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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이지원(무화과)/김대근
    삼행詩 2013. 11. 15. 19:37

    이지원(무화과)

     

    이 가을 그대에게 드러내는 마음의 깊이
    지난여름 오롯이 담긴 붉은 속 꽃잎
    원추리 피고 진 비탈 외로이 선 무화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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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화과(無花果)나무는 말 그대로 꽃이 피지 않는다. 무화과 열매를 반으로 갈라보면 빨갛게 익은 속살이 꽃이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꽃이 여름에 은두(隱頭)꽃차례로 피는데 이 꽃차례는 잎겨드랑이에서 공처럼 동그랗게 1~2개씩 나오며, 꽃이 꽃받기 속에 숨어 있어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이 피지않는데 열매를 맺어 무화과라고 부른다.

     

    세상에는 우리들이 잘 못알고 있는 것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리스의 위대한 철인(哲人) 데모크리토스가 눈으로 보는 세상의 허구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영혼으로 세상으로 보겠다며 스스로 실명한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것이 진실이 아닐수도 있음을 무화과(無花果)의 이름으로 또 배운다.

     

    어릴적 살던 집은 적산가옥이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앞 집도 옆 집도 모두 적산가옥이었다. 우리집은 지붕이 두터운 종이에 골탕(타르)를 발라 모래를 뿌려 굳힌 일명 루핑이라는 것과 함석이 섞인 것이라 비가 오면 빗소리가 실내악단이 연주하는 한 바탕 오케스트라 같았다.

     

    바로 앞집은 같은 적산가옥이라도 제법 뽄때 나는 일본식 기와집이었다. 그 집은 늘 내 어린시절 이상향이기도 했다. 내가 커서 잘 살게되면 저런 집에서 살아야 겠다는 꿈을 꾸게 해준 집이었다.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시절 그 집 우물의 물맛은 싱그러웠다. 하루에 한번 그 집으로 물을 길러 갈 때마다 나는 주눅이 들었다.

     

    그 집 대문에는 양쪽으로  "이지치꾸"라는 일본 이름의 잎 넓은 나무 두그루가 떡 버티고 있어서 여름의 풍경은 늘 시원했다. 어릴때는 가을무렵 잘 익은 열매가 갈라지며 보이는 속살에 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그러나 물 빌어먹는 주제에 남의 과실까지 탐할 염치는 없었다. 하루는 그 집 아랫방에 사는 대여섯살 많은 누나가 잘 익은 무화과 두 개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도둑질한 것도 아닌데 가슴은 도리깨를 마구 휘두른듯 타닥 타닥 튀었다. 무화과는 내 손바닥 위에서 속 꽃을 붉게 피웠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과일들을 먹었지만 아직 그 무화과 두 개의 달디단 맛을 만나지 못했다. 그 누이는 잘 사는지...

     

    오늘은 전라도 순천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당일로 멀다면 먼 길을 다녀오느라 허리께가 뻐근하다. 그래도 짜투리 시간을 더 잘게 뽀개어 만추의 파도에 깊이 잠긴 선운사도 다녀왔다. 덕분에 메마른 마음에 기름 몇 방울을 치고, 詩案도 몇 개 챙겼다. 선운사 뒤란 언덕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었다. 옛일들의 모자이크를 맞추다 시간에 쫓기어 길을 떠났다. 망할놈의 시간...

     

    오는 길 여산휴게소에 들러 해남산 무화과를 좀 사왔다. 옛 맛은 아니나 여독을 풀기엔 해장국만큼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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