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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금메달>-어느 하루
    삼행詩 2023. 2. 10. 16:49

    삼행시 <금메달>-어느 하루

     

    금 간 한 주 이어 붙이려 찾아간 책방

    메모지 한 권 놓고 호작好作질에 빠지다

    달달한 라테 한잔에 메꾸어진 몇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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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가 갑자기 바빠졌다. 월급쟁이에게 회사의 바쁨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스트레스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적당한 게 가장 좋은 법이다. 석가모니가 말씀하셨다. 무릇 수행이란 거문고의 줄처럼 너무 조여도 너무 풀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라고...

     

    중도(中途)를 지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에 심리학을 배울 때 첫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였다. 상담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첫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다. 세상을 다 산 것은 아니지만 살아갈 여정보다 살아온 여정이 더 길어진 지금에는 확연히 이해가 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기준이 있기에 과연 어느 정도가 중도일까가 나 자신도 궁금하다. 나는 중도라고 하여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쪽으로 치우쳤다거나 저쪽으로 치우쳤다거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쩌면 기준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삶이란 게 결국 기준선 위를 위태롭게 걷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매 순간 이 기준선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돋보기가 나에게는 시심마(是甚麽)’라는 화두이다. 슬그머니 선을 벗어났다가는 이뭣고...시심마(是甚麽)’를 외치며 기준선으로 돌아온다. 젊은 시절 수계를 받으면서 받은 화두인데 40년째 잡고 있어도 풀리지 않는 매듭이다. 사바에 살면서 나를 닦는다는 것이 이리 어렵다.

     

    두어달전 끼어들기 하던 차에 쌍욕을 퍼부은후 내 자신에 대한 채찍질로 화두 '是甚麽'를 작은 나무에 새겨 운전대에 붙였다. 나와의 경계에 있는 것들에 자비심을 갖자는 경책이다.

    몇 주를 힘에 부치게 일을 했더니 몸도 마음도 곰삭은 김치 같다. 왠지 내 삶에서 묵은내가 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고 책방 나들이를 갔다. 힘이 들 때 내가 정신적 충전을 하는 곳이 요즈음은 서점이다. 늘 자가용만 타고 다닌 터라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모른다.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사고 만원을 충전해서 사용하니 정확한 시내버스비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책방에서 호작질하는 재미...

     

    요즈음 마음이 평정하지 못하니 자연히 莊子장자의 책에 눈이 갔다. ‘오십에 읽는 장자를 골라 들었다. 이미 육십을 중간쯤 넘긴 육신이지만 마음만은 이제 오십의 문턱에 서있다 생각하기로 했다. 농익다 못해 발효가 제대로 된 나이쯤에 읽을만한 책이 장자莊子만 한 게 없다 싶다. 고른 책을 들고 책방 안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까페라테 한잔을 시켰다. 주로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편인데 7년 전쯤 전에 바리스타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딸 때 고생하던 생각이 불현듯 나서였다. 혼미한 세상이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가 꾸는 꿈속의 존재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데 이런 요즘의 심리상태에 딱 맞는 책이다. 우선 여기서는 덮어두자 싶어 카페라테를 기다리는 동안 서가에서 김용옥 교수가 쓴 용담유사를 들고 왔다.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고 그 종교마다 성전이 있지만 대부분 제자들이 후일 기록한 것들이다. 그러나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는 용담유사를 직접 집필했다. 한 종교의 창시자가 직접 기술한 것은 처음일 것이다. 달달하고 향긋하며 고소한 라테가 목젖을 간지럽히며 넘어가는 것을 즐기며 한참을 책에 빠졌었다. 우선 사기로 마음먹었던 오십에 읽는 장자는 집에 가서 읽기로 하고 용담유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가야 할 시간쯤에는 두터운 책의 삼분지 일쯤 읽었다. 살까 말까를 한참을 망설인 끝에 도로 서가에 내려놓았다.

     

    책방 이름이 크게 찍힌 종이 백에 몇 권의 책을 넣고 거리로 나오니 가슴이 저절로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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