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소신공양(燒身供養)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6. 1. 17:40

    소신공양(燒身供養)


    소설속 이야기 같은 일이 또 일어 났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은 사람들에게 불가에서 전해져 내려온 소신공양이라는 독특한 수행법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머물게된 사찰에서 금불각 부처상이 사실은 '만적'이라는 승려의 소신공양 법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당나라 때의 인물인 '만적'은 자기를 위해 이복 형을 독살하려는 어머니로 인해 충격을 받고 집을 나간 형 "신"을 찾아 나섰다가 출가하여 승려의 길을 걷게 된다. 10년이 지난 어느날 찾게된 이복형 '신'이 문둥병에 걸려 고통받고 있음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모든 번뇌와 업을 소신 공양(燒身供養)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이 소설은 사실 1963년 5월 29일 베트남 사이공에서 광툭이라는 승려가 고딘디엠 정권의 독재에 항거하여 소신(燒身)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그것을 모토로 탄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6월 27일 새벽에 경기도 청평 감로사에서 충담 스님이 세수 85세의 나이로 소신(燒身) 열반하였다. 충담 스님은 “호명산 감로사에 구름과 노닐던/ 이 노승은 본래 서원 성취코자/ 삼보전에 소신공양 올리 나니/ 이 인연공덕으로 부처님의 자비은혜를 갚고/ 국태민안하며 불법이 거듭/ 흥륭되기를 기원합니다./ 만약 어떤 것이 옳은 것이냐 묻거든/ 다 응당히 머무는 바 없게 하라.”는 열반송(涅槃頌)을 남겼다. 그의 소신이 결코 개인적인 도피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가끔씩 책장을 넘기다가 종이에 베이는 작은 상처에도 질겁을 하곤 한다. 그러니 자신의 몸에 고통을 가한다는 것이 범인들에게 얼마나 고통일 것인가를 생각하면 더 큰 무었을 위해 자신의 육신을 바친 이들이 얼마나 큰 자취를 남기는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 중에서 불에 의한 고통은 몇 배나 큰 것일 게다. 불은 인간의 가장 큰 무기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느리고 나약한 인간이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고 포유류의 정점에 서 있는 데는 불의 역활이 지대했다. 그러니 불을 신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에서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이후 그 죄로 독수리에게 심장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지 않았던가 말이다. 불은 자연에서 나약한 인간에게 밤을 극복하게 만들어준 무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불은 양면의 칼과 같이 인간에게 또 다른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불로 인한 상처는 끔찍하다. 그러므로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다른 많은 이들을 위해 소신(燒身)하는 것이 어떤 것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대표적인 예로는 역시 '전태일' 열사를 꼽을 수 있겠다. 그는 젊은 나이에 노동의 현장에서 겪었던 부조리와 비합리를 자신의 몸을 태우며 그렇게 항거했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항상 부와 손을 잡아 왔다.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부(富)'는 죄악을 지우는 지우개며, 면죄부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마술봉 같은 것이다. 모든 힘은 지남철의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쇳가루처럼 부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행사되었다. 지금보다 그 정도가 열배나 심했던 시절 가진 것 없고 힘없는 그가 부와 권력을 향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무릿매 질이었다. 그의 바램은 또 얼마나 소박하였던가. "인간처럼 살고 싶다!."


    오늘 뉴스를 타고 전해진 한 수행승의 소신(燒身)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금전지향의 인간은 어느 정도 금전을 충족하더라도 금전에 대한 지향점이 바뀌지는 않는다. 권력지향의 인간 역시 다르지 않다. 항상 더 많은 권력을 찾게 된다. 마치 아편쟁이 처럼 말이다. 오늘날 불과 몇 십 년 전의 상황처럼 권력의 토대였던 민중은 사라지고 권력만 남아서 햇살 아래 빛나고 있다. 풍족한 물자로 세상은 촉광을 더해가고 있지만 밝으면 밝을수록 그늘은 몇 배 어두워 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그늘을 보는 아량이 사라 졌다. 아량이 사라진 삭막한 마음속에는 모든 자연의 정점에 인간만이 존재한다는 아집과 독선이 자리를 잡았다. 문명이라는 가치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을 보는 동양의 사상을 고루한 것으로 매도 했다. 세상이 창조될 때에 특별한 사명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인간은 자연의 정점에 있으며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대로 유용할 수 있다는 서양의 사상이 팽배한 탓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자는 민중의 적으로 돌아섰고 소통을 거부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해도 자신이 옳다면 옳은 것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없는 것이라고 정의되었다.


