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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백과 해당화, 그리고 웰빙 - 전북 고창 구시포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2. 18. 14:34

    동백과 해당화, 그리고 웰빙

                          전라북도 고창 구시포

     

                                                   김대근 (시인·수필가)

     

    고창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몇 개 있다. 선운사, 동백, 서정주, 풍천장어, 복분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고창을 샅샅이 훑다보면 전봉준, 해당화, 웰빙이라는 단어가 추가된다. 선운사와 동백, 서정주는 자연스럽게 한 줄로 연결이 된다. 그러나 꽃이라는 것은 시간을 잘 맞추어야 호사를 즐길 수 있다. 늦어도 빨라도 시간적 인연이 닿지 않으면 그저 의미 없이 스쳐가는 풍경의 하나일 뿐이다. 언젠가 남도의 동백꽃 소식에 들떠 마음먹고 선운사 동백을 보리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남도와는 또 다른 공간적 차이로 이제 몽우리 겨우 맺는 것만 보고 왔었다. 그때서야 미당 서정주님의 "~아직 일러 피지 못했고 작년 것만 상기 남았더라~"의 싯구가 새벽 범종 소리처럼 가슴에 메아리치는 것을 느꼈다. 세월의 물살에 깎여버린 세태는 많이도 변해서 시에 등장하는 막걸리보다 복분자주를 많이 찾고 기름진 풍천장어로 배를 채우는 팍팍해진 감성부재의 시대가 되었다. 고창은 미당 서정주를 낳고 기러낸 곳이다. 서정주 시인의 생가도 스치는 걸음에 잠깐 들러 볼 만한 곳이다.

     

    사실 동백에 못지않게 볼만한 것이 해당화 군락이다. 서로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달라 선운사 동백을 놓쳤다면 동호리 해변에 흐드러진 해당화가 볼만하다. 서해안의 낙조와 어울리는 해당화는 반지르한 동백과는 또 다른 고향 같은 정취를 안겨준다. 동백이 미니스커트에 긴 부츠에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도시처녀의 이미지라면 해당화는 수수한 시골처녀와 같은 이미지의 꽃이다. 고창이 품고 있는 동호해수욕장은 그런 곳이다.

     

    요즈음처럼 꽃을 볼 수 없는 겨울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발걸음을 따라 걸어보자. 고창은 전봉준의 동학군이 처음으로 일어서 역사 앞으로 걸음한 시발점인 무장기포지도 있다. 죽창을 깎고 조릿대를 잘라 활을 만들고 터를 잡아 훈련을 하고 마침내 동학농민군이 출정을 한 역사속의 장면하나가 이곳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승자가 되어 역사의 전면에 서지는 못하였지만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가치 없는 것임을 가르쳐주는 소중한 곳이니 한번쯤은 발걸음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1박 2일 정도의 여정이라면 제일 먼저 고창읍성을 들러 보는 것이 좋다. 특히 어느 한 철이 아니라 사시사철 풍광이 수려한 곳이 읍성이다. 읍성은 산성과는 달리 사람들이 사는 동네와 잇대어 있다. 고창읍성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크지 않으면서도 높낮이가 뚜렷하고 성벽의 유려한 곡선은 어느 곳에서 보아도 굽이치고 휘도는 풍경을 보여준다. 마치 판소리 한 마당의 펼침과 오그림, 높이와 깊이를 그대로 시각화한 것 같다. 고창읍성의 본 이름은 모양성이다. 조선왕조 비운의 왕 단종 즉위년인 1453년에 해상을 통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전라도 각지의 장정들을 징발하여 만들었다. 음력 9월 9일을 잘 맞추면 성밟기 행사를 볼 수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좁은 성벽 길을 따라 걷는 모습이 장관이다. 특히나 성 밟기인 답성놀이는 많은 지역에서 전해지는데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저승길이 환히 트여 극락에 갈 수 있다고 전해져 온다. 이것은 우리나라 성의 축성 방법과 관련이 있다. 돌로 축성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뒷면에는 흙을 채워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한다. 그러나 겨울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 흙이 푸슬해지고 돌과 돌 사이도 간격이 생기게 된다. 겨울을 막 지난 봄에 하는 보리밟기도 그런 원리인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성들에서 이루어진 전투 방법 중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투석投石이었다. 그래서 성안에는 항상 적정한 량의 돌이 비축되어 있어야 했다. 성 밟기는 성의 보존차원과 전쟁물자의 비축, 성민들의 단합과 성내 지형의 교육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성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기 위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로 오면서 본래의 취지를 잊어버리고 모화사상에 물든 유생들에 의해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인 중양절에 행사를 하게 되었다.

