이다라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결혼의 또 다른 함정은 완벽한 배우자를 원한다는 데에 있다.
    이 세상에 어디에 완벽한 사람이 있던가. 결국 우리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일 뿐이며
    단지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종교도 성직자도 필요해지는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불완전한 사람끼리 만나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보완해 주고 또 위해 주며, 격려해 주는 관계인이 되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완벽한 부부가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궁극적인 결혼은 독립이다. 동양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주례로부터
    이런 주례사를 거의 대부분 듣게 된다.
    `결혼은 두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두가정의 결합이라고..`
    이말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바뀌어야 할것이 결혼에 대하여 주변의 정리이다.
    분명한것은 결혼은 두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결혼은
    두사람..즉 부부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시댁과 친정..친가와 처가도 결혼의 범주에 들어가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의 순위는
    부부의 그것과 대치될수 없다.


    두사람이 부모의 틀에서 벗어나서 두사람만의 세계를 꾸며 나가는 것..
    그 사회적인 독립이 바로 결혼이다. 이 순위를 자식이나 부모..어느것에도 양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회적인 독립의 의미를 저버리면 결국에는 파탄으로 이어지거나
    법적인 부부로만 세월을 껍데기로 살아야 한다.
    자식을 양육하는 것도 또 다른 독립을 준비하는 과정일뿐이다.


    끊임없는 독립개체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결국에는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제도로
    우리를 옭아맬 뿐이다.
    얼마나 딱딱한가? 얼마나 권태로운가?
    그러나 우리인간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얻은 최대의 수확은 직립보행도 아니고
    불씨도 아니며 문명을 만들어낸 문자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때문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딱딱하거나 권태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제도가 성공하려면 사랑이 수반되어야 한다.


    사랑이 있는 결혼만이 아름답다.
    사랑이 있는 결혼만이 행복하다.


    문제는 단하나..사랑도 변할수 있다는 것이며 부부가 나누어 가지는 사랑의 무게가
    똑같지 않다는데 있다.
    가끔씩 주변에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항상 같다. 자기의 사랑이 늘 크다는 것이다.
    사랑의 무게가 같지는 않지만 가늠할수는 없다. 사랑은 그런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으로 자기최면에 빠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나는 무지 사랑받고 있다..갚아야할 사랑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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