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삼행시-대자보(글 조각들)/김대근
    삼행詩 2013. 12. 17. 18:02

    삼행시-대자보(글 조각들)

     

    ⊙퇴고
    대패질 품팔아 詩 한 편 더듬으며
    자간字間을 훑다가 행간行間에 멈추다
    보일 듯 얇은 막 걷어 졸여봐도 사라진 시어詩語

     

    ⊙죽림竹林에서
    대숲에 머물던 쉰내 나는 바람
    자드락 거리며 발목에 매달리다
    보름달 남겨논 자죽 겹쳐보는 걸음

     

    ⊙보리밭
    대구탕 한 자배기 맑게 열린 아침
    자드락 밭 한 뙈기 서리가 풍년이다
    보리들 홑겹 덮은 흙 몰래 쉬던 숨 얼겠다

     

    ⊙그리운 소식
    대롱으로 아껴 빠는 겨울날 밤에
    자명금自鳴琴 또랑또랑 울리다 나도 울어
    보내온 소식 하나가 창에다 빗금 긋다

     

    ⊙부친忌日에
    대구포 다듬다 창문에 그려진 눈발
    자갈수멍 물 빠지듯 스미고 마는 세월
    보시기 담아내다가 울컥 삼키는 뜨거움 하나

     

    ⊙기림사에서
    대웅전 용마루 끝 보름달 궁글 때
    자규子規 잘 벼린 울음 객客가슴 찢어놓다
    보리수 그늘 펼친 곳 낱알로 떨군 목탁소리

     

    ⊙어느 알코올중독자
    대구루루 세상의 어지름 된 소줏병
    자란 자란 채운 잔 넘실대는 냉기冷氣
    보굿에 매달린 삶, 오늘도 덮인 그늘

     

    대폿잔에 가득히 말아 마신 세상일
    자반 고등어 드러낸 바다 같은 설움들
    보얗게 안개 끼인 날 자꾸만 등을 보이는 그

     

    ⊙쑥등아재
    대갈마치 쑥등아재 세상 허물 벗던 날
    자국 눈 오늘처럼 시린 풍경 그렸지
    보도독 눈을 밟으며 산으로 가버린 아재

     

    ⊙아침에
    대설大雪 내린 아침 거울 속 낳선 이
    자분치에 내린 눈 세월은 이리 가누나
    보듬어 다독거려도 자꾸 저만치 가있는 나

     

    ⊙팔공산 부처님 와촌휴게소 나들이
    대물렌즈와 접안 사이, 그와 나의 거리다
    자판 망원경 500원에 넘겨보는 부처님
    보련화寶蓮華 들어주시니 나는 퍼지는 웃음이다

     

    ⊙태평양소식
    대가리 쳐들고 노려보던 고등어
    자글자글 끓고 있는 태평양에 잠기다
    보洑터져 능청능청 몰려오는 후각의 너울

     

    ⊙부고장
    대목大木질 삼십 년 기찰 박씨 아재
    자루에 넘치게 담으려 허 댔지만
    보따리 허물듯 풀려 종이 타고 너울로 와서…

     

    대가람 서까래 그에겐 훈장이라
    자씨慈氏보살 음덕이야 따논지 오래
    보득솔 키넘이로 새로 별 하나 떴다

     

    ---註---
    •자드락 밭: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있는 밭.
    •자명금自鳴琴:오르골 [orgel] 태엽이 돌면서 저절로 음악이 연주되게 만든 장난감 악기.
    •자갈수멍:물이 잘 빠지게 하려고 바닥에 조약돌을 묻은 도랑.
    •자규子規:두견잇과에 속한 새, 두견새.
    •대갈마치:말굽에 편자를 신길 때 쓰는 징을 박는 작은 마치, 아주 야물고 단단한 사람을 이름.
    •쑥등:부산시 북구 덕천동에 있는 마을의 옛 이름.
    •자분치:귀 앞에 난 잔 머리카락.
    •보굿:그물이 가라앉지 않도록 그물의 벼리에 매는 가벼운 물건.
    •자씨慈氏보살: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의 또 다른 이름.
    •보득솔:키가 작고 딱 바라지게 자란, 가지가 많은 어린 소나무.
    •기찰: 부산시 북구 덕천동에 있던 마을의 옛 이름.

