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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소통- 두레문학 11호 수록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1. 3. 8. 09:31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소통

                                                                                  김 대 근

     

    소통은 문학을 규정하는 많은 요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문학현실이 얼마나 소통을 반영하고 있는지는 모두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소통이 빠져버린 문학이란 앙코 없는 찐빵 같은 것이 아닐까?

     

    올해로 10회를 맞은 전국 정토 백일장이 지난 5월에 있었다. 해마다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두레문학에 발표해왔으나 매번 같은 내용이라 올해는 생략했다. 그러나 유의해볼만한 설문은 소통에 대한 것이었다. 지인과 소통의 방법을 묻는 질문에 95%가 핸드폰이라는 답이 나왔다. 핸드폰을 가지지 않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제외하고 거의 전부가 핸드폰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 지난해 설문과 확연하게 달라진 부분이다. 핸드폰으로 소통하는 방법도 통화보다는 거의 대부분이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문자가 중요한 의사의 전달 방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언어생활도 변화되고 있다. 십대들의 신조어나 줄임말, 의성어 등은 따로 배우지 않고는 해독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일부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보고 개탄하고 있으나 언어도 시류에 따라 그 용도가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세대 간의 언어단절이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고, 언어의 정수가 담긴 문학작품들은 읽히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요즘 학생들은 우리의 문학작품들도 요약본을 읽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문화적 단절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시집은 독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었고 동업자들끼리 돌려 읽는 사발통문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소통이라는 단어는 끼리끼리 통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둔갑되었다. 다양함으로 특징지어진 오늘날 소통을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이 글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기 위해 오늘날 사회의 다양함에 접근하는 문학의 새로운 모습을 조명해보고 이를 문학의 한 형태로 제안해보자 한다.

     

    1. 새로운 방식의 하이퍼텍스트 문학 [Hypertext Literature]

    하이퍼텍스트 문학, 이 낯선 용어는 하이퍼텍스트라는 글쓰기 환경 혹은 기술을 문학과 접목시킨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문학 형태를 일컫는다. 컴퓨터 화면에서 특정한 그림이나 밑줄이 쳐진 낱말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다른 텍스트나 그림이 떠오른다. 이렇게 서로 다는 텍스트를 연결해 주는 것을 하이퍼링크라고 한다. 이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카테고리 전체를 하이퍼텍스트라고 한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이란 순차적인 문장의 배열이 아니라 독자가 선택하는 배열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스토리에 수많은 생각들을 가지치기로 작성하여 그것들을 연관된 여러 가지 텍스트로 모아서 독자에게 다양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소설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하이퍼링크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줄거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에 컴퓨터의 발전에 따라 현대 기술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매체와 장르를 초월한 형태인 동시에 창의력과 상상력을 무한히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문학 형태이다. 문학에서 하이퍼텍스트 기능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대학에서 문학이론을 가르치는 교수 및 작가들이었고 그때가 1980년대였다. 마이클 조이스의 〈오후 이야기 Afternoon, a story〉(1987)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50여개의 대학에서 이 분야의 연구와 창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며 2001년 북토피아와 아이엠비씨(iMBC)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디지털 구보 2001」가 유일한 실정이다. 종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몸담고 있는 인쇄문학을 인터넷이라는 무한의 소통의 공간으로 불러내는 일이 앞으로 문학인이 짊어져야 할 과제일 것이다.

     

    2. 참여하는 문학, 까페

    오프라인 문학은 지역, 시간 등 여러 가지 제약이 존재한다. 이런 제약들을 극복하고 참여하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온라인을 이용한 까페 같은 인터넷 공간이다. 면대면 공간에서는 각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참여도가 달라지게 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나이도 지역도 시간적 제약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몇 몇 문학 까페에서는 대화창을 열고 “시 이어짓기” 같은 것으로 참여시의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공간의 장점은 문학인과 비문학인이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빠른 피드백은 이런 공간의 최대 장점이다.

