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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와 꽃들의 관계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6. 3. 7. 17:02

    오랫만에 잠시 사무실에 들렀다. 사무실에 들리는 행위가 잠시라 할정도로
    그동안 출장이 길었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2주정도 포항에서 살다시피 했다. 공사현장에서 자욱한 먼지와 둔탁한
    소음들과 싸우면서 때로는 나보다 몇살은 많아 보이는 인부에게 욕설도
    던지면서 그렇게 치열하게 보내고 잠시 그야말로 잠시 복귀했다.


    내일 다시 포항으로 가야만 한다. 아마 2주 정도는 더 그렇게 포항에서의
    치열한 몸부림을 쳐야만 될듯하다.


    그동안 주인없이 비워져 있던 책상에서 달력도 아직 2월에 머물러 있다.
    오전내 서류와 결재와 회의등으로 시달리다가 마침 조금의 틈을 비집고
    2월달이라는 해묵은 한달을 벗겨 낸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경칩이였구나.. 마침내 개구리들이 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며 겨울잠 자기전의 세상과 얼마나 세상이 달라졌는지 가늠한다는
    비로소 봄의 시작일 것이다.


    입춘이 지난 날은 사실 너무 춥다.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경칩에 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봄을 느낀다.
    회사는 꽤나 경치가 좋다.  지방도로 하나를 가운데 두고 낚시터와 회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서 점심때나 머리가 아플때는 언제던지 시원한 호수를
    볼수 있기 때문이다.


    2주전 출장을 떠나기 전만 하여도 호수는 낚시꾼들의 좌대를 반쯤 삼킨채로
    그렇게 얼어 있었다. 회사에서 출퇴근길의 입출구에 있는 자그마한 연밭도
    마찬가지로 얼어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보니 바람에 살랑이는
    물보라가 눈을 어지럽게 한다.
    낚시터에도 봄이 제대로 찾아 왔다. 호수는 낚시군의 좌대를 다시 토해놓고
    몇사람의 설레이는 태공들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그렇게 봄은 왔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그만큼 봄에는 온갖 꽃들이 여기저기 지천으로 핀다.
    꽃이 피지 않는 봄이란 봄으로서의 의미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말이다.
    봄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아름다운 꽃과 같이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말이다.


    오늘은 내 삶에 있어서 꽃이란 무었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마침 내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다듬어 놓았던 블로그의 사이트가 곧
    운영난으로 문을 닫는다고 해서 지금 다음네트로 옮기는 중인데 마침
    예전에 긁적거렸던 꽃 이야기가 있어서 다시 손도 볼겸 다듬기로 한다.


    나와 꽃들의 관계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관계"라는 것에 얽매이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묵은 관계에 대한 정리도 일상적인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있을 것이고 동물과의 관계도 있을 것이다.
    가만히 나의 여러가지 관계들을 생각해 보다가 마침 피어난 장미가 나와 꽃들이
    그동안 맺어온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관계라는 것이 항상 두가지로 구분이 되는 것인데 필경 좋은 관계도 있을것이고
    나쁜 관계도 있게 마련일 것이다.
    그렇게 선을 주욱 그어두고 정리를 해보니 내가 살아오면서 꽃들과 맺은 관계도
    그렇게 유난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진 것들과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의
    두가지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꽃들은 많다. 탱자꽃..진달래..아카시아..치자꽃..
    그리고 찔레꽃이 그 놈들이다.


