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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울주군(탱자나무 집)/김대근삼행詩 2014. 1. 9. 13:22
울주군(탱자나무 집)
울 막이 탱자 가시에 달들이 둥둥 떠
주갈酒渴 등짐 삼아 하늘에 점 찍던 아재
군기침 내뱉어 놓던 설익은 세상살이울멍줄멍 하늘에 빗금치던 탱자 울
주룩주룩 비 따라 노랑냄새 어지러워
군잎은 떼어놓고 익어갈 밤 기다려울울한 가시 사이 헤집던 꿈의 결정
주렁주렁 풍경風磬처럼 바람끝 낚아채
군달인 윤시월밤 되짚는 부엉이 소리울엄니 목청도 꿀처럼 찰져서
주련柱聯처럼 걸어놓던 가시 같은 욕지기
군내郡內의 탱자나무 집, 나는 그 집 장남이었네---------------------------------------------------------------------
나의 유년은 내 이름보다 탱자나무집 큰아들로 불린적이 많았다. 유년을 보낸 집은 탱자나무 울이 집 전체를 싸고 있는 형국이었다. 멀리서보면 집은 안보이고 탱자나무만 푸르게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은 일제가 끝나고 일본인들 쫓겨간 뒤 불하된 이른바 적산가옥이었다. 지붕은 일제때 올린 루핑이라는 종이에 콜탈을 먹이고 모래알갱이를 붙인 검정색이 주류였고, 부엌을 달아내면서 올린 함석 지붕이 일부를 차지하고 있고, 아버지와 내가 탱자나무의 큰뿌리 까지 언덕을 깎아내 셋방으로 늘린 2칸에 올린 슬레이트까지 3가지 지붕이 한집이라는 공간에서 공존하는 형식이었다. 이 3가지 지붕은 여름철 비가 제법 굵게 내릴때 진가를 발휘한다. 3가지 다른 재료들에 부닺는 비소리는 작은 실내악단의 연주같은 감흥을 주었다.
봄에는 하얗게 탱자꽃이 피어 바람따라 꽃잎을 눈처럼 흩뿌렸고, 여름에는 굴뚝새에게 더 없이 좋은 그늘과 놀이터를 제공했고, 가을에는 얼기설기 가시들 사이로 수많은 보름달들이 떠올랐다. 탱자들이 익어가면서 내는 향기에 취해 살던 내 유년기는 지금 생각해도 참 풍부했구나 싶을때가 많다.
노랗게 잘익은 탱자의 일부는 해마다 옆집 아재의 탱자술로 빚어져 일년 열두달 아재의 주독酒毒코를 점등하는 원천이 되었고, 일부는 새콤달달한 군것질꺼리로 늘 허기졌던 내 배를 달래주었다.
잘 익은 탱자는 동네 개구쟁이들의 표적도 되어 수시로 지붕위로 주먹만한 돌들이 날아와서 식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울엄니는 반사적으로 탱자나무 너머로 욕지기를 퍼붓곤 했다. 그때는 울엄니의 그 욕지기가 창피하기도 했다. 세월은 사람의 기를 먹고 사는지 요즈음 울엄니는 그때에 비하면 3년쯤 절여논 배추같으시다.
탱자를 생각하며 이 글을 적는데 갑자기 입안으로 침이 고인다. 아! 충실한 조건반사의 종이여~ 여전히 남아있는 자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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