    젋은 작가 세명이 함께 작업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의 예를 보자.

     

    bluebook 첫행을? 밥을 먹는다(어때요?)

    ORPHEE 그게 맨 첫 행?

    bluebook 예.

    rulrara 함 해보자

    bluebook 밥을 먹는다.

    ORPHEE 파랗게 날뛰는 밥을 삼킨다

    bluebook (멋진 발전이다)

    ORPHEE (혹은 '먹는다'로 똑같이)

    bluebook '먹는다'가 낫겠어요

    rulrara 저도

    ORPHEE 파랗게 날뛰는 밥을 먹는다

    ORPHEE 밥은 그릇에서 쫓겨나 공간으로 변한다

    rulrara 꿈에서 쫓겨난 밥을 먹는다

    ORPHEE 피곤한 꿈은 입을 다물고 있었으므로

    bluebook 꿈이 그 어마어마한 식탐으로

    rulrara 잠들기 위해서도 한 끼 밥의 힘이 필요하다

    bluebook 그 행은 톤의 힘이 빠진 듯 해요..

     

    위의 인용문은 작업을 위해 주고받는 온라인 대화의 일부분이다. 이런 대화를 통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작품인 [님의 밥] 앞부분을 다음에 인용한다.

     

    밥을 먹는다

    파랗게 날뛰는 밥을 먹는다

    꿈에서 쫓겨난 밥을 먹는다

    피곤한 꿈은 입을 다물고 있었으므로

    꿈이 그 어마어마한 식탐으로

    내 위장을 점령하고 있다

     

    3. 인터넷에 짓는 새 둥지,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가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 다음은 미니홈피가 뒤를 이었다. 홈페이지는 개인이 관리하기에는 너무 높은 기술적 수준을 요구했고 미니 홈피는 간단하게 관리 할 수는 있었지만 다양한 콘텐츠를 담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당연히 이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했고 그에 따라 개발된 것이 블로그다. 오늘날 다양한 블로그가 존재한다. 기업은 기업블로그, 기자는 기자블로그, 문학인은 문학인대로 다양한 자기 색깔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는 기업인에게는 기업홍보의 장을, 기자에게는 다양한 의견 청취를, 문학인에게는 발표의 장을 제공해준다. 블로그를 통해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즐겨찾기를 통해 나름의 인적네트워크도 구축한다. 필자의 경우는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네트워크를 통해 원고청탁을 받기도 하는 등 작가적 지명도를 높이는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4. 다시 또 한 발, 소셜네트워크

    좀 더 빨라지고 좀 더 짧아지는 현대는 소통의 도구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이른바 소셜네트워크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셰어를 가진 것이 140자의 마법이라 불리는 “트위트”다. 작가 이외수는 수 만 명의 팔로우를 가지고 있다. 트위트에서는 140자만을 적을 수 있다. 가령 필자가 어떤 이슈나 뉴스를 트위트에 적으면 필자의 팔로우들에게 자동적으로 즉시 전달된다. 필자의 팔로우는 자신들의 팔로우들에게 다시 전달되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전파된다. 이 트위트 역시 문학의 새로운 영토를 개발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앞에서 언급한 하이퍼텍스트가 소설에 적합한 매체라면 트위트는 단문으로 이루어진 시와 같은 장르에 적합하다고 하겠다.