     

    오늘 여행의 목적지인 구시포로 가보자. 한적한 어촌이었던 구시포는 지금은 웰빙의 대병사가 되었다. 웰빙…, 요즈음 세간의 화두가 웰빙이다. 세간이라는 말을 쓰니 내가 좀 이상한 곳에 와있는 느낌이 들지만 그냥 세상이라는 말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사실 웰빙이라는 말의 뜻도 참 이해하기가 어렵고 사전적 의미도 애매하다. 나는 웰빙을 그냥 건강에 좋은 모든 것이라고 풀고 싶다. 그게 먹는 것이던 입는 것이던 여행하는 것이던지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모두가 웰빙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어느 학자가 연구한 결과 고스톱도 치매에 도움이 된다니 어쩌면 웰빙이라는 단어를 고스톱에 붙여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구시포는 시각, 미각, 촉각의 3가지를 모두 만족 시킬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보내는 해넘이는 시각을 만족시켜준다. 어민들이 직접 잡은 싱싱한 회는 미각을 채운다. 물이 빠지면 드러내는 갯벌의 맨몸을 뒤져 잡아내는 조개도 촉각과 미각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구시포는 자그마한 어촌으로 여름에도 그다지 번잡스럽지 않다. 바닷가에 늘어선 횟집들은 대개 어부들이 직접 걷어 올린 고기를 쓴다. 여름철에 해수욕을 찾아도 좋다. 솔숲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야영장을 갖추고 있다. 주차장도 넉넉하고 야영장이 언덕하나와 솔숲으로 구획이 잘 되어 있어서 안락하다. 겨울이면 한산해지는 다른 어촌과는 달리 겨울에도 해넘이와 해수찜질을 찾아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도심에서 지친 마음과 몸을 풀어줄 해수찜질은 웰빙의 바람을 타고 새롭게 뜨고 있는 곳이다. 서해안에는 여러 곳에 해수찜질이 있다. 해수찜질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약 1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전통적 방법으로 해수찜을 하는 곳은 전라남도 무안군 돌 머리 해변이고 이곳은 현대적 방법으로 특화를 하고 있다.

     

    특히 장거리 운전이 많은 관계로 늘 무릎보호대를 하고 살다시피 하는데 해수찜질은 특히 관절에 좋다고 한다. 아내도 서있는 일이 많은 직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자주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한다. 이런 때 안성맞춤인 웰빙 여행지가 구시포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긴 이후로 고창은 접근성이 좋아졌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구시포로 가는 길은 바닷물과 민물이 한 몸을 이루어 흐르는 강 옆 지방도로를 따라가야 하는데 이 강들에서 유명한 풍천장어가 몸집을 키운다. 야트마한 산들과 구불거리는 강이 만드는 풍경은 드라이브의 묘미를 선사한다.

     

    지나는 길 옆 밭에는 대밭에 내린 눈이 댓잎에 흠씬하게 올라붙어 정말 선경仙景을 자아내는데 빠져서 비상깜빡이를 켜고 지방도로 외길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뒤에 오는 차들이 하도 압박을 해대서 그냥 지나치고 만다.

     

    도착한 구시포해수찜은 지은 지 제법 되어 낡아 보이지만 최근의 웰빙 바람을 타고 외진 곳에 있음에도 제법 주차장을 차들이 채우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된 덕을 단단히 보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 해수찜인 함평의 해수약찜은 부근에서 나는 유황이 함유된 돌을 불에 달구어서 그 뜨거운 돌을 물에 집어넣어 물을 덥히는 방식이고, 현대적 시설을 사용하는 이곳은 보일러로 물을 뜨겁게 만들고 약초를 자루에 넣어 물에 우려낸 다음 그 물로 찜질을 한다.

     

