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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산능선(천안 삼거리 주막)/김대근삼행詩 2013. 10. 2. 20:46
산능선(천안 삼거리 주막)
산길 들길 남북으로 길 여는 나그네
능수버들 발 잡혀 어둠에 잠긴 주막
선걸음 전라 경상길, 자취만 흐릿 남아...산너머 꽃 피는 구름 남녘이련가
능소화 내맘처럼 붉어져 술렁이다
선 하나 긋고 또 보면, 문득 바람 한 줄산새 들새 울어서 닳아버린 길손의 밤
능그니 소리에 새벽이 한 발 먼저 깨었다
선두리 돌 듯 사는 삶, 전생에 여기 섰던가註)
•능그니-곡식의 껍질을 벗기려고 물을 적시어 찧다.
•선두리-[동물] 딱정벌레목 물방갯과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이리가면 고향이요 저리가면 타향인데/이정표 없는거리 헤매도는 삼거리길/이리갈까 저리갈까 차라리 돌아갈까/세갈래길 삼거리에 비가 내린다"는 서정적인 가사에 남자로서는 제법 미성인 가수 "김상진"은 나의 고등학교 선배다. 나는 이 노래들 생각할때 마다 천안삼거리가 연상되고, 어쩌다 이런 저런 행사로 천안삼거리 공원에 갈때마다 이 노래가 생각난다.타향은 늘 외롭고 고향은 언제나 답답하다. 둘의 무게가 삶의 저울에서 기우는 쪽은 어디인가? 나의 저울은 늘 후자쪽으로 기울어 왔다. 이른바 '역맛살'이 끼어 있는 삶이라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던 다음 날 새벽 완행열차로 고향을 떠난 이후 고향과는 멀고 먼 쪽으로 맴도는 삶을 살고 있다. 고향이 그립지 않을리 없겠지만 그다지 절박하지는 않다. 급격하게 휘말린 도회의 맴돌이 물줄기에 익사해버린 옛추억들은 이제 흔적도 찾을 길 없다. 이럴땐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도 다소 있는게 사실이다. 고향은 아직 본가가 있고, 노친이 계시니 명절이면 나도 연어(鰱魚)의 몸부림에 합류하고는 하지만, 막상 고향이 부산이다 보니 이제는 오래 낯을 익힌 사람들도 없다. 이미 토박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어 져버린 도회에서 맞이하는 명절은 사실 쓸쓸하기 그지 없다.
어쨋던 타향과 고향의 연결은 항상 선으로 이루어 진다. '선'을 우리 삶의 풍경속으로 끌어오면 '길'이다. 비행기가 날으는 하늘에도 정해진 길이 있고, 바다에도 뱃길이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것도 길을 따라 우리의 동선이 이루어 진다. 결국 우리는 선에서 출발하여 길고 짧은 궤적을 그리다가 더 이상을 선을 그을수 없을때 삶을 마감한다.
길 중에서도 우리를 항상 긴장하게 하는 것은 갈림길이다.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내 삶에서도 수많은 갈림길들이 존재 했었다. 그 때 이러저러한 결정을 했다면 나는 현재의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등등... 지내놓고 보면 늘 아쉬운 갈림길의 결정도 있었고 참 잘했다 싶은 걸음도 있었다. 삶의 갈림길은 표시판도 나침반도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독한 일이다.
달포전에 지인이 천안삼거리 공원에서 있었던 2013천안국제웰빙식품엑스포 입장권을 주어 다녀왔다. 그저 고만고만한 내용들이라 구경시간을 줄이고 삼거리 주막에나 다녀왔다. 지금은 1번 국도가 워낙 넓게 자리잡고 있지만 그 길 옆 옛 삼거리 주막을 재현해 두었다. 서울에서 길을 잡아 평택을 지나 이곳에 오면 삼거리를 만난다. 남서는 공주를 거쳐 삼례를 거쳐 전주로 해서 전라남도로 가는 길이다. 동남으로 길을 잡으면 목천으로 해서 보은을 거쳐 상주를 통해 경상도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대부분 장사치들의 길이요. 서민의 길이었다. 경상도에서 서울을 가자면 추풍령을 거치는 이길을 타면 빠를 것인데 과거를 보는 선비들은 추풍이라는 어감이 주는 불길함 때문에 주로 문경세재를 넘어 한양으로 갔다. 전라도는 과거 자체를 경상도 선비들보다 압도적 차이로 덜 보았기에 자연히 천안 삼거리를 통하는 길손들은 높은 고개 적은 이 길을 택하였을 것이다. 긴 개천을 따라 이어졌던 이 삼거리에는 옛부터 버드나무가 많았단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의 상징하면 능수버들이다.
옛스런 맛 사라지고 마네킹이 주인이고 길손이 되어버린 이 주막에도 몇 백 년 전 그때인듯 까치한마리가 깍깍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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