     

    @roadtour 오랫동안 채워두었던/빗장이 풀린다/ 열린 창틈으로/새어나와/흩날리는 오래된 기억들<첫 눈 오는 날>

     

    오늘 첫 눈이 왔다. 눈이라기보다는 진눈깨비가 잠깐 오다가 이내 비로 변해 내리고 있다. 첫 눈의 감흥을 짧은 시로 적어 트위트로 올린다. 이 글은 나의 팔로우 300명에게 전달될 것이고 그들 각각의 팔로우에게 전달되는 것까지 하면 순식간에 몇 천 명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트위트의 단점은 텍스트 위주라는 점이다. 인터넷 사용 형태에서도 나타나듯 우리나라에서는 그래픽을 기반 해야 한다. 그런 점을 충족해주는 토종 소셜 네트워크가 “미투데이”다. 이 사이트는 ‘트위트’의 기본 토대위에 사진을 핸드폰으로 바로 찍어 전송할 수 있다. 가령 봄날 여행 중에 좋은 풍경을 보았다고 치자. 혼자 보기 아깝다면 핸드폰으로 풍경을 찍어 간단한 메시지와 함께 이 사이트로 전송하면 바로 인터넷에 게시되는 시스템이다. 덧붙이는 메시지를 짧은 시로 적으면 사진은 한 장의 디카시로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올린 사진과 시는 즉시 접속해 있는 수많은 네티즌에게 즉시 공개된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문학인 셈이다.

     

    5. 다양한 조각그림들, 퍼즐 맞추기

    여태까지 새로운 문학영역을 여러 가지 살펴보았다. 이제 몇 가지 조각그림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여기에 제시하는 조각그림들은 필자가 나름대로 시도하고 발전시켜 가고 있는 온라인 문학을 위한 것들이다. 더 많은 문인들이 이런 조각들을 나름대로 만들어가기 바란다. 조각이 많을수록 더욱 크고 넓은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5-1. 디카시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의 보급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의 많은 공유자가 생긴 분야이다. 최근에는 디카시에 대한 새로운 잡지도 선보이고 있을 정도이며 정기적인 시화전도 열고 있는 등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디카시의 장점은 순간적인 느낌의 포착이다. 몇 백 분의 1초의 순간적인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고 그 사진을 모토로 시를 쓴다. 어떤 장면에 대한 감흥을 시로 옮긴다고 생각해보자. 느낌을 메모해 서술해가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감정의 흐름은 물처럼 구불거리며 바뀌게 마련이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는 순가의 고정이므로 가장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다. 요즘의 십대들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면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래의 독자를 위한 소통의 도구로써 디지털 이미지와 시의 결합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인 시절이 오고야 말 것이다.

     

    5-2. 메시지시

    2007년 일본에서는 <연공: 안녕, 나의 사랑하는 모든 것>라는 제목의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는데 특히 십대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핸드폰으로 연재되어 인기를 끌었던 '핸드폰 소설'이 원작이었다. 현재 일본의 문학 부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는 핸드폰 소설, 일명 '엄지소설'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출판계도 핸드폰소설 작가를 발국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예이기는 하지만 십대들에게 이런 류의 핸드폰 소설이 인기 있는 현상은 핸드폰으로 모바일 인터넷과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블로깅이나 소셜 네트워크 접속이 익숙한 탓이라는 평가도 있다. 우리나라 십대들도 이제는 핸드폰은 필수품이 되었고,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그 영역이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길거리에 나서보면 어디서나 핸드폰을 조작하는 십대들을 볼 수 있다.

    일본 문학의 기성세대들은 이런 핸드폰 소설에 대하여 "문장이 치졸하다", "깊이가 없다", "내용이 빈약하다"며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 생긴 언어의 변화는 엄청나다. 십대들이 쓰는 인터넷 소설만 보아도 줄거리가 즉흥적이고 고어체가 주류를 이루며, 십대들의 은어가 여과 없이 반영된다. 그런 면에서 기성세대가 읽기에 거북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사회의 흐름을 문학작품의 정통성을 고수함으로서 바꾸기는 힘들어 보인다. 고시조를 읽어보면 그 나름대로 그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과 같이 오늘날 현실을 문학이 반영하지 못한다면 결국 문학은 혼자만의 길을 걷다가 화석만 남긴 공룡의 신세가 될 지모를 일이다.