    진달래 - 사실 봄에 먼저 피는 꽃으로 사람들은 매화가 봄꽃이다..아니다 동백이다
                 다투기도 하지만 나는 진달래가 피어야 비로소 봄이다라고 하고 싶다.
                 진달래가 필때에는 항상 두견새가 운다. 봄에는 바쁘다. 농사를 짓는..
                 아니 농사가 생명유지의 대부분을 차지할만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였던
                 나는 진달래가 피고 두견새가 울때가 일년중 가장 희망으로 차있을때다.
                 못자리에서 눈에 보이듯 자라는 볍씨는 늘 풍요로운 가을을 약속하는 듯
                 했고 학교를 파하고 논둑에 앉아서 염소 두어마리 옆에두고 희망에 부풀때
                 항상 두견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못사는 살림에 화전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지만 가끔씩 잔치집이 생겨
                 한끼 거저 얻어 먹을때는 진달래 꽃으로 치장된 화전이 얼마나 먹고 싶었
                 는지 모른다. 그래도 맛을 볼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눈으로만 맛보는 화전...그럴땐 마을뒤 산으로 가면 지천으로 내둘러 핀
                 진달래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한웅큼 훑어서 입에 넣고 씹을때의 달큼하고
                 조금은 아삭한~

     

    아카시아 - 음메~ 누렁황소 우는 어릴쩍 고향에 아카시아가 많았지..
                     우리동네에 예배당이 하나 있었어.
                     언덕위에 조그만 예배당이였지..일요일 10시쯤이면 뗑그랑 뗑그랑
                     종소리가 들리는 그런 예배당이 있었지.
                     그 예배당에 장로아저씨가 우리집에서 넷집 건너 적산가옥에서
                     양봉기구를 파는 양봉원을 하셨지.
                     가끔씩 벌의 날개..뒷다리...심지어는 통째로 빠져있는 꿀을 한통씩
                     주시기도 했었지.
                     지금처럼 아카시아가 잘 피어서 꿀농사가 잘되면 말이야.
                     그 집앞 지날때마다 채밀기구..꿀벌통..유리병등을 사러 오는 사람들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었지.


                     우리 동네에서 테레비 제일 먼저 들어온 목수집에 방두칸짜리 별채에
                     세들어 사는 영순네도 꿀벌을 쳤었지.
                     아줌마가 춤바람으로 도망을 가면서 넘겨진 빵구난 곗돈에 시달리던
                     아저씨가 양봉원 장로님따라 교회나가면서 영순이 아버지도 양봉을 했어.
                     이 즈음에는 나보다 두살이나 어리던 영순이는 동생둘을 돌보느라
                     학교도 자주 빼먹곤 했지.
                     아카시아 꽃이 필락 말락하면 영순이 눈은 힘이 없이 사슴처럼 슬픔이
                     가득한 그런 눈이 되고는 했지.
                     아카시아는 내 추억창고의 금빛나는 추억의 꽃이기에 좋은 것이야.


    치자꽃 -    할배제사가 있는 날에는 상에는 못올리지만 엄마가 정성을 들이는 것에
                     찌짐(부침개)이 있었지.
                     상에 올리는 것에도 고구마 튀김이 있었지.
                     밀가루에 치자를 풀어서 노란 밀가루 반죽을 멀겋게 만들고 고구마를
                     담구었다 솥단지 뚜껑위로 처억~ 얹어면 치지직~ 소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막을 냄새로 자극을 하고는 했지.
                     일년에 몇번 있는 날... 치자가 밀가루에 풀리는 이런 날은 멀리 떨어져
                     살던 친척들도 와서 몇푼의 돈을 주기도 하고 메리야스를 사다가 주기도
                     해서 늘 머리속에는 1년 열두달 치자가 풀리기를 바라기만 했었지.
                     치자는 소리만으로도 배가 절로 불러지는 요술같은 것이였어.
                     그래서 그 치자를 열리게 하는 치자꽃이 좋은지 몰라.


    찔레꽃 -    나는 어릴적에 너마지기 논을 지켰어.
                    우리 아버지는 밀가루 공장에 주야 맞교대로 나가셨고 삼십리 먼 산길을
                    걸어서 나무를 해와야 하는 것은 우리 엄마의 몫이였지.
                    모를 심을때 쯤의 밤에는 개구리들 개굴 개굴 울어대는 철이기도 하지.
                    그때는 물 인심이 흉했어..물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였지.
                    서로 정해진 시간에 물을 못되면 별수 없이 모가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돌아올 차례를 기다릴 수 밖에는 없었지.


