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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금메달> – 부여 잡힌 추억
    삼행詩 2023. 2. 1. 22:02

    금빛으로 채색된 시간의 패러독스

    메마른 추억의 아련한 되새김질

    달구리 찬바람 스쳐 놓지못한 밤을 접다

     

    **달구리: 새벽에 닭이 울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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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눈송이가 제법 큰지 간간히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자연이 보내는 소식 같다. 저녁이지만 사과 한 개를 깎고 커피를 한잔 탔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방에서 한껏 멋을 부린 시간이다. 시간도 치장을 하면 할수록 풍성하다.

     

    창문을 한 뼘쯤 열고 한줄기 찬 바람과 더불어 마시는 커피가 유난히 싱그럽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방안을 마구 떠다니다가 침잠하고 그중 몇 개는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다. 하루 전에 동료가 모친상을 당해 들린 상가가 서울 한양대장례식장이다. 그곳으로 가려면 성수동을 지나는데 그곳은 20대 초반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젊은 시절 성수동 부근 뚝섬이라는 곳에서 근무했었다. 은행에서 동전을 세는 기계를 만드는 중소기업이었는데 같은 해 공고를 졸업한 전국의 친구들이 8명이나 되었다. 동갑내기가 여덟이나 되니 하루하루 왁자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친구 중 하나가 군대를 가게 되어 거하게 파티를 했는데 공단지역임에도 누군가가 신고를 해서 모두 파출소로 연행되어 평생 처음으로 유치장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기도 했고, 자전거를 배운 적이 없는데도 하이킹을 간다고 하니 지기 싫어서 나도 간다고 하고 그날 밤 회사 앞 가게에서 빌린 짐 자전거로 새벽 4시까지 공장 마당을 돌고 돌며 배웠던 일, 첫 사이클 자전거에 적응 못해 양수리 내리막 절벽에서 떨어진 일들이 흑백 필름의 프레임처럼 흘렀다.

     

    그때 나는 설계를 담당했는데 자재창고를 개조한 설계실 겸 사무실에는 공장장과 나, 그리고 경리 이양 세 명이 근무를 했다. 사무실 위치가 창고 안쪽이다 보니 바깥에서 문고리를 잠그면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였다. 경리 이양은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짓궂은 친구들이 공장장이 외출하고 둘만 있는데 밖에서 문을 잠그고는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두는 바람에 서로 얼굴만 벌게져서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포르노 카세트테이프이었다. 거의 두 시간 동안 갇혀서 강제로 들어야 했지만 피 끓는 청춘남녀가 방에 갇혀서 강제로 들어야 했으니 그 민망함은 그 후 퇴사 때까지 거의 2년 동안 미스리와는 오히려 서먹하게 지냈다. 친구들은 그때 둘을 엮어주려 했던 것 같은데 남녀의 인연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결국 얽어지지 못했다.

     

    그때 같이 근무했던 공장장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21살 때 그분은 오십이 넘었으니 아버지 같았던 분이었다. 공군 대위 출신으로 기숙사 사감을 겸했던 그분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처음 하는 일이 다디단 아침잠을 소거하는 역할이었다. 이분이 우리의 아침잠을 압수하는 방법이 좀 특이한데 양은대야를 시멘트 바닥에 엎어서 대고는 죽 긁으면 끼익~~’하는 소리에 모두가 무장해제 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해 계시다면 아마도 100세에 가까울 터이다.

     

    오랜만에 추억이 어렸던 곳을 다녀온 터라 새록새록 옛 생각들이 두서없이 뒤섞였다가 비눗방울 터지듯 사라져 간다. 그러저러한 단상들이 떠도는 사이에 벌써 새벽이 왔다. 시계를 보니 두어 시간의 아침잠이 자투리 헝겊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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