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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탈의 꿈은 아나로그가 되는것..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6. 4. 22. 00:37

    디지탈의 꿈은 아나로그가 되는것.. 

     


    나는 좀 유별난 사람이다.
    현역에서 뛰고 있는 만년필만 5개다. 쓰다가 실증나서 또는 새로운 놈으로 장만해서..등등의 이유로 보관중인 놈도 수십개에 이른다. 지금도 회의를 하거나 작은 메모도 만년필을 사용한다. 와이셔츠에 꼽고 다니는 놈은 워트맨..유니폼 상의에는 예전에 공사감독으로 와있던 분이 준 독일제..차에는 파커..그래도 불안해서 집에도 거실의 연필꽂이에 또 다른 파커만년필...

     

    어쩌다 만년필을 잊고 회의 같은 걸 들어가거나 하면 다른 필기구를쓰게 되는데 어쩐 일인지 불안하고 머리속이 텅빈 느낌이 든다. 나에게는 어쩌면 편집증 같은 심리적 기제가 깔려있는 것일까. 만년필은 아나로그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우든펜에 빠져 있는데 초기라 샤프만 열심히 만들고 있지만 다음에는 볼펜으로 옮겨 갈 것이다. 그 길의 궁극은 역시 만년필이다. 나무로 깎은 으든 만년필... 나만의 만년필을 만드는 일이다. 왜 나는 아날로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퇴행하는 중인가...


    나는 노트북도 2~3년 마다 갈아치우고 있고 최신의 테블릿도 가지고 있다. 책장 한곁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PDA도 두개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얼리어답트는 절대 아니다. 어찌보면 나와 비슷한 연배들이 아나로그와 디지탈 세대의 사이에 끼여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당하고는 있지 않을까?


    요즈음은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편의점에서 몇가지 물건을 사고서는 잔돈을 제대로 받았는지 암산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왠만하면 현금을 내지 않는다. 체크카드는 암산하는 번거러움을 덜어준다. 기특하다. 회사 업무를 할때도 간단하게 암산하면 될 것도 계산기로 다시 두드려보아야 안심이 되는 이상한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때는 내가 디지탈 세대에 속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어떤때는 완전한 아나로그 세대인것 같을때도 있다. 파일공유 사이트로 최신유행100곡 같은 파일을 USB로 다운 받아 차안에서 열심히 듣고, 현장을 나갈때는 스마트폰으로 듣기도하고, 현장에서 문제점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 SNS로 담당자에서 수정을 지시한다. 내 능력밖의 일들에 부딪힐때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검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현장의 사진들은 그자리에서 바로 네이버 N드라이브에 올려서(아쉽게 다음에서는 그 기능이 없어졌다) 사무실로 돌아와 엑셀에 따 붙여 보고서를 만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 아날로그로 돌아간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진공관 앰프의 스위치를 올려두었다가 어느정도 예열이 되면 LP판을 걸거나 CD를 걸어서 진공관 앰프를 통해 나오는 지직거림으로 낮 동안의 여정을 정리하고 휴식한다.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필름카메라의 대표격인 FM-2를 오랫동안 사용했었는데 필름값도 점점 비싸지고 현상료도 올라 디지탈이 조금 섞인 DSLR을 구하면서 처분했었는데 그것이 늘 마음 한구석을 아쉬움으로 채우고 있다.필름카메라는 파인더를 통해서 보이는 대로 대충 조리개나 맞추고 좋아하는 시각에서 찍으면 된다. 러시아제 로모는 더욱 간단하다. 그냥 생각없이 눌러도 잘 나온다. 특히 로모는 특이한 표정의 사진을 많이 만들어 주는 편이라 선호한다. 차안에 항상 휴대하고 있는데 필름 현상을 위해 서울로 보내야 하는 번거러움으로 나를 괴롭힌다.  그런데 디지탈카메라는 오히려 까다롭다. 서로의 시각의 넓이가 너무 다르다보니 어떤때는 짜증스러울때도 있다. 지금 많이 쓰는 캐논의 DSLR의 경우는 조정을 위해 메뉴키를 한번 누르면 수많은 서브메뉴가 주르르 떠오른다. 왜 그렇게 많은지..조그마한 키 하나에 의존해서 조정을 하려니 자연히 짜증이 날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요즈음은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이번 스마트폰은 나름대로 고를때 요모조모 신경을 쓰긴했는데 사용하다보니 카메라에 접사기능이 없다. 꽃사진이나 작은 피사물들을 즐겨찍는데 접사기능이 없으니 앙코없는 찐빵같이 되었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다소 편법을 배워 사용중이다. 하필이면 이 기종에만 왜 그 기능이 없다는 말인가. 아날로그 세대면서 디지탈을 좀 아는체 하다가 된통 당한 케이스다. 진정한 디지탈세대라면 이런 실수는 안하겠지. 2년의 노예계약으로 당분간 발목이 잡혔으니 별 도리가 없다. 그래서 편법으로 접시때만 스마트폰에 붙여서 사용하는 렌즈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내가 지금 듣고있는 앰프는 오로라사운드에서 공동제작한 한음이라는 인티앰프(파워앰프와 프리앰프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앰프로 이해하면 편하겠다.)인데 이놈은 앰프의 심장이라 할수 있는 출력진공관을 바꾸어 끼울수 있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EL-34로 듣다가 지금은 KT-88을 장착해서 듣고 있는데 전에 듣던 놈은 예리한 맛이 두번째 놈은 투박한 맛이 느껴진다. 여름이나 봄에는 EL-34로 가을이나 겨울에는  KT-88을 끼워서 듣는다. 곡에 따라서 바꾸어 듣기도 한다. 현악기 위주의 음악을 들을때는 EL-34를 관악기 위주의 음악을 들을때는 KT-88로 듣는다. 그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 귀가 그다지 고급이 아니라 그저 작은 것으로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또 다른 위안이다.  겨울에는 앰프의 트랜스 뚜껑 위에 캔커피를 올려 두면 따스해 지는데 그 맛도 좋다. 디지탈은 이런 맛이 없다. 나는 아날로그다.

