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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울주군(추억 두 조각)/김대근
    삼행詩 2014. 1. 19. 13:05

    울주군(추억 두 조각)

     

    추억 하나

     

    울거미 문골 너머 외조부 해소 기침
    주르르 풀려나 피어 흔들리는 추억
    군불솥 관솔 향 젖어 먼 산을 넘다

     

     

    추억 둘

     

    울겅불겅 입안을 휘젓던 보리밥
    주먹만 한 볼따구도 채워진 건 헛바람
    군불 때 속을 데우던 그 시절도 금빛

     

    -울거미 문골: 방문이나 장지 따위의 가를 두른 테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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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근래외가조부학수고대"

     

    전화가 흔하지 않던 시절, 방학이 되면 외삼촌은 외조부의 채근에 밀려 30리길 읍내로 나가 이렇게 전보電報를 보내셨다.

     

    외가는 밀양군 수산읍 은산리라는 곳으로 외가쪽 일가붙이들이 많이 사는 집성촌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항렬이 높고 나이도 어른이든 외조부께는 동네에서 애경사가 있을때마다 상 하나를 따로 차려다 드렸고, 그때마다 상에 올라온 바람사탕(하얀 박하사탕;입안에 넣으면 시원한 바람이 난다고 외조부는 늘 이렇게 불렀다.)을 행여 바람이 새어나갈까 몇겹의 비닐로 감싸고 고무줄로 동여매 앉은뱅이 책상 서랍의 뒤쪽으로 넘겨놓으셨다. 친손주들이 먹지 못하게 할 방책이었다. 외조부는 그렇게 모은 것을 내가 가면 꺼내주셨다.

     

    외조부는 밀양 근동에서는 소문이 자자한 노름꾼이었다. 당신이 살아낸 고난의 행로를 보면 고개가 주억거려 지기도 한다. 큰딸은 해방 한 해전에 만주로 시집갔다가 사위와 함께 공비의 죽창에 숨을 놓았다. 전해듣기만 했을 뿐 남북으로 나라가 갈리며 주검의 현장에 가보지도 못했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밑으로 두 아들이 한국동란때 논에 김매러 갔다가 강제로 징집되어 전사하셨다. 하나 남은 씨강냉이 같은 외삼촌은 대를 이어야 한다는 책임을 어깨에 걸머지고 스스로 작두로 손가락을 잘랐다.

     

    이렇게 굴곡지고 힘든 행로에 술이나 도박으로 빠지지 않고 어떻게 견디셨겠는가 말이다. 나는 그 허전한 외조부의 마음을 채워줄 첫 손자였다. 친손자는 2년후에나 봤으니 첫손자에 대해 모든 애정을 쏟아 놓으셨다.

     

    나의 유년기는 외조부와의 추억이 많다. 친조부가 일제때 일본의 탄광에서 돌아가신터라 나 역시 외조부께 정신적으로 기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겨울 방학때 아이들과 구슬치기를 하다가 가진 구슬을 몽땅 잃고 시무룩 해 있는 나를 보고 "괘안타..괘안타" 하시며 외조부는 외삼촌을 불러 비료 포대 한장을 가져오라셨다. 내 손을 잡고 사랑방에 드신 외조부는 비닐포대를 가위로 잘게 잘라서 화로에 얹어 놓으셨다. 화로불에 비닐이 누글누글 해지자 외조부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으시고는 그 누글해진 비닐을 경단 만들듯 손바닥으로 굴리셨고 동글한 유리 구슬이 만들어 졌다. 그렇게 몇 십 개의 구슬이 만들어지는 마술을 내게 선사하셨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컸을때 그 생각이 나서 비료포대 구해다가 가스렌지에 올렸다가 외조부처럼 손바닥에 침뱉고 구슬말려다 손바닥이 데어 한동안 고생했었다. 그때서야 외조부 사랑의 크기가 대충 짐작이 되었다.

     

     

    마침 어느 박물관에 들렀다가 전시된 화로를 보다가 불현듯 옛 생각이 스치는데 입가에 미소와 코끝의 찡함에 함께 왔다. 내 뇌는 멀티인가?

     

    외조부는 외가의 뒷산 사과밭 가운데 묻히셨다. 일전에 창원으로 출장을 갔다가 고속도로가 막혀 국도를 잡은것이 외가를 스치는 길이었다. 지금은 외가도 부산으로 솔가를 한터라 그냥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외조부 산소가 빤히보이는 사과밭을 보다가 왔다.느닷없이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하염없이 바라고보고 있자니 일행이 왜그러냐고 물었다.

     

    "그냥.... 저 산이 참 좋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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