    물은 순행(巡行)의 표본이다. 물의 진리는 낮는 곳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낮은 곳만 있다면 남이던 북이던 상관하지 않는다. 경상남도 언양과 양산의 중간 쯤에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산군(山群)이 있다. 그 아랫녘에 배내골이라는 골 깊은 곳이 있는데 이곳은 역수(逆水), 즉 물이 북쪽을 향해 흘러 역적이 난다는 전설을 지닌 곳이다. 한국 전쟁후 한 때 빨치산들이 기세를 떨쳐 그것이 증명되었다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인간이 자연을 제 마음대로 규정짓고 그것이 진리인양 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법칙이 있다. 작은 물들이 제 나름 태어난 곳의 정기를 담뿍 머금어 풀어 헤치는 곳이 강(江)이다. 강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막히면 애써 넘어가려 하지 않고 둘러 가기를 거리끼지 않는다. 윗녘의 대지와 아랫녘의 대지는 강을 매개로 서로 소통(疏通)을 이룬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에 기대어 살아 왔고 살아갈 것이다. 자연의 소통길을 따라 인간도 서로 내왕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자연이 자연답게 흐르는 순행을 거부하고 인간의 입맛대로 흐르게 하는 역행(逆行)이다. 흘러야 하는 물의 이치를 고여둠으로써 소통이 아닌 비소통으로 만드는 것이다.


    주변에 포크레인 한 대를 가지고 임대업을 하던 지인이 있었다. 그는 최근에 빚을 내고도 동업자를 모아 몇 대의 중장비를 구입했다고 한다. 그의 중장비들은 낙동강으로 먼길을 떠났다. 빚이 커지는 모험을 걱정하는 소리에 다음 정권때까지 4대강 공사가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단단히 한 몫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반대를 해대니 아마도 이 정권이 끝나면 없어질지 모르는 공사라는 것이다.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여 무리수를 두니 패착이 될것은 불 보듯 뻔하다. 가시적 성과는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눈에 금방 싫증으로 각인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완공이 된다고 하더라도 겨우 몇 년이면 청계천의 물이끼 처럼 문제점을 쏟아 낼 것이다. 게다가 큰 물난리라도 나게 되면 물의 가공할 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리란 것을 소양있는 사람이라면 알 일이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진 문수스님의 소신공양(燒身供養)이 가슴을 짠하게 하는 이유는 그가 남긴 유서에서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포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일갈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 스님이 문안으로 먹을거리를 넣어주기만 하고 당사자는 바깥 출입을 삼가는 무문관의 수행을 하던 이른바 이판승(理判僧)이었다. 우리가 흔히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하는데 온갖 세속적인 일을 도맡아 절의 살림을 꾸려가는 사판승과 세상과 등지고 외롭게 삶의 이치를 탐구하는 이판승으로 나뉘어 진다. 임진왜란을 맞아 서산대사는 전국의 승려들에게 '이판(理判)은 가부좌를 풀고, 사판(事判)은 붓과 호미를 던지고 총궐기하여 도탄에 빠진 국가와 백성을 구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이른바 '이판사판'의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때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는 뜻으로 '이판사판'이 정착되었다. 사판승은 사회의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산중이나 선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행에 전념하는 이팜승들은 대부분 세상일과 떨어지려 부단히 노력을 한다. 그런 선방의 스님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힘을 기울여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 뜻의 결연함을 보이려 자신의 몸을 불 살라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다.


    소설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구현되었지만 그의 일갈이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디 극락왕생(極樂往生) 하시라.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