                    학교 파하고 마루에 책가방을 던져두고 논으로 냅다 달려야 했지.
                    우리 논에 물을 대는데 주인이 없어면 슬쩍 물길을 돌려 놓기도 하는 것이
                    그때의 인심이라 어쩔 수 없이 둑에 앉아서 물꼬를 지켜야 했어.
                    물꼬는 우리 일곱식구의 생명을 책임지는 막중하고도 중요한 것이였거던.
                    5월의 햇살은 한여름 뙤약보다 훨씬 그 강도가 세기도 해서 둑에 앉아 있으면
                    바람 살랑여 불어서 견딜만 하기도 하지만 정수리에 내려 꽃히는 햇살은
                    그야말로 흉기가 따로 없어.


                    우리 논에 찔레꽃이 한 무더기 있었어. 한 성질 하던 우리 엄마도 밀양외가의
                    생각이 나던지 그 찔레만은 손대지 않으셨지.
                    그 찔레꽃 무더기가 만드는 손바닥 만한 그늘에 얼굴을 들이 밀고 누우면
                    찔레꽃 향기에 취해 가끔은 깜빡 잠이 들고는 했지.
                    그래도 무료하고 배가 슬슬 고파질라 치면 찔레꽃 한웅큼 따다가 한잎씩 물고
                    씹기도 했었지..
                    깜빡 잠 들었다 언뜻 눈뜨면 눈앞에 유난히 빛나보이던 하얀색의 찔레꽃...
                    그래서 나는 찔레꽃을 좋아 하지..

     

    탱자꽃 -  내가 어릴때 동네 사람들은 나를 "탱자나뭇집 큰아들"로 불렀다.
                   집뒤의 담이 몇십년은 족히 된 탱자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탱자나무는 우리집
                   보다 훨씬 높은 길과 면해서 울타리로 쓰였다.
                   오줌도 똥도 귀하게 쓰이던 그때..까만 고무로 된 바께스 하나가 탱자나무
                   담아래 놓기고 오줌만 따로 모았다.
                   오줌을 눌때는 항상 탱자나무가 신경이 쓰였다. 탱자나무의 저쪽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길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줌을 눌때마다 늘 탱자나무를 올려보면서 누었지...


                   하얀 탱자꽃들이 파아란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같았다.
                   한번도...한송이도 진짜로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지만 올려보고 있으면 입속으로
                   저절로 침이 고였다.
                   하얀 저꽃들이 지고 나면 조그만 열매가 맺으리라..그리고는 여름내 햇살의
                   보호를 받으며 알을 굵게 만들다 마침내 노랗게 익으리라.


                   잘익은 탱자를 보록쿠담에 대고 살살 문지르면 얇아진 속살을 뚫고 새콤하고
                   달작한 과즙이 나와서 내 혀를 자극해 주리라..


    내 기억에 늘 슬프거나 예쁘지 않은 꽃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장미를 싫어 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장미가 싫다..그 진한 원색이 싫고 그 누린내같은 냄새가 싫다.
    나와 장미 사이에는 서로 싫어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장미 -    나는 장미를 좋아하지 않아. 사랑의 선물이 어떻고 해서 가끔씩 사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장미에게는 마음이 열리지 않아.
                 어릴쩍...중학교에 다니면서 서면에서 초읍이라는 동네까지 하야리야 부대담을
                 타고 걷다가 양공줏집 대문옆 쓰레기통을 뒤지면 포르노 잡지와 책들을 가끔은
                 구할 수 있었지.


