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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상사화>- 불갑사 업경대
    삼행詩 2023. 2. 26. 13:28

    삼행시<상사화>- 불갑사 업경대

     

    상사화 늘어서 핀 개울길 끝난 곳

    사금파리 밟아 걸어온 내 삶을 비추어보니

    화공이 만들어 놓은 이승의 꽃 동네

     

    상화(霜花)를 보관처럼 머리에 이고서야

    사래질 티 고르듯 내 업을 골라보네

    화수분, 퍼고 퍼내도 끝없는 업보의 절벽 끝

     

    상두꾼 걸음 위에 실려가는 그날 되어

    사무사(思無邪)한 삶이기를 간절히 빌어 보다가

    화끈한 얼굴 숙이고 가만히 돌아 나왔네

     

    *사래질: 키로 곡식을 고르는 일

    *상화(霜花):서리를 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흰머리와 흰 수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무사(思無邪):마음이 올바르다. 마음에 조금도 그릇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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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종교의 관심사가 삶보다는 죽음 이후에 방점이 찍혀있다.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 여기', 자신의 깨달음을 표방하는 불교도 결국은 사후세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속성의 한계점이기도 하다.

     

    불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종교다. 과 보가 분명하다. 내가 지은 업이 기도하거나 수행한다고 없어지거나 감해지지 않는다. 업이상으로 가해지지도 않는다. 선업은 좋은 결과를 악업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불교의 인연법이다.

     

    윤회에서 죽고 태어나는 문제는 지엽적이다.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삶을 영위하는 순간순간이 육도윤회를 거듭한다. 정치인들의 싸움은 아수라의 세상이다. 이들은 보통의 인간보다 뛰어난 능럭을 가졌지만 시기하고 질투하는 본성이 커서 평생 싸우며 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수라와 인간를 오간다. 음심을 품을 그때 나는 축생에 거듭난 것이다. 세상이 진일보해서 어느 정도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기도 하는데,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다른 사람을 끌고 나락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잠시도 편할 날 없이 모두가 인간를 벗어나 헤매고 있는 중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이레(7)마다 명부세계를 주관하는 일곱왕들 앞에 나아가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해 재판을 받는다. 가장 많이 알려진 이가 '염라대왕'이다. '업경대業鏡臺'는 염라대왕이 가진 신물로 사람이 살아있을 때 지은 업을 이 거울을 통해 마치 비디오 테이프처럼 볼 수 있다고 한다. 일곱왕들을 거치는 동안 자신이 지은 업대로 보를 받아 다른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나도 말로 쌓는 업이 많으니 발설지옥에 빠지지나 않을지...발설지옥(拔舌地獄)은 다른 지옥과는 달리 과수원이 많아 상당히 풍요로운 곳인데 상대방을 헐뜯은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을 말로 이간하고 허황된 말로 남을 속인 중생이 가게 되는 지옥이다. 이 곳에서의 형벌은 중생의 혀를 길게 뽑은 뒤 크게 넓혀놓고 나서 그 혀에 나무를 심고 밭을 가는 것이다.

     

    전라도 땅 바닷가 영광에는 불갑사라는 절이 있다. 백제 침류왕 때 지었다 하니 손에 꼽을 만한 고찰이다. 이 절이 유명한 것은 꽃무릇이라 불리는 상사화이다. 고창 선운사가 요즘 꽃무릇으로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계곡마다 상사화가 지천이었다. 나는 이 절에서 가장 마음이 닿은 것이 보물로 지정된 업경대였다. 저승에 있어야 할 업경대가 사찰에 있는 이유는 교육이다. 그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라는... 그래서 선업보다 악업이 많다면 지금부터라도 선업 쌓기에 매진하라는 가르침의 뜻이 더 크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궁극인 열반에 이르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리라 부처님께서 가르치셨지만 중생의 늪에서 허부적대는 처지라 업경대 앞에서 한참 생각에 잠겨 이리저리 셈을 놓아 보니 선업은 티끌이요 악업은 남산이라... 이도 참 부질없다 싶어서 화끈거리는 얼굴을 바닥에 끌며 돌아 나왔다.

     

    불갑사 업경대는 암수 한 쌍의 사자가 각각 등위로 연화받침이 화염문으로 장식되어 업경을 떠받치고 있다. 그림은 암수를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유독 눈에 뜨여서 하나만 그렸다. 절의 지장전의 시왕 부근에 놓이므로 많은 사찰에 업경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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