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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여우비>- 2023봄 목포
    삼행詩 2023. 4. 10. 22:34

    삼행시 <여우비>- 2023봄 목포

     

    -목포로 가는 길

    여명의 틈을 갈라 그은 금이 남쪽이다

    우듬지 끝마다 조롱박처럼 매달린 봄

    비구름 잠깐 머물다 이내 떠난 하늘

     

    여러 해 가늠하다 떠난 봄나들이 길

    우수수 떨어지는 겨울의 비늘들

    비로소 봄은 여기로 그리고 저기로...

     

    -보리싹 홍어애국

    여독旅毒을 녹여내는 보리싹 홍어애국

    우그러진 냄비에 세월도 함께 끓어

    비지땀 방울마다에 씻기 우는 세상의 티끌

     

    -유달산은 봄에 젖어

    여풍麗風이 몹시 불어 파도 타던 케이블카

    우수와 경칩사이 방황하는 노적봉

    비우고 또 비워내도

    살이 차오르는 두견이울음

     

    -고하도

    여트막한 산 너머로 점점이 찍힌 섬들

    우수영 수군들 숨 고르며 머문 고하도

    비색의 하늘로 솟은 열세 척 판옥선 카페

     

    **여풍麗風: 팔풍八風의 하나로 '북서풍'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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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랫만에 남녘 나들이를 했다. 그동안 코로나의 여파로 국내 여행도 여의치 않았던 탓에 마음만 있을 뿐 실제 여행을 떠나는게 마땅하지 않았다.

     

    2주에 한번 찾아오는 휴무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 아내에게 먹고 싶은 것 없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돌아온 답이 보리싹을 넣은 홍어애국이란다. 벌써 십오륙 년 전에 회사일로 목포 출장에서 보리싹을 넣은 홍어애국이 참 별미였다는 자랑이 아내의 가슴속에 발효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나 보다.

     

    붉그스레한 여명을 받으며 남쪽으로 길을 잡아 나섰다.

     

    꽃이 피는 건 마치 디지털의 느낌이다. 경계가 분명하다. 아산에서 출발할 때는 간간히 길가의 매화 몇 그루가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군산을 지날때는 마치 튀밥이 튀듯이 목련, 생강나무, 산수유, 벚나무들이 한꺼번에 피우고 있었다. 예년에는 목련이 피고나면 그 다음에 산수유가 피고, 벚꽃이 그 다음에 피어나는 어느 정도 순서가 있었는데 올해는 순서없이 한꺼번에 화르륵 산불처럼 피었다.

     

    올해는 또 유난히 산불소식도 많다. 마치 지금의 대통령이 인기가 떨어지니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공작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중에도 물통을 매단 헬리콥터가 간간히 보였다. 그래도 남으로 갈수록 봄의 진한 물감에 스스로가 스며 드는듯 했다. 지금의 나는 무슨 색으로 채색되었을까 생각해보다가 부질없는 생각에 스스로가 놀라서 피식 웃었다. 옆에 있는 아내가 왜 웃냐고 했지만 '그냥~'이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목포 어시장 부근에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았다. 십몇 년 전에 먹어 보았던 홍어애국과 달랐다. 그때는 발효되지 않은 홍어애와 보리싹으로 만든 것이었고 이름도 홍어앳국이었지만 목포사람들의 소울푸드라는 홍어애탕은 발효가 제대로된 홍어애를 사용하여 입속에 들어가자말자 코를 톡쏘는 정도가 대단했다. 주인의 설명에 의하면 목포사람들은 기운이 딸릴때면 찾는게 홍어애탕이라고 했다. 택배도 한다고 했지만 이런 별미는 그저 한 번 맛있게 먹는걸로 만족하는게 좋을 듯 싶다. 오로지 홍어애탕 한 그릇을 먹기위해 충청도에서 달려온 길이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 여기저기 찌그러진 냄비에 담겨 나온 홍어애탕 한 그릇에 세파에 찌든 때들이 두 겹은 벗겨지는 것 같다.

     

    홍어애탕집 주인으로부터 추천받은 대로 해상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북항에서 유달산을 끼고 넘어 고하도까지 운행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라고 한다. 제법 긴줄을 선끝에 탄 케이블카는 마침 겨울의 마지막 패잔병같은 북풍이 거세게 불었다. 케이블카는 연신 공중에서 파도를 탔다. 케이블카의 창으로 넘겨보는 유달산은 봄색으로 한창 채색중이었다. 산속에 있는 가정집 정원의 매화들도 꽃을 피웠고 몇 그루 벚나무도 하얗게 탈색중이고 목련은 이미 농익어 낙화의 순간에 있다. 노적봉 주변으로는 하늘이 청자빛 병풍을 둘러치고 있다. 하늘에서 보는 유달산에는 산책로들이 마치 혈관처럼 산을 온통 휘돌고 있다.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봄은 이미 와있는듯 하다.

     

    <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목포 해상케이블카 ... 바람이 몹씨 불어 너눌너울 파도를 타는 것 같았다 .>

     

    유달산을 빙 둘러 움직이던 케이블카는 산능성을 넘자말자 푸른 바다를 건넌다. 바람은 더욱 거세져서 케이블카는 마치 절간의 풍경처럼 흔들렸다. 그렇게 닿은 곳이 고하도였다. 고하도는 옛이름이 보화도 이다. 유달산과 이웃하고 있는 이곳은 이순신 함대가 13척의 판옥선을 끌고 106일간 머물며 군세를 정비했던 곳이다. 우리 역사상 최대의 패전인 칠천량에서 역사상 최악의 졸장拙將인 원균이 조선해군을 모두 수장시킨후, 다시 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배로 명량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승리로 매듭지었으나 불안했다. 겨우 13척의 판옥선으로는 만에 하나 왜군들이 복수전에 나설 경우를 우려해 이순신함대는 북행을 결정한다. 고하도(보화도)를 살펴본 장군은 이곳에서 군량미를 마련하고 군사를 훈련하면서 전력을 키웠다. 특히 판옥선의 운행에서 노꾼들은 오랜 기간 훈련이 필요했다. 명량해전때만 하더라도 급조한 전력이라 불안함을 안고 있었다. 106일 동안 이곳에서 머물던 이순신함대는 그후 군산앞 바다인 고군산 군도까지 올라와서 판옥선을 새로 건조하는등 군비를 증강하고 보완한 후 다시 남행을 한다. 왜적들은 전라남도의 바다가 비었음에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판옥선&nbsp;13척을 형상화한 전망대다.&nbsp;전망대에서 유달산 노적봉이 눈앞에 보인다. 1층에 있는 카페의 커피맛도 경치도 일품~~>

     

    고하도의 가장 높은 언덕, 유달산의 노적봉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목재로 조선 판옥선 13척을 형상화한 멋진 건물이 있다. 1층에는 카페가 있는데 커피맛도 경치도 참 좋았다.

     

    여행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오랫만의 남녘 여행은 더욱 알차게 보냈다는 느낌의 여운이 오래갔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우리의 삶이 여행같아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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