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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時流評說-2010년 10월 11일
    時流評說 2010. 10. 12. 10:45

    時流評說-2010년 10월 11일

     

    ★ 북한의 사상은 "주체" 하나로 결집되어 있다.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이 그것을 감추려고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열등한 체제에 대한 방어기제로 선택한 것이 바로 '주체사상'이다. 이 주체사상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1등 공신이 "황장엽"이라는 인물이었다. 북한은 자신들이 정립한 주체사상을 세계에 전파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 사상의 전파는 주로 당시 북한 노동당 초고위층의 한사람인 황장엽 비서가 맡았다. 199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체사상 세미나에서 "주체사상은 (김일성 사상이 아니라) 인간을 근본으로 한 인본사상이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그 발언이 북한 내부에서 문제가 되자 후일 "나는 주체철학이 인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김정일에게도 여러 차례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내 얘기의 핵심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주체사상에 대하여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부와 심각한 대립에 빠져있었는데 모스크바에서의 발언이 평양에 보고되며 위기를 느끼게 된다. 마침내 1997년 1월 말 일본에서 열리는 주체사상 세미나에 참석한 뒤 귀국길에 베이징에서 1997년 2월 12일 주중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전격적으로 망명을 신청하게 된다.

     

    이 망명사건은 전세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북한은 그의 망명을 막기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고 우리 정부 역시 총력을 기울였다. 입장이 곤란해진 중국은 외교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황씨를 제3국에서 한달간 체류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황씨는 필리핀에서 한달간 체류한뒤 국내로 귀국했다.

     

    당시 북한에서 최고의 프레미엄을 소유한 그의 망명을 두고 많은 해석들이 있었다. 그러나 주체사상과 관련하여 김정일과 갈등을 겪으면서 숙청 위기에 몰리자 한국행을 산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망명후 북한 반체제 운동을 주도하는 등 반북활동에 매진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는 남북간 화해무드를 타고 활동제한을 받기도 했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그를 이념의 전위에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불행했던 망명생활을 한 셈이다.

     

    이런 그의 반북활동으로 북한으로부터 여러 차례 암살 위협을 받기도 했다. 며칠전에는 서울중앙지검과 국가정보원에서 지난 4월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고 위장 탈북한 김모(36)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그의 젊음을 다 바쳤던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인 10일 오전 9시 30분에 유명을 달리했다. 반신욕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연령으로 보아 호상(好喪)이라 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또 다른 음모설이 난무하는 모양이다.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주체"를 지켜보며 그의 심정을 어떠했을까? 낭떠러지가 앞에 있음을 알면서도 민중을 몰아가는 북한의 실상이 안타깝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가족사항도 밝혀 졌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망명을 택한 그는 이곳에서 부인과 아들을 남겼다고 한다. 그동안 북한의 암살위협에 숨어지내야 했던 가족들의 고충이 많았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장지를 두고 말이 많다고 한다. 현충원으로 가야한다 안된다로 의견이 갈려있다고 한다. 마주 서 있는 상황에서 상대편의 장수가 귀순하면 귀순하기 전의 계급에 맞추어 예우하는게 관례요 도리가 아닌가. 따라서 그는 충분히 현충원에 영면할 권리가 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다시 상기된다. "그는 너무 늦게 왔고 너무 일찍 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도박을 부추기는 대한민국


    포털 '다음'의 검색창에 "도박중독"을 넣고 검색 단추를 클릭해 보면 스페샬 링크사이트- 웹페이지- 사이트 순으로 배치되는 화면에 "한국도박중독에방치유센터"가 제일 위에 뜬다. 부가 설명에는 도박중독 안내, 온라인 상담, 자가진단, 도박예방 정보 제공한다는 문구와 사이트 주소가 링크 걸려 있다. 이 링크를 클릭하면 "하이원" 화면이 모니터를 그득채운다. 어디를 클릭해야 도박중독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 찾을 수 없다. 거의 며칠을 클릭과 눈동자 굴리기를 거듭한 끝에야 오른쪽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KLACC"라고 그냥 글씨처럼 배치되어 있다.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내면 작게 "강원랜드중독관리센터'라는 사각박스가 뜬다. 치료를 마음 먹고 검색을 통해 왔던 사람들도 "하이원 리조트" 선전만 실컷 보게되는 것이다.

