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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가자미(무화과 여는 담)/김대근
    삼행詩 2014. 9. 2. 19:29

    가자미(무화과 여는 담)

     

    가을바람 가닥마다 햇살로 물들 때
    자락 자락 솟아나는 계절의 나이테
    미모사 잎 타고 내린 무화과나무 그늘

     

    가림담 넘어와 익어가는 서너 알
    자줏빛 엷게 물들 몇 날의 기다림 끝
    미끈한 몸을 탐하다 따고만 발돋움

     

    가양주 한 잔에 익은 새터아재 뺨인 듯
    자두처럼 탱글하게 속 깊은 가을
    미상불 한 잎 깨물면 화르르 피는 꽃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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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기를 보낸 옛집 바로 앞 집은 일본식 적산가옥이었다. 그 집에는 수량이 풍부한 우물이 있어서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물동냥을 다녀야 했다. 그것은 거의 내 몫이어서 하교후 양철 바께스를 들고 그 집 철대문을 넘나들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있었던 화장실 옆에는 잎 넓은 '이치지꾸'나무가 있었는데 다른 나무들과 달리 꽃 피는 건 보지 못했는데 열매를 맺는게 어린 눈에도 신기했던것 같다. 어릴때는 그저 이 나무 이름이 '이치지꾸'인줄로만 알고 있다가 그것은 일본말이고 우리말로 무화과나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성년이 되고 나서였다.

     

    어릴적만 하여도 동네에 일본식 적산가옥들이 더러 있있고 그 집들마다 무화과나무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무화과나무는 일본인들이 좋아한 과실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사실 무화과 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딱 한 번 무화과 맛을 보았다. 담을 넘어 늘어진 가지에 매달려 익은 놈을 발돋움해 서리한 것이다. 달디 달았다. 단것이면 다 좋았던 시절이라 훔쳐먹는 것의 짜릿함까지 더해져 단맛이 더 했을 것이다. 요즈음은 무화과도 지천이다. 전남지방에서 작물로 많이 재배하여 흔히 볼 수 있는 과실이 되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의 상징이기도 하다.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이 배가 고파 무화과나무에 가보니 열매가 없었으므로 저주하여 말라죽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 위를 걷고 5병2어의 기적을 행한 분이 어찌 배고픔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무화과를 저주했는지에 대한 비유는 그쪽으로 문외한이라 알기 어렵다.

     

    사는 아파트 화단에 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처음 이사 와서는 제일 높은 가지에 손이 닿더니 이제는 발돋움을 해도 힘들어 가지 끝을 잡고 당겨야 겨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 나무에는 제법 무화과들이 열리는데 이 단맛을 탐내는 경쟁자는 세명이다. 나와 1층집 노인, 그리고 참새보다 조금 크고 재빠른 이름 모를 새 한마리다. 그 중 가장 영악한 쪽은 단연 새 쪽이다. 이 녀석은 아주 잘 익은 무화과만 노린다. 반면에 나는 단맛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경쟁자들에게 빼앗기기 싫어 얼추 80%정도 익었다 싶으면 딴다. 노인은 가슴께 높이만 자신의 영역으로 정했다. 그러고보면 내가 제일 탐욕이 많다. 탐욕은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했으니 나의 심저에는 선보다 악이 많은게 틀림없다.

     

    올해는 경쟁자가 하나 줄었다. 새는 여전히 제일 꼭대기 가장 잘 익은 몇 알에 부리를 박고 있고 나 역시 설익은 몇 알을 땃다. 1층 사는 노인이 올해는 아파트 뒷쪽으로 얼씬도 않는다. 무척 궁금했는데 지난 일요일 베란다에서 일광욕을 하고 계신다. 다행이다. 좀더 건강이 좋아져서 마지막 무화과를 두고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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