     

    ----------------------------------------------------------------------------

     

     

    요즈음 세간을 그야말로 들었다놨다 하는 사건이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大字報)이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먼저 시작된 이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말이지만 그만큼 사회현상을 즉각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큰듯하다. 이 대자보는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대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대자보들이 퍼지고 있는데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주역인 듯 하다. 동안 선거같은 정치적 이슈에서 한 발을 빼고 있던 젊은이들이 사회현실에 눈뜨기 시작했고 참여하는 나름의 방식이라고 본다면 대단히 고무적이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에 데모크라시의 시대가 도래하는듯 하다.

     

    대자보(大字報)를 국어사전에서는 "주로 대학가나 단체에서 자신들의 주장이나 홍보를 위해 큰 글자로 써서 붙이는 게시물"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브리태니커사전에서는 "원래는 1930년대 초기 소련에서 정치선전의 목적으로 활용되었던 벽보의 영향을 받아 중국의 문화대혁명기에 확산된 벽신문 유형의 대중언론 매체이다."라고 설명한다.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부족하던 시절에 글을 써서 벽보로 붙여서 대중에게 알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공식적인 공고는 현청앞 게시판에 붙여 일반인들에게 알림의 역할을 했지만 정부에 대한 불만이나 고발등의 글은 몰래 붙일 수 밖에 없었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면 벽서나 괘서라고 불리는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국가에 반역을 도모하는 글을 궁문이나 성문에 붙여놓은 사건이 여럿 보인다. 때로는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옥사로 발전하는 일도 있었다.

     

    대자보(大字報)라는 이름이 시작된 것은 근대 중국이다. 1960년대 중국 전역을 휩쓸던 문화혁명기에 벽신문 형태의 대중언론 매체가 생겨났다. 1966년 5월 22일 베이징대학 식당 동쪽벽에 처음으로 대자보(大字報)가 게시되었다. 이 대학의 강사이던 섭원재 등 7명이 연서한 것으로 기존의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이 그 내용이었고, 이후 대자보(大字報)는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문화혁명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파워게임에도 대자보가 동원되었다. 1989년 胡耀邦이 사망하자 베이징대학교 학생들은 당내 보수파를 공격하는 대자보를 붙였고 이어 대규모 시위로 이어져 톈안먼 사건이라 불리는 대규모 집단행동에 놀라 위기를 느낀 보수파들의 강경한  진압으로 전세계적인 화제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학생운동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정부에서의 보도통제등으로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가지 사건들과 지배층의 부패를 직접 고발하여 사회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왔다. 특히 '권인숙 양 성고문 사건'은 대자보(大字報)를 통해 알려진 대표적인 예이다.

     

    이번에 유행하는 '안녕들 하십니까?'는 일상적인 인사에서 "정말로 안녕한가?"라는 확인이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 SNS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아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댓글에 개입했다면 SNS에 영향을 많이 받는 요즈음의 현실에서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땅의 노땅들은 그럴리 없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러니 그들의 분노가 이해된다. 며칠전에는 '안녕들하십니까(Hi. How's it going?)'로 시작하는 영문 대자보가 붙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자보가 퍼져나간지 처음으로 외국유학생이 대자보를 쓴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익명의 이 대자보는 "서로가 정말 안녕한지 물으며 불만을 표출하는 한국 청년들의 글을 읽고 직접 내 손으로 써보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세상의 인심이 이러한데 某 메이저급 신문의 논설위원은 최초로 쓴 대자보에 사실관계의 오류가 있으며 "학점으로 평가한다면 C학점"라며 깎아내리고 있다.  예전에 유명한 선승이 있었다. 운수납자들은 조그만 가르침이라도 받을까 하여 앞다투어 선승을 찾았다. "스님! 도란 무었입니까?"는 물음에 선승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르켰다. 납자는 손가락끝에 무었이 있나하고 두리번 거렸다. 바로 見月忘指(견월망지)다. 달을 보기 위해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는 가르침이다.

     

    우리가 경쟁에 몰입하느라 삶에 허덕대느라 잊고 지냈던 힘없고 돈없고 빽 없어서 소외되는 이들을 돌아볼 때도 되었다. 그 선봉에 서준 이 땅의 젊은들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바치고 싶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