                 학교에서 한장씩 넘길때마다 왁자한 소리들이 바글바글 끓고는 했지.
                 칼로 제본부분을 곱게 그어서 한장씩 떼어내면 그나마 하교길의 아이스케키 값은
                 되기도 했지.
                 내가 가진 미인의 기준이 내셔날리스트를 자처하는 나 답지 않게도 ....이국의
                 그녀들에 맞추어여 있음은 아니러니하기는 하지만 이때에 고착이 된 것일거야.
                 그 보다 더 어린 시절에 구포에는 코쟁이 양키들이 유난히 자주 보이곤 했지.
                 나중에 다 자라서 김해공군비행장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암튼지간에
                 양코백이들이 제법 많았어.


                  우리는 그들이 보이기만 하면 떼로 줄줄 몰려 다니며 "헤이~ 헤이~"....
                  "기브미 츄잉껌~ 기브미..."..."뿌리서~ 뿌리서~(플리스를 그렇게 발음했던듯)..
                   하면서 따라 다녔는데 가끔 운좋게 마음좋은 사람을 만나면 영어로 쓰여진 껌이나
                   초코렛을 얻기도 했어.
                   한번은 나보고 가까히 오라고 손짓을 해서 최소한 초콜렛이다 하고 쭐레 쭐레
                  앞에 섰더니 냅다 꿀밤을 주는 것이다.
                  초콜렛 대신에 "깟뎀!" 이라는 고함과 누런내를 섞어서 한바가지 퍼붓는 것이다.
                 장미에서는 그 미국놈 냄새가 역하게 나서 싫다.

     

    동백꽃 -  동백꽃은 우리 할매를 생각나게 만들어.
                   우리 할매는 일제때 할아버지를 여의셨지. 돈벌러 간가도 아들둘만 남겨두고
                   일본으로 가신 것이지.
                   돌아 오시긴 하셨지. 하얀 광목에 쌓인 자그만 상자에 담겨 그렇게 돌아 오신거야
                   혼자서 두아이 키우기가 힘이 드셨던 할매는 큰집에 큰아들을 맡기고 작은아들을
                   데리고 재가를 하신게야..


                   나중에 다시 돌아 오셨을때는 아들하나 딸 하나를 늘려 오셨지.
                   큰집에 맡겨져서 양육은 커녕 머슴처럼 부림을 당하면서 설움이 뼈속까지 스며진
                   아버지는 할매가 돌아가실때까지 화해를 못하셨지.


                   할매는 아침이면 항상 일어나 면경을 앞에 두고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랐어.
                   엄마의 배려로 나는 자주 할매한테 보내졌고 장손인 나를 할매는 가끔 데불고
                   같이 잔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기도 하셨지.
                   눈이라도 올라치면 할매는 연탄재를 마당 곳곳에 부셔 흩어놓으시는 거야
                   손자 미끄러지지 말라고...


                   할매가 세상을 버리고 십년도 더 흘러버린 추석쯤에 할매산소에 간 날..
                   낫이 들어 있으리라 짐작했던 아버지의 등산 배낭에서 조그마한 나무 한그루가
                   나왔어...동백나무...아버지는 그렇게 동백나무 한그루로 화해흫 하신거야.


                   동백꽃은 늘 우리 할매가 생각나게 하는 꽃이야.
                   그래서 동백꽃은 나에게는 늘 애잔한 슬픔을 주는 그런 꽃이지

     

    살아가면서 좋은 관계던 나쁜 관계던 정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좋은 관계라면 좀더 좋은 관계로 남도록 다짐을 해야만 하고 나쁜관계는 그것대로 나빠진
    연원을 따지고 찾아서 좋은 관계로 고쳐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도 모르겠다. 언제쯤이나 나도 장미와의 관계를 좋은쪽으로 회복하게 될런지....


    이제 봄이지...꽃들이 온통 피어서 색으로 향으로 몸부림을 치겠지.
    나도 따라 덩달아 봄에 취해 어질 어질해져서 다리가 후들이겠지..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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