     

     

    오로라 사운드의 사장님이 쓴 칼럼에 이런 말이 있다.
    『~그러나 소리의 디지탈에게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답은 `아나로그가 되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말하여 디지탈 사운드는 소리의 기형아이며 정상적인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디지탈이라도 최종 소리는 스피커라는 아나로그 기기에 의하여 재생되기는 하지만...). 다만 디지탈이 발전될 수록 그 디지탈 소리는 아나로그에 가까워질뿐이며 절대로 완벽한 아나로그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디지탈이 아나로그보다 우위의 기술이며 더욱 완벽한 소리를 재현한다고 생각하며 착각속에 살고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이 된다.


    나는 일찍 컴퓨터를 접했다. 1983년부터 1984년 까지 꼬박 1년을 경남공전(지금은 동서정보대)의 야간특별과정에 다니면서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나로그적으로 배웠다. 어떤 프로그램을 짤려면 우선은 플로우차트라는 순서도를 그리고 코볼이나 포트란으로 코딩용지에 프로그램 언어를 순서대로 적어넣고 그 용지를 키펀치실에 갖다주면 순서대로 이쁜 아가씨가 키펀치를 해주는데 노랗고 구멍이 뚫린 적게는 몇십장부터 많게는 몇백장에 이르는 키펀치용지를 가지고 이번에는 오프레이터실에 가져가면 그때 최신의 기종이였던 일제 FACOM에다 넣고 전원을 넣으면 드럼인쇄기 돌아가면서 출력물을 쏟아내곤 했었다. 그후 일년이 지나서 애플컴퓨터를 빼낀 홍익이라는 회사에서 베어2의 소유주가 되면서부터 여지껏 컴터를 끼고 살았으니 디지탈에 적응이 될만도 한데 아직도 적응이 안돼고 있는 셈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과연 아나로그인가? 아니면 디지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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