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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의 3대 보물
    여행기 2006. 4. 21. 13:02

    백제의 삼대보물


    그동안 찍어서 아무렇게나 저장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보니 백제를 상징할수 있는
    보물 세가지가 모두 한 디렉토리안에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백제와 가야는 미궁속에 빠져있는 문화라고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 이유는 무었일까하거 곰곰히 생각해보니 신라와 고구려와는 달리 백제와 가야는
    나라가 망하면서 지식적..권력적..기술적..학문적인 면에서 앞선 사람들..즉 주류들이
    모두 일본으로 이주를 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식의 공백을 메꿀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생각해본다.

     

     

     

    먼저 백제금동대향로이다.
    부여박물관에서 사진촬영금지임에도 후레쉬를 켜지 않고 찍었다.
    사실 오래된 문화재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이유가 후레쉬 불빛 때문인데 요즈음은
    디지탈 카메라 성능이 좋아져서 의미는 없어 보인다.


    부여박물관 사이트에서 퍼온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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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보 287호이며 백제금동대향로는 높이 61.8cm, 몸통 최대지름 19cm,
    무게 11.85kg으로 규모면에서 다른 박산향로와 비교할 수 없는 대작이다.
    향로는 뚜껑과 몸체, 다리로 각각 따로 구리합금으로 주조되어 하나로 만들어 금으로
    도금되었다.
    뚜껑은 정상부에 봉황이 턱밑에 여의주(如意珠)를 끼고 있고, 그 아래로 다섯 악사와 봉황,
    인면조신상, 인면수신상 등 상상의 동물과 현실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코끼리.멧돼지.
    사슴 등 모두 42마리의 짐승과 5인의 악사를 비롯한 17명의 인물이 74곳의 봉우리와 그
    사이 사이에 돋을새김 되어 있다.
    이 밖에도 6종류의 식물, 20군데의 바위, 산 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입체적으로 돌출되어 낙하하는 폭포 등이 보이고 있다.


    한편 뚜껑에 뚫린 연기구멍은 봉황의 가슴 윗부분에 연기가 나올 수 있도록 뚫은 2개의
    작은 구멍과 함께 다섯 마리의 새가 앉은 산봉우리 뒤쪽에 5개, 다섯 악사 앞에 솟은
    산봉우리 뒤쪽에 5개를 둥글게 돌아가며 배치하였는데, 봉황의 가슴에 뚫린 2개를
    제외하고는 솟아오른 뒤편에 가려져 정면에서는 구멍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반원형의 대접 모양을 한 몸체는 3단의 연꽃잎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연꽃잎은
    그 끝이 살짝 반전되었으며 잎의 끝부분을 사선문으로 음각하여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훨씬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층을 이룬 연꽃잎은 몸체의 굴곡과 비례를 이루도록 윗단의 폭이 가장 넓고 아래로
    가면서 점차 줄어드는데 제일 하단의 연꽃잎에는 2줄의 음각선을 복엽으로 묘사하였다.
    윗단과 그 아랫단 연꽃잎 외면과 윗단의 연꽃잎 사이의 여백에는 27마리의 짐승과
    2명의 사람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받침은 한 다리를 생동감 있게 치켜들고 있는 용이 활짝 핀 연꽃봉
    오리를 입으로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받침에 표현된 용은 승천하는 듯한 격동적인 자세로 굴곡진 몸체의 뒤와 그 곳에서
    뻗어 나온 구름모양의 갈기를 투각 장식되어 있으며, 구름모양과 다리 사이에 6엽의
    연꽃무늬도 나타내었는데, 용의 세 다리와 구름모양이 원형을 이루게 구성하여 안정감
    있는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용의 정수리에서 솟아 오른 뿔은 두 갈래로 갈라져 목 뒤까지 길게 뻗어 있고 길게
    찢어진 입안으로 날카로운 이빨까지 세밀히 묘사되었다. 용의 입안에 물려진 짧은
    기둥은 향로 몸체의 하부 받침과 연결시켰다. 이처럼 용의 입과 연결되도록 물고
    있는 모티브는 신라의 금관총 출토 초두 등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용이 입에 물고 있는 기둥의 위로는 향로 받침과 몸체를 연결시키기 위한 기둥이
    이어져 있고, 이 기둥은 몸체의 둥근 안쪽면에서 약간 솟아 올라 그 끝에 별도의
    고리를 끼워 고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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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지도는 요즘 일본에서 실물을 공개하여 더욱 알려지고 있다.
    신라는 신분의 특별한 표시로 환두대도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일정한 지역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에게는 모자에 쓰는 관을 금으로 또는 날개의 숫자등으로 구분을 했다고 한다.
    칠지도는 그런면에서 일본은 백제가 경영한 또 다른 백제영토라는 것을 알려준다.

