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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시- 바람부는 날 /김대근
    디카詩 2010. 5. 4. 00:07

     

     

    바람부는 날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의 여울
    곧추세운 지느러미
    파르르 흔들리는 풍절음에
    퍼렇게 물드는 등짝
    아릿하게 타고 내리는 근육통
    유영하는 삶이 버거워진 어느날
    유턴의 표식을 찾아 기웃거려 보지만
    여전히 앞으로만 뻗어 있는 길
    검은 아스팔트는 바람의 발기에
    끄르럭 삼키고 뱉는 하루와
    파닥이다 팽개쳐지는 그림자
    차곡차곡 박제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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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었다. 겨우내 휴면의 세월을 보냈던 에어컨은 쌓인 때를 뱉어내는 모양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여니 14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의 속도보다 더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교량이 있는 구간은 바람이 몰려 차가 휘청거린다. 잠시 멀미를 느낀다. 바람은 종일 멈추지 않는다. 아산에서 포항까지 이르는 몇 시간의 제법 긴 시간적 공간을 바람이 채우고 나는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고기처럼 흔들리며 목적지에 닿는다.

     

    목적지란 끝이 아니다.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나면 이내 새로운 목적지가 생긴다. 출발지는 조금전이나 어제나 좀더 먼 과거에는 목적지였을 것이다. 목적지가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일련의 이 과정은 윤회와 같다. 오늘 날의 삶이 찾아가는 목적지는 결국 다음 생의 출발점이 되는 것과 같다.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가야 할 시간이다. 머리속으로 루트를 그려본다. 굵은 선과 가는 선들이 허공에 그어진다. 갑자기 일상적인 모든 일들이 싫어진다. 원을 크게 그려보자. 포항에서 창원으로 가는 길은 최대한 멀리 둘러가기로 했다. 애초에 그려지지 않았던 동선(動線)을 추가하고 그 길을 따라 동해안 바닷길을 탄다. 구룡포를 지나고 장기를 거쳐 감포까지는 오늘의 목적지와는 정반대 방향에 그어진 곡선이다.

     

     

     

    계절은 봄이라고는 하지만 바닷가는 완전히 겨울을 벗지 못했다. 바다가 겨울을 벗어 던진 것은 간사한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인적이 없는 바다의 을씨년스러움은 아직은 겨울의 잔존가치가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갈매기들도 어디론가 가버리고 파도만 몰려와 아우성을 모래에 묻어버리고 떠난다. 생각의 조각들을 파도에 태워 보내보지만 이내 돌아와 머리속을 유영한다. 징그러운 것들..., 제발 좀 떨어져라! 떨어져...

     

    감포 삼거리에서 잠깐 망설인다. 계속 바닷길을 타면 울산을 거쳐야 한다. 갑자기 도심이라는 단어가 거북해진다. 나도 모르게 핸들은 경주로 꺾는다. 한동안 계곡과 산과 숲을 지나게 되리라. 바람은 해가 어스럼해진 저녁에도 계속 불어댄다. 분황사 앞 넓게 심겨져 지형을 바꾼 유채밭을 지난다. 노란 유채밭 위에 회색의 채도가 더해져 주변이 어둑해 진다. 이어 보이는 고속도로 표지판은 마침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자각하게 한다. 굵게 그어진 선 하나와 그 선 속을 움직이는 점 하나 같은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닿았다. 내일 아침이면 이곳도 출발점이 되리라. 목적지와 출발지가 반반씩 섞인 회색지대에 하루의 자국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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