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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나무와 진달래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4. 3. 11:35

     

     

    소나무와 진달래

     

     

    허리 굽은 늙은 소나무

    겨우내 버티다 갈라진 피부

    그 틈을 메우는 바람

    시리고 매워

    수관 채울 기력도 없는데

    진달래 지져대는 아래 뜸

    노곤한 봄볕, 떠밀린 하루가

    기지개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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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장에서 돌아가는 길이다. 오늘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못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상대편과의 회의는 고성이 오가는 탁한 흐름 속에 끝났다. 회의라는 것이 항상 상대가 있는 것이고 작은 것이던 큰 것이던 간에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게 마련이다. 특히 회사와 회사간에 이루어지는 회의는 그런 경향성이 더욱 강해지는 쪽이다. 상대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회합이나 협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첨예한 문제로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결렬되기도 하는 법인데 대부분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마무리되고는 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어느 자리에서나 외유내강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해 왔고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수양을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아주 소소한 지엽적인 문제로 상대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상대의 높아진 언성을 잠깐 피하면 될 것을 마주치고 말았다. 기술자로 살아온 30년의 자존심이 아마도 작은 문제임에도 고집을 세운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 자판기 커피 한잔을 빼어 들고 차분히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소심했구나 하는 반성이 된다. 쿵쯔의 [논어위정論語爲政]에 보면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오십이 되어서 하늘의 뜻을 알았다는 말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아직도 순간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게 여겨졌다. 회의를 마치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은 이가 말한 둘 다 똑 같아서~”라는 말을 곱씹어 보니 서너 살이나 많은 내가 적잖은 손해를 본 셈이 되었다.

     

     

    착잡한 기분으로 주변을 산책하다 휴게소 철망 너머 산에 진달래가 수북이 피었다. 올해 처음으로 맞이 하는 진달래다. 둘러보니 소나무 숲에 빽빽하게 들어찬 진달래들 사이로 두 그루 노송 아래만 화들짝 피어있는 것이 신기하다. 저놈들도 나처럼 다혈질이구나 싶다. 소나무는 저절로 자라 누군가의 보살핌이 적었던 탓인지 허리가 굽어 있다. 그 아래 진달래가 피어 있으니 마치 불을 지피는 것 같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끼는 여러 현상들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첫째는 그렇게 많던 아침잠이 사라졌다. 6시 첫 알람이 울고 나서 두 번째 알람이 울리는 6 40분까지 달디단 잠에 빠지곤 했는데 요즈음은 첫 번째 알람이 울고 난 이후에는 정신이 말짱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몸에 가해지는 뜨뜻한 열기가 좋아 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목욕탕을 가더라도 10분 이상 탕에 들어 앉아 있는 적이 없었고 한증막에는 아예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요즈음은 탕에서 20분 이상 버텨내게 되었다. 찜질방에 다녀오면 온 몸이 개운해지는 현상도 생겼다. 요즈음 고민은 새로 얻은 아침시간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까 하는 것이다.

     

     

    식물도 본능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한 과학자가 실험을 한 결과라고 하니 믿을 만 하겠다. 그는 화분에 심긴 식물에 뇌파를 측정하는 접점을 연결하고 라이터로 잎을 지졌다고 한다. 나중에는 식물 앞에서 라이터만 켜도 식물이 반응을 하더라는 것이다. 하기는 진화의 제일 꼭지점은 하나의 점이니 결국 그 길이 달랐을 뿐 공유하는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일 게다.

     

     

    식물의 세계도 인간계처럼 나누는 정이 있어서 늙은 소나무를 위해 진달래 일찍 피어 군불을 아래 뜸에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기 좋은 장면이라 카메라를 켜 이리저리 맞춰봐도 영 생각하는 감흥이 살지를 않는다. 포기하고 스마트 폰 속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을 켜고 스케치를 했다. 그려놓고 보니 그런대로 괜찮다. 갑자기 몸 속의 엔도르핀이 솟는다. 가는 길이 제법 경쾌하리라.

    (2010 4 2일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영천휴게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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