     

    도메인을 "gamblerclinic"으로 확보해 놓고도 중독자를 상대로 까지 "하이원 리조트"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이쯤되면 아주 막가자는 것 아닌가?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강원랜드의 불을 밝혀줄 잠재가치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2000년 스몰카지노를 개방하며 출발할때 매출액은 첫해 884억여원을 기록했으니 2007년 1조를 넘겼고 올해는 1조2,000억여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니 10년 만에 약 13배의 기록적인 성장세다. 기록적인 성장세 만큼이나 부작용도 많이 나았다. 가뜩이나 노름같은 투기성 놀이를 즐기는 민족인데 카지노는 화약에 불을 당긴것처럼 들불처럼 일어나 지금은 엄청난 도박중독자를 양산해내고 있다. 음주자는 출입을 시키면 안된다는 규정과 일반객장에서의 최대배팅액 10만원은 이미 사문화 되었다. 그렇게 벌어들이면서도 정작 도박 중독자의 예방에 사용하는 예산은 입에 올리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자에는 도박과 같은 스릴을 즐기는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유전자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유목 이동 민족에서 정주 농경 민족으로 정체성이 바뀌면서 혹독한 겨울나기를 위한 "놀이", "놀음"에 점점 스릴요소가 더해지면서 결국 "노름"으로 진화해온 사회문화적 요소가 더 큰 요인일 것이다.

     

    강원랜드 입구에는 물건을 잡히고 돈을 대출해주는 전당사들이 2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밤이면 이들 업소의 간판들이 불야성을 이룬다고 한다. 이들 전당사의 이율은 3일에 10%다. 하지만 실제 전당사들은 오전6시 돈을 빌려줘 카지노가 폐장하면 받는 이른바 '햇빛대출'을 한다. '단리'로만 계산해도 연 1,216%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율이다. 아마 이율만으로 따지자면 기네스에 충분히 오를 것이다. 이런 환경만 제거해도 도박중독으로 빠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는 이런 업체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먹고 사는 공무원도 있을 테지~

     

    오늘 마침 연예인 신정환의 이야기가 언론을 탔다. 도박빚을 지고 국제미아로 전락한데다 무릎 재수술 시기를 놓쳐 영구적 불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도박이 또 한사람의 인생을 절단내고 있다. 물론 도박이야 본인의 책임이 아닌가하고 말하겠지만 절대로 혼자의 의지만으로 멈출 수 없는 것 도한 도박이다. 이것이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나누어야 할 문제다.


    ★ 한번 붙어 보지 그랬어?


    "이쯤하면 한번 해보자는 겁니까?",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검찰을 향해 일갈을 날리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깡이 셌다. 일부 보수세력이 國父라며 추종하던 대통령의 권위를 스스로 버릴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그의 깡은 역대 지도자 중에서 최고다. 가방끈 짧아도, 빽이 없어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긴 가방끈과 커다란 빽에 기대사는 기득권에게는 꽤나 전투적인 대통령이었다.

     

    2006년 우리 연구선이 독도의 해양조사에 나서자 일본정부가 순시선을 파견해 대치국면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 대통령이던 그는즉각 주변에 군함을 배치하고 위해사격명령을 내렸다. 이같은 정보를 입수한 일본은 깜짝 놀라 즉시 순시선을 철수시켰다. 일본에는 늘 비굴했던 역대 대통령들처럼 이런 대체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특사를 보내 모종의 협의를 하리라고 생각했던 일본에 일격을 가한 셈이다.

     

    이 일화는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였던 전 총리 아베신조가 10월 9일 도쿄도 타쿠쇼쿠대학의 창립 110주년 심포지엄에서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지금은 또 어떤가? 북한에는 고압적이고 일본에는 굽실대는 그냥 평범한 역대 시절로 돌아갔다는 느낌이다. 나만의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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