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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破格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6. 4. 23. 11:41

    사랑과 破格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감정에 대한 정의가 과연 가능할까?

    부부간의 사랑은 과연 양쪽이 다 같은 강도로 아니면 같은 색깔로 같은 깊이로

    그렇게 측량할 수 있을까?

     


    연애를 할 때나 결혼초와는 달리 아이들이 생기고 커가면서 요즈음에는 사랑의

    표현도 마음대로 하지못한다는 것은 사랑이 사회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사회의

    규범에 얽매여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팔장을 어깨를 감싸안고 거리를 걸어볼 용기조차도 없다.

    젊은 시절에 아무데서나 존재하던 그런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 이제는 안방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결국 사랑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말로 표현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가식이다.

    말이던 글이던 한계를 가지고 있고 아직 인류사회에서 사랑을 명쾌하게 정의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부간이던 연인간이던 부모와 자식간이던 간에 사랑의 종류도 많지만

    인간의 질량개념으로는 도저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규범을 탈피하는 것을 우리는 `파격(破格)`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규범이나 관습이 바뀌면 그 파격이 당당한 선구가 되기도

    하는 것에서 우리는 파격을 보는 재미가 있다.

     


    십수년전에 글을 쓰는 소위 지식인이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의 돌을 사회에 던져서

    일파 만파의 파장을 일으켰지만 요즈음은 어떤가? 지방대학 부근에서는 남녀학생

    끼리 만나서 서로의 유불리(有不利)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계약동거가 보편화되어

    있단다.

    이렇듯이 사회는 자꾸 변한다. 잠자기 전에는 파란색의 이 세상이 자고 나면 이미

    빨강색으로 반쯤 변해 있다. 파란색에 익숙한 사람은 이게 생경스럽다.

     


    빨강색으로 갈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자꾸만 좁아지는 파란색의 그곳에서 안주

    하려고 무진 기를 쓴다. 그러면 빨간색에서는 "기성세대"로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결국에는 빨강색에 덮혀 버려서 흔적도 없어 졌는데도 결국

    파란색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월을 삭혀간다.

     


    파격에 익숙해 지는 것... 내일 아침에 또 바뀌게 될 새로운 색깔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결국에 살아남는 것이다.

     


    며칠전에는 두어달을 별러오던 미장원을 갔다.  늘 이발소에서만 이발을 하던 습관으로

    그것도 혼자서 갈 용기가 없어서 와이프와 함께 가서 여자들 틈에서 머리를 자르고

    거기다가 염색을 했다.

    진한 갈색으로 염색을 하라는 와이프와 미용사의 간곡한 부탁에 마음이 흔들리다가

    그냥 흑색으로 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와 닿게될 관심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도 없고 무었보다

    파격을 저지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기사 요즈음은 거리에 나가보면 파격의 페스티발이다. 고향가서 아버님앞에서

    귀밑머리의 민망함을 감추려고 염색이나 하는 세대인 나의 눈으로 보면 분명히

    파격인 것들이 거리에는 넘쳐난다.

     


    결국에는 40의 중반을 넘긴 남자의 노랑머리 염색이 이미 파격이 아닌 평상적인

    세상에 내가 버려져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애써 부정하고 싶을 뿐~

     


    오늘 아침 출근해서 잠깐 조선왕조실록의 씨디를 검색하다보니 파격은 그곳에도

    있었다.

    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은 조선왕조의 인물중에서 최고의 파격적인 인물이다.

    남자와 여자가 옷깃만 스쳐도 가문의 수치로 여겨서 목을 매고 은장도로 가슴을

    스스로 찔러서 여자로 태어난 한을 홍살문위에 걸어서 바람으로 삭히는 세상에서

    왕세자로서 보장된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양녕의 파격이야말로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태종 12년 야자악사인 여악(女樂)을 동궁에 불러들여 밤새 풍악을 울리며 놀아서

    태종의 미움을 받기도 했고, 태종 14년에는 밤에 자신의 장인인 김한로의 말(馬)을

    끌어내 창기(娼妓)를 불러 들이는가 하면 같은해 10월에는 부마(駙馬)였던 청평군

    이백강의 집에서 연회를 하며 밤새도록 기생을 끼고 공주의 대청마루에 들어가

    술을 마셔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관습쯤이야 안중에도 없던 그였으니 그 당시의 인물로는 파격이 아닐수 없다.

    오늘 아침에는 참으로 대단한 파격을 하나 알았다.


     

    저녁에 퇴근하면 아이들 앞에서 서스럼없이 와이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겠다.

    그리고 다음달에는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가장 최근에 유행하는 노래도 배우고

    휴대폰에다 포켓몬 스티커도 하나 구해서 붙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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