    언급한바와 같이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현재는 전 세대에서 핸드폰을 통한 문자 메시지로 소통하고 있다. 이렇게 문자 메시지가 주류인 시대에 문학도 역시 이를 따라 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문자 메시지로 시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 핸드폰은 한 화면에 40자를 쓸 수 있다. 그 이상이 되면 멀티메일로 전환이 되거나 2번에 나누어 전송이 된다. 8글자씩 5줄이 한 화면이므로 문자메시지도 여기에 맞추어야 한다. 이것도 분명 문학이라는 장르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제목/작가명/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필자는 첫줄에 제목과 작가명을 적고 나머지 네 줄로 시를 쓴다.

     

    <사진은 필자의 문자시 한편이다.>

     

     

     

     

    5-3. 이모티콘시

    이모티콘이란 핸드폰 화면에서 텍스트에 생기를 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도 새로운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서 발전시켜봄직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모티콘의 사용은 세대간의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필자의 졸시(拙詩)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등어 굽는 아내

    김대근

    §§^__^§§ 미장원을 다녀온 아내가

    놓아버린 숨을 질질 흘리는

    ΘΞ◁ 댓마리를 ■ 봉지에 넣어

    들고 왔다

    ΘΞ◁ 들은 그 속에서도 잠을 잤는지

    Θ에 하얀 백태가 끼었다

    ΘΞ◁ ∑ΘΞ◁ ∑ΘΞ

    ♨ ♨ ♨ ♨ ♨ ♨

    낡은 후드를 빠져 나가지 못한

    고등어 굽는 연기들이 §§^__^§§ 의

    거금 삼만원짜리 라면 면발 사이로

    꼬부라져 나와서 여름내 벽에 모은

    모기들 시체들에 달라 붙는다

    ∬∵∫ 딸 아이가 지나간 하루를

    행주로 훔치고 상을 차린다

    하루에 한 번 겨우 마주 앉는 자리

    그 반의 주인은 【≡】텔레비젼이다

    반쪽 주인【≡】설레발에

    ∬^___^∫ §§^_____^§§ 아내와 딸

    입이 길에 찢어지는 순간

    ∑⊙∏Ξ◁ ∑⊙∏Ξ◁ ∑⊙∏Ξ◁ 들이

    놀라서 ⊙을 뜨고 웃었다

    5-4. 디카수필

    디카시를 수필에 접목시켜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한 장의 사진에 산문을 쓰는 방식으로는 디카수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여러 장의 사진을 배열하고 생각의 단락을 이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수필이 한 단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디카수필도 그런 원칙을 접목하였다.

    “디카수필”이라는 장르를 정식으로 차용하여 발표한 지면이 계간 『문학의 봄』(2008년 가을호, 발행인:사승환, 발행처:예지사, 86page~99page)에 필자가 발표한 “자연과의 소통, 아침 산책길에서...” 였다. 사진이 여러장 배치되는 특성상 기존 텍스트 수필분량의 2~3배 정도 되는 분량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작비 여건상 사진이 흑백처리 됨으로써 원래 이미지의 감동이 좀 줄어드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이 장르 역시 자꾸 발전하고 있고, 『문학의 봄』발표이후 디카수필을 쓰는 수필가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6. 그래서 어쩌라고?

    결론은 간단하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그 바뀌는 세상의 물결에 배를 띄우자는 것이다. 강 언덕에 멀거니 서 있으면 늘 그 자리다. 배를 타고 조류를 따라 흘러 신천지를 찾아 가자는 이야기다. 시집이나 수필집 출판기념회에 자주 초대를 받는다. 가는 곳마다 비문학인이라고는 억지춘향으로 동원된 본인의 친지들뿐이다. 그야말로 동업자들끼리 돌려보는 사발통문이 책이 되어 버렸다. 소통하자. 까짓거 인쇄본이 아니면 어떠한가? 한 사람이라도 내 작품을 통해 소통하기를 바란다. 소통이다. 문학은 소통이다. 소통하자.

     

    <두레문학 11호 수록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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