    야후백과사전에서 칠지도에 대한 글을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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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74.9cm. 일본 나라현[奈良縣] 덴리시[天理市]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에
    소장되어 있다. 곧은 칼의 몸 좌우로 가지 모양의 칼이 각각 3개씩 나와 있어 모두
    7개의 칼날을 이루고 있으므로 칠지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국에는 이에 관한 문헌기록이나 실물이 없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기(神功記)
    에 "백제가 일본에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단철(鍛鐵)로 만든 양날 칼로, 칼몸[刀身]의 앞뒷면에는 61자(字)가 금상감(金象嵌)되어
    있다. 이 칼이 오랫동안 비장되어오다가 최초로 공개된 것은 1874년 이소노카미신궁의
     대궁사(大宮司) 간마사도모[菅政友]가 명문을 판독하여 발표하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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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모방할수 없는 살아있는 미소로 유명한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
    을 소개한다.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84호)은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보원사지입구 좌측 가야산록의
    고란사 왼쪽에 있는 큰 바위 동남면에 조각되어 있다.
    특히 이 불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미소짓는 모습이 각기 달라서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애삼존불은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 볼 수 있으며 특히 빛을 받을 때만
    가슴에 와 닿는 미소를 대할 수 있어 자연조명과의 조화에 의한 진가를 보이도록 한 백제인의
    슬기가 돋보인다.


    연화대위에 서있는 당당한 체구의 여래상은 머리 뒤의 보주 미간의 백호공, 초생달 같은 눈썹,
    우뚝 솟은 코에 미소 짓는 그 입술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친근감을 자아 내게 한다.


    두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양팔에 걸쳐 평행호선으로 주름져 있어 입체감을 느끼게 하며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 마애 삼존불은 6세기 중엽 , 백제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백제
    불상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중앙에 석가여래입상, 오른쪽에 반가사유상, 특히 반원형의 눈썹, 은행모양으로 뜬 눈,
    얇고 넓은 코, 반쯤 벌린 입 등 전체 얼굴 윤곽이 둥굴고 풍만해 백제 특유의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머리에 높은 3삼관을 쓰고 그 좌우에 장식을 두리웠다. 얼굴모양이
    본존에 비해 약간 긴편이며 미소를 띠고 있는데 실눈에 원반형의 입을 약간 벌리고 있다.
    목에는 짧은 목걸이를 걸었고 두 손은 가슴앞에서 오른손을 위로 한 채 보주를 잡고 있다.
    상체는 벗은 상태이고 발밑에는 이중의 복련을 양각한 좌대가 있으며 머리 뒤에는
    보주형의 광배가 있는데 원안에 연꽃 장식만 있을 뿐 불꽃 무늬는 없다.


    왼쪽의 반가상은 통례에서 벗어난 배치로써 팔부분이 크게 파손됐으나 원형 파악은 가능하다.
    벗은 상반신에는 목에 간단한 목걸이가 있을 뿐이다.
    머리에는 높은 관을 썼고 여래나 보살에 비해 목이 긴 편이다. 왼발을 늘어 드리고 오른 발은
    왼쪽무릎 위에 얹었으며 왼 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 광배는 우협시보살과 같은 형태이다.
    마애삼존불은 양식상의 이례적인 작품으로 중국 남북조 말기인 제주양식을 강하게 느낄 수
    있으며 서해안에 가까운 지리적 조건은 마애불을 전래과정을 살피는데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 육계와 소발 그리고 뜨고 있는 두 눈이 금동불과 다른점.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많은
    마애 삼존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주변은 산세가 험할 뿐만 아니라 각종 수목이 우거지고 습도가 높은 토양이며 대부분
    암석으로 형성되어 바위틈에서 붙어 자생하는 고란초를 볼 수 있다.
    이로인해 마애삼존불 를 보호키위해 설치한 보호각을 고란각이라고 부른다.
    고란초는 고사리과에 속하는 식물로 절벽 바위 틈에 나는 상록 양치 식물이며 자갈색의
    선형인편에 싸인 뿌리가 옆으로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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