    계산을 하고 나니 찜복을 주는데 풀을 먹여서 빳빳한 감촉이 기분을 깔끔하게 한다. 이런 작은 것 하나에서도 주인의 성정을 느끼게 한다. 안내원이 샤워를 하지 말고 찜질부터 해야 한단다.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조그만 탕이 한 가운데 있고 탕 주변으로 나무 널판이 깔려 있다. 탕에는 몇 가지의 약초가 자루에 담겨 뜨거운 물에 자신을 녹여내 물빛갈의 채도를 더해가고 있다. 물 온도를 가늠하기 위해 손을 가만히 물에 넣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만다. 보기와는 다르게 물 온도가 높다. 물에서는 여러 가지 약초의 냄새가 후각을 계속 자극을 해서인지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환해졌다. 처음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로 친절한 설명이 있었는데 찜질의 정도는 관절이 빨개질 정도가 되어야 효과가 좋단다. 두 사람 몫으로 수건이 넉 장이 있었는데 하나는 좀 크고 하나는 좀 적다. 큰 수건은 뜨거운 물을 적셔서 어깨나 배나 등에 하는 것이고 작은 수건은 주로 무릎용이다. 물이 너무 뜨거워 손으로 적신 수건을 짜기가 어렵다. 궁하면 통한다고 바가지로 눌러서 짜낸 수건을 어깨에 덮자 뜨거운 기운이 등을 타고 흐르며 온 몸을 덥힌다. 무릎이 좋지 않은 나는 무릎에 집중적으로 찜질을 했다. 뜨거운 물을 적셔서 무릎위에 놓고 그 위에 계속 탕의 물을 바가지로 떠 부으면 서서히 전해지는 뜨거움이 무릎부터 허벅지까지 편하게 한다.

     

    이런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인가 보다. 예전 같으면 이런 뜨거움은 내가 못 견딘다. 유난히 더위를 싫어하는 체질 탓이다. 그런데 이런 괴로움이 견딜만해지고 즐기게 된 것을 보니 확실히 늙어가는 모양이다. 사람의 몸이란 아날로그적으로 늙어가니 느끼지 못하다가 이런 때에나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10여분 지나자 땀구멍이 열렸는지 여기저기서 땀이 비 오듯 쏟는다. 땀이 정말 주체를 못할 만큼 흐르고 안경을 쓰고 있으니 그것도 자꾸 흘러내려 신경 쓰이고 숨은 턱밑에 차오르고…, 견디다 못해서 문을 조금 열어서 바깥공기를 투입했더니 훨씬 편해졌다. 아내는 이까짓 거 하는 표정으로 뜨거운 물을 잘도 붓고 있다. 나는 아무리 참으려 해도 30분을 넘기기는 힘들다. 30분 만에 나와서 안내원의 설명대로 해수온탕에 10분정도 있다가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 닦고 옷을 입는데도 연신 땀이 흘러내려서 로션을 바르기도 어렵다. 한참을 탈의실에서 진정을 하고 나서야 땀이 멎었다. 안내원의 말로는 그게 정상이란다. 한번 땀구멍이 열렸으면 한참을 간단다.

     

    아내는 한 시간을 더 하고 나왔다. 역시 여자들의 끈기는 알아줘야 한다. 해수찜질을 마치고 나오니 바깥에는 언제 눈이 왔는지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눈 내린 해변에 발자국을 찍다가 귀로에 오른다.

     

     

    **** 찾아가는 길...

     

     

    우선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갈 경우에는 고창 나들목에서 내린 다음 796번 도로를 타고 칠암까지 간 다음 만나는 22번 국도를 따라 북행한다. 호남고속도로의 경우는 백양사 나들목에서 내려 894번 지방도를 따라 고창 읍내를 통한 다음 796번 도로로 칠암까지 가서 북행을 하면 된다.

    입장료는 두 사람이 찜질을 할 경우에는 25,000원이고 4명 이상의 경우는 1인당 10,000원이다.

     

     

    **** 주변 먹거리

     

     

    이곳 고창에서 먹거리 하면 딱 2가지다.

    선운사부근의 유명한 풍천장어가 하나고 복분자술이 그 두 번 째 다.

    멀지 않은 곳에 영광 법성포가 있어서 굴비를 맛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당 서정주의 시에 나오는 육자백이 걸판진 아줌마의 막걸리는

    찾아볼 수 없다.

     

     

    **** 주변볼거리

     

     

    선운사,도솔암,무장기포지,전봉준장군생가,서정주생가,서정주시문학관,

    인촌 김성수생가, 고인돌유적, 동호해수욕장 등이 있다.

     

     

    <어촌어항 2010년 봄호 수록>

     

     

    ========================== 기사에 포함 되었던 사진들 =============================

     

     

    구시포항의 고즈넉한 풍경

     

    구시포해수욕장의 겨울~ 여느 해수욕장이나 겨울에는 손님이 없어 을씨년스럽다 

     

    구시포해수찜질 전경~ 역시 겨울에는 뜨끈한 찜질이 최고... 

     

     구시포해수욕장 입구~

     

     녹두장군 전봉준이 처음으로 혁명의 깃발을 들었던 무장기포지

     

     

    선운사의 눈 온 풍경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기념관과 생가 

     

     고창읍성으로 불리는